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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Sep 09. 2020

엄마에게 흡연사실을 들켰다

내가 처음 그것에 손을 댄 건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당시 가장 친했던 친구는 술을 마시면 그것을 찾는 친구였다. 


왜 술만 마시면 찾아? 평소에는 안 하잖아.


술을 마시면 답답한 기분이 드는데 이게 그걸 해소해 주는 것 같아.

친구는 그것이 마치 한숨 같다고 했다. 자신의 눈에 자신의 한숨이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술을 마시면 답답한 기분이 든다는 것을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의 상황은 너무 답답했으니까. 그래서 술을 마셨고 서로에게 하소연하며 인생을 한탄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도 하나 줘 봐.


 친구는 하나를 주었고, 나는 그렇게 처음 그것을 들이 마셨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곳에서 처음 하는 사람이 기침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기침을 할까 봐 숨이 막힐까 봐 겁이 났다. 그런데 아니었다. 꽤 괜찮은 느낌이었다. 기침도 하지 않았다. 마치 몇 번 해본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정말로 내 눈에 한숨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들이마시고 뱉어내고, 들이마시고 뱉어내고. 전부 타 들어갈 때까지 나는 그렇게 내 속에 있던 모든 것을 뱉어냈다.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퍼져가는 연기를 통해서 내가 흩어지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하늘을 나는 것 같아서, 하늘을 나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그래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나는 술을 마시면 그것을 찾게 되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평소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상하게 술을 마시면 그렇게 내 속 이야기들을 하고 기분이 우울해지면 생각났다. 답답한 내 안에 한숨들을 전부 다 뱉어내고 싶었다. 하루는 흩어지는 연기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하는 사람들을 싫어했었는데, 아빠가, 동생이 하는 것이 싫었는데 그런데 아빠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엄마에게, "엄마가 아빠한테 끊으라고 해 봐" 라고 한 적이 있다. 엄마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대답을 했다. 


너희 아빠 저거라도 안 하면 스트레스 받아서 쓰러진다. 그러니까, 그냥 둬.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스트레스 해소를 자기 몸 망가지면서까지 해야 되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흩어지는 연기를, 한숨을 보고 있으니 아빠가 뱉은 수많은 한숨들이 얼마나 이 세상을 떠돌고 있을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출처@goranmx/pixabay


그렇게 조금씩 습관이 되어갈 무렵, 일이 터졌다. 엄마가 내 서랍에서 물건을 찾으려 열어본 것이다. 엄마는 동생에게 물었고 동생을 알면서도 대충 얼버무렸다. 동생은 그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주었고, 나는 그저 엄마가 모른 척 넘어가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딸을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은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딸, 담배 펴?


나는 그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딸의 대답을 듣고, 엄마는 울었다. 처음으로 딸 앞에서. 딸이 힘든 것은 알았는데, 그저 혼자 잘 이겨내고 있다고 믿었는데, 엄마는 딸이 쓰러져가고 있다는 것이 속상했다. 자신의 딸이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해 결국 이렇게 된 것이 속상했다. 그렇게 엄마는 딸의 손을 잡고 울었다.

 

요새 많이 힘들었어? 말을 하지 그랬어...


나도 울었다.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내가 싫었다. 내 앞에서 우는 엄마가 싫었다. 엄마를 울게 만든 내가 싫었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속상했다. 엄마보다 더 크게 울었다. 엄마의 손을 붙잡고 울었다. 


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이제는 안 그럴게. 미안해, 미안해. 

잘못했어, 잘못했어요.


죄를 지은 사람이 용서를 구하든 엄마의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 채, 큰소리로 울었다. 후회가 한 방울씩 떨어져 무릎을 적셨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원망스러웠고, 나는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스스로를 망가트렸을까 생각했다. 엄마는 자신의 눈물보다 딸의 눈물을 닦기 바빴고, 그동안 안아주지 못한 것을 갚아주듯 그렇게 딸을 꽉 안아주었다. 


그날 이후, 다시는 손에 대지 않았다. 답답함은 있었지만 엄마를 울게 한 내가 더 답답했으니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답답함을 풀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찾았고, 답답함도 그저 그러려니 그 감정마저 온전히 내 것이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감정을 핑계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가끔은,

내 상처보다 내가 남에게 준 상처가 더 아픈 것 같다. 


<나를 태웠습니다 - 정이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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