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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육펜스 Dec 03. 2021

<리뷰> 독립영화 "두 개의 선"

"두 개의 선"은 결혼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거친 한 여성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풀어낸 작품이다.  

 2012년, 막 출산을 했던 때였는데 우연히 TV에서 보고 공감이 많이 됐던 작품. 

 엄마들이 보면 여러가지 생각들이 많이 든다. 

 아래는 그 때 적은 글이다. 

(사진 출처 - 네이버 홈페이지)

  

피곤하고 졸린 데 밤이 되면 잠을 자고 싶지 않다. 

하루종일 내 시간이라는 게 없으니 아이가 밤잠을 자는 이 시간만이라도 

뭔가를 하고 싶은 탓이겠지. 요즘은 바닥에 내려놓기만 해도 목 놓아 울어대는 통에 

하루종일 업은 채로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쓰레기를 내다 버린다. 


분유 4번, 이유식 2번, 간식 1번, 하루 일곱 번의 일정을 맞추고 

이유식 거부하는 고급 입맛때문에 매 끼니를 새로운 메뉴로 해다 바친다. 

그래봤자 3분의 2는 고스란히 쓰레기통으로 직행하지만... 

요즘은 정말 식모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몇일씩 씻지도 못하고, 기름에 쩔은 머리는 질끈 묶고, 온 옷에는 아이가 묻힌 침이며 음식물, 과자 부스러기가 말라붙어 있다. 


그래도 아이 보는 재미에 버텨왔는데 

7개월이 넘어가기 시작하니 감정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오늘 아침에는 갑자기 밥 먹다 말고 울컥하니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뭔가 통제가 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늦게 퇴근하는 것도 모자라서, 워크샵 1박 2일로 간다는 남편 말을 들으니 

속상하기도 했거니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고 그런 일상이 

우울하기도 하거니와 어제 본 다큐영화의 여파도 있었던 것 같다. 


뉴스든, 드라마든 하도 뭘 본 지가 오래 돼서 

뭐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아이가 자는 틈을 타 텔레비젼을 켰는데 

<두 개의 선>이라는 영화를 하고 있었다. 


여자 감독은 자신의 얘기를 찍었다. 

평생 연인으로, 친구로 살아가되 절대 결혼은 하지 말자고 약속한 남자 친구가 있었고, 남자와 여자가 동거를 한다. 살림은 비루하지만 신념의 동지가 함께 하니 행복하다. 

그런데 아기가 생기면서 이런 삶에 균열이 생긴다. 

처음에는 큰 변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선 아기가 무슨 죄냐, 왠 책임없는 행동이냐 빨리 혼인신고부터 해라 질타하지만 둘은 동거인 상태로 아기를 낳는다. 그런데 아기가 아프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비를 지원받기 위해선 저소득층 가정이라는 증명을 보여야 한다. 

동거인은 부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출생신고 마지막 날, 결국 둘은 혼인 신고를 하고 아이의 출생신고를 한다. 

아이는 성 또한 아버지의 것을 쓰기로 한다. 

처음엔 똑같이 분담했던 집안일도 아기를 키우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여자에게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이 자연스레 넘어오고, 

오히려 남자보다 주변 사람들이 여성에게 그 역할을 강요한다. 

집이 지저분하거나 집에 먹을 게 없을 때 많은 사람들은 여자를 탓하고 

여자는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엮이기 싫었던 서로의 가족과 집안이 얽히기 시작하고, 

경제적 안전망이 불안한 여자는 남자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얘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혼인신고를 함으로써 마음 속 깊은 곳에 갖고 있던 

약간의 불안감이 해소되기도 하는 건 사실이다. 

그렇게 아기가 생기면서 지금껏 주장해왔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 무너진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 발악했는데 수포로 돌아간다. 

다르게 살고 싶었는데 똑같이 돼 버렸다. 

당연한 귀결이었는데 좀 슬펐다. 


살다보면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는데도 그냥 그렇게 될 때가 있구나 싶은 요즘이다. 

모든 상황과 여건이 받쳐주지 않는다. 

신랑도 있고 아들도 있고 너무나 행복한데 

정작 나 자신은 거센 강물에 휩쓸려 원치 않는 방향으로 마구 떠밀려 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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