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무통주사 못맞은 슬픈 이야기
※ 이 글은 제 네이버 블로그의 글을 옮겨 온 글입니다.
[노르웨이/임신/출산] 13. 내 아기와 만나던 순간 (feat.무통주사 못맞은 슬픈 이야기)
https://blog.naver.com/chungsauce?Redirect=Update&logNo=222129085691
예정일인데, 당연히 소식이 없었다.
노르웨이에서는 40주0일이 아닌 40주 3일을 예정일로 보고 있어, 사실 한국 기준으로는 예정일을 3일 정도 지난 상태였다.
몸은 정말 한 없이 무거웠고, 이렇게 누워도 힘들고, 저렇게 누워도 힘든 나날이었다.
몸에 품고 있을 때가 낫다는 육아 선배들의 말이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걷는다, 만보.
너가 나올 때까지.
만보걷기는 계속되었다.
예정일 당일은 일요일이어서 남편과 시댁 근처 호수를 돌며 아무래도 오늘 안나올거 같다며 툴툴 거렸다.
그도 그랬던 것이, 출산에 임박하면 태동이 좀 줄어든다던데, 태동은 대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방심은 금물,
오늘이 아닌줄 알았지?
그렇게 하루를 바쁘게 보낸 예정일 저녁.
가진통이 시작되었다.
나는 33주차에 조기진통을 겪은 적이 있어서, 숨을 고르며 진통 주기를 체크했다.
진통은 33주에 겪었던 조기진통보다도 안아픈 정도였기 때문에 긴가민가했다.
진통은 저녁 8시부터 시작되어 저녁 10시까지 주기가 조금씩 짧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지난 번 겪었던 조기진통보다는 아픈 정도가 아니라서 병원에 전화를 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계속 진통 주기를 확인하는데, 어쩐지 오늘 병원에 갈지도 모를 것 같은 느낌이 왔다.
그래서 누워있다 말고, 바로 샤워를 하고 남편에게도 혹시 모르니 샤워하고 대기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엄마의 촉은 남다르다더니,
샤워를 마치고 침실에 들어오자마자 배가 조금 더 잦은 강도로 아파오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산과에 전화하라 시켰고, 남편도 내가 너무 말짱해보여서인지, ‘오늘은 아닐거 같은데’라면서 산과에 전화를 걸었다.
산과에서는,
일단 예정일이 오늘이니까,
진통 주기도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 내원해봐
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혹시 모를 출산가방을 짊어지고 병원을 향한 우리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러다 집에 다시 오는거 아니냐며 흰소리를 해댔다.
어서와,
레알 진통은 첨이지?
병원에 들어와서, 나를 담당할 미드와이프를 만나 진통 이야기를 하고, 이슬이 비쳤는지, 양수가 터졌는지 여부 등을 확인했다.
오직 주기적 진통만 있던 나였기에, 진통 여부만 이야기하고 소변검사를 하러 들어갔는데, 오늘이 그날인가.
이슬이 비쳤다.
미드와이프에게 이슬이 비쳤다고 말하자, 아무래도 아기를 만날 날일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오...
그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진통이 더 강하게 오는 느낌이었다.
에피듀랄 주세요. 당장
노르웨이에서 출산을 경험한 한국분들이 하나같이 말해줬던 게 있다.
산과에 들어서자마자 무통주사를 놔달라고 할 것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라는 것이었다.
노르웨이는 임신/출산의 과정이 모두 무료라서 그런지 아니면 자연주의적 출산을 지향해서인지, 무통주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출산할 것을 권유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잊지 않고, 분만실로 부축받아 옮겨가는 와중에도, 에피듀랄을 놔달라고 계속 외쳤다.
미드와이프가 에피듀랄을 맞혀줄 마취과 의사에게 말하고 내 순서를 기다릴 동안 나는 진통이 점점 더 심하게 옴을 느꼈다.
