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문화교회 박종걸목사님 설교)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면서 하신 말씀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요한복음 4:43-44)
대구문화교회 박종걸목사님은 환대 받는 사마리아를 떠나 박대 받을 것이 예상되는 갈릴리로 발걸음을 옮기시는 예수님의 결정에 의미를 부여하셨다.
사랑받는 곳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야 하는 숙명적 사명...
물론 가야 하는 사명을 감당하려면 자신이 먼저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말씀하셨다. 자신의 불행은 다른 이들에게 전염되기도 하고, 심지어 해를 끼치기도 할 것이니...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고.
그러나 우리 기준으로 모든 조건과 행복의 요건을 다 갖추어야 행복이 채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떠나 향하신 곳은 갈릴리 가나였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첫 기적이 행해진 곳이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의도적으로 연결이 된 것이라고 하셨다.
병든 아들을 고치려는 소망으로 가버나움에서 새벽에 출발해서 6-7시간을 걸어서 예수님을 만나러 갈릴리 가나까지 왔던 왕의 신하에게 베푸신 치유의 기적...
포도주로 바꾼 기적은 일상의 기쁨과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다면, 동일한 장소에서 원격으로 행해진 치유의 기적은 부활과 영생의 본질적인 복음의 은혜와 축복의 표징이었다는 것...
그 축복과 은혜를 누리고 있다면 일상에서의 불편함과 고통도 그 기쁨과 행복을 막아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쁨과 행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앗아갈 수 없고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소중한 가치일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담임쌤들과 교장쌤의 환대와 같은 만류에도 난 그곳을 떠나야 했다.
고등학교로 돌아갈 것이 결정된 지금, 고등학교는 중학교 오기 전에 23.6년 거했던 고향 같은 곳이지만, 칼퇴가 보장되고, 평가와 생기부 등의 부담이 훨씬 적은 중학교를 떠나 고등학교로 돌아가는 그 길은 마냥 편하기만 한 곳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내게 굳이 그 힘든 길을 가려 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일이 많고 수업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점심시간 수업이나 19년째 이어지는 영어멘토링 학습코칭을 하며 애쓰지 않았을 것이니까.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쓸모에 대한 의미 부여였다. 물론 중학교에서도 나를 필요로 하는 많은 학생들을 만났다. 그러나 늘 나는 더 큰 절실함을 만나고 싶었고 더 큰 역할과 쓸모에 대해 늘 갈구함이 있었다.
매년 담임으로서 학생들을 만나기 전 이런 기도를 했다.
“내가 지도하기 편한 학생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학생을 만나게 해주세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나서 더 절실해진 마음으로 그 기도를 할 수 있었다.
목사님의 설교는 그런 결단을 하며 나의 쓰임에 대해 고민하던 타이밍에 내게 선언문처럼 다가왔다.
사랑받는 곳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야 하는 숙명적 사명...
내가 어떤 마음으로 고등학교로 돌아가며 어떤 절실함으로 그들을 만나야 할 것인 가를 다시 상기하게 해주셨다.
고등학교 4년의 공백, 낯선 곳에 대한 불안함, 4년을 더 늙어 버린 지금 내가 이 나이에 과연 예전 같은 역할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이젠 그런 생각들을 설렘으로 바꾸는 기도로 나아간다.
고3 담임이 거의 확정된 지금, 이번 달이 지나기 전.. 마지막 주에 그 기도의 응답인 학생들과의 만남을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