미드와이프는 내게 욕조 안에서 진통을 좀 완화해주도록 할 것을 권유했다.
https://brunch.co.kr/@chungsauce/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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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에 누워있으면서도 딱히 내 진통은 완화되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에피듀랄은 대체 언제 맞을 수 있냐며 계속 에피듀랄만 외쳐댔다.
그런데 오는 날이 장날이었는지, 나 말고도 출산을 준비하던 산모들이 병원에 꽤 있었고, 내 순서는 도통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욕조에서 나와서 침대에 거꾸로 기대어 웃음가스에 의지하며 에피듀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옆에서 안절부절하면서 진통이 올 때마다 호흡을 카운트 해주었다.
도통 에피듀랄을 맞을 차례가 안오는 와중에, 미드와이프가 내진을 해보자 했다.
그....
자궁문이 8cm까지 열렸거든
?
병원에 온지 두 시간도 안지났는데, 내 자궁문은 첨 내원했을 때의 3센치에서 8센치까지 열려버렸다는 것이다.
미드와이프는 자궁문이 너무 빨리 열려서 이제 무통주사를 맞으면 의미가 없을 것 같다 했다. 무통주사를 맞아서 마취가 효과가 오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리니 나는 이제 곧 출산을 해야되는 시간이 다가오니 효과가 즉각적인 다른 마취주사를 맞자고 했다.
아 제발
뭐든 좋으니 아무거나 빨리 주세요.
진통 주기는 점점 더 짧아지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친 고통이 몸을 엄습하고 있었다.
서지도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극강의 고통에 정말 이건 대체 끝나긴 하는가 싶을 정도로 눈물도 바싹 말라갔다.
마취의사가 와서 스파이널이란 마취주사를 줄 거라고 설명을 했고, 허리에 바로 마취주사를 놓았다.
주사를 놓고 10분 정도 지나자마자 발까지 감각이 없어지는 듯 했고, 미친듯했던 진통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미드와이프는 내 진통 주기를 측정해 보여주면서 마취가 잘 들었다며 먹을 것을 좀 먹으라며 음식을 준비해줬다.
이때는 정말, 진통이 느껴지질 않아서 남편과 사진도 찍고(?) 음식도 먹으며 체력을 보충했다.
미드와이프는 8센치에서 출산이 준비되는 10센치까지 열리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며, 4시 반부터 본격 힘주기를 시작하자 알려주었다.
자정이 될 시간에 병원에 들어왔으니, 거의 4시간 반 만에 힘주기를 하게 생긴 것이다. 미드와이프도 초산치고 굉장히 진행속도가 빠르다며,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격려해줬다.
그러면서 무시무시한 한 마디를 해줬다.
스파이널 마취제는 마취효력이 다 하면 이제 다시 못맞을거야. 힘 줄 때, 마취제가 안들어간 단 소리지.
이때는, 이 말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말인지 알지 못했다.
알고보니 에피듀랄은 힘 줄때도 마취제를 조금씩 주입할 수 있다는데, 내가 맞았던 스파이널은 효과는 즉각적이었으나, 한 번만 맞을 수 있고, 다시 주입할 수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조금씩 진통이 감각으로 느껴질 때 쯤, 본격 힘을 줄 4시 반이 되었다.
마취제가 효력이 없어지고, 진통 주기가 빨라짐을 느꼈다.
내진을 한 미드와이프가 아기의 머리가 많이 내려왔다면서 힘주기 딱 좋은 컨디션이라고 했다.
힘주기에 앞서, 호흡을 어떻게 해야 아기 머리에 무리가 안 가는 지를 알려주었고,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아기 머리에 무리가 올지도 모른다니 그 부분에선 정신이 또릿해졌다.
Give me,
everything you have!
마지막 힘주기를 할 때는
미드와이프가 한 말이라고는 저 말 밖에 기억이 안난다.
정말 ‘젖먹던 힘까지’란 말이 어떤 건지 이 순간 절절하게 실감했다.
소리를 내면 내 호흡에 무리가 오니 입은 벌리 되 소리는 내지말라던 미드와이프의 가이드가 이렇게 찰떡같이 따라질 줄이야..
힘을 여러 차례 주는 데, 나를 담당한 미드와이프 외에 몇 명의 미드와이프들이 더 들어와서 마지막 스퍼트를 낼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마치 돌비7.1 써라운드 처럼 사방에서,
아기 머리가 보여!
다 됐어! 거의 다 왔어!
너무 잘하고 있어!
이런 격려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미드와이프가 내게 말해줬다.
이번 마지막 힘주기에서 아기가 나올거야
절대 힘을 끊거나, 호흡을 다시 하지마.
이미 진통을 온 몸으로 체감하며 함주기를 하느라 기진맥진한 나는, 오히려 마지막 힘주기란 말에 힘이 났다.
진통이 오면 이번에 무조건 끝낸단 생각으로 힘주기를 하리라 맘을 먹었다.
마지막 힘주기는, 정말 극강으로 고통스러웠다.
진통을 온전히 감내하면서 힘을 주는데 이러다 죽겠구나 싶은 느낌이 들었다.
미드와이프는 내 호흡이 끊겨 아기 머리가 다시 끼일 불상사를 막기위해 앞선 힘주기때보다 더 강하게 나를 몰아붙였다.
콧구멍으로 수박을 낳는 기분
출산을 미리 경험한 친구들이 하나같이 아이를 낳을 때의 기분을 저렇게 얘기해줬는데, 나는 이제 그 느낌이 뭔지 안다.
마지막 순간 지독한 고통의 끝과 함께 수박을 낳듯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아기가 나오자마자 온 몸에 전율과 오한이 들었다.
그러고서는 여태까지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나도 모르게 소리내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도 그 혼미한 와중에 주변에 물었다.
애기가 왜 안울어요?
애기는 어딨어요?
남편도 이미 울고불고 난리인 와중에, 아기가 괜찮다며 나를 달랬는데, 자꾸 아기 목소리가 안들리는 것 같아서(어디서 본 건 있어서) 울면서 물어봤다.
그러다 아기의 찢어지는 울음소리와 함께 아기는 간단하게 닦여서 내 가슴 위에 얹어졌다.
내가 출산한 병원은 모유수유를 적극 권장하는 병원이라 출산 직후 엄마 가슴에 아기를 얹어 젖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했다.
아기는 신기하게도 정말 내 가슴을 찾았고, 나는 계속 어딘지 북받치는 감정에 엉엉 울었다.
콩~그래츄~레이션~
후처치를 하고 아기와 계속 캥거루케어로 누워있는데, 뜬금없이 웬 콩그래츄레이션 소리가 들렸다.
미드와이프들이 출산을 축하한다며,
얼음 동.동. 띄운 애플주스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들고 왔다.
나중에 한국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엄마와 친구들은 경악했다.
그렇지만, 나는 저 애플주스를 마시자마자 샤워하라며 샤워실로 등떠밀려 갔던 것이 더 충격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내가 두 발로 직접 걸을 수 있는 걸 확인한 미드 와이프들은 나와 남편 그리고 아기가 사흘 동안 머무를 수 있는 호텔(산후 호텔)로 나를 안내했다.
이제서 정신이 조금 들어 아기도 다시 보고, 아기 출생 기록도 다시금 보았다.
이렇게 총천연색의 다채로웠던(?) 나의 임신/출산 기는 마무리가 되었다.
내 임신/출산 이야기를 굳이 블로그에 남기고 싶었던 이유는,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어서도 아니고, 이렇게 힘들었다 칭얼대려고 한것도 아니다.
그냥 정말 지금 써두지 않으면 이때의 기억이 망각곡선대로 희미해질 것 같기 때문이었다.
여러 에피소드와 이벤트가 많았던 내 출산까지의 여정은 고된 순간도 많았지만, 그만큼 기쁨도 많았고 설렘도 많았다.
2020년 여름,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세상에 나온 우리 아들은
이제는 제법 사람다워져서(?) 유치원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이렇게 임신과 출산기는 마무리하고, 여기서 겪어본 육아 일기를 써볼까 한다.
이 역시도 시간이 흐르면 또 희미해질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