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선택과 집중의 삶을 산다.
모든 걸 다 잘 해낼 수 있고, 모든 것에 다 신경 쓸 수 있을 거라는 교만에서 벗어난지 오래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싶다. 그것만으로도 벅찬 체력과 부족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둘째 딸이 대학 댄스동아리 임원을 맡아서 열심이다.
최근에 댄스부 친구들에게 뭘 그렇게 빨리 열심히 하냐고, 참 부지런하다고 규정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마감시한까지 미뤄두었다가, 최후의 순간이 다가와야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의 도움으로 마감을 완성하던 딸은 난생처음 들었던 그 말이 신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얘기해 주었다.
아빠도 원래는 게으른데, 너처럼 걱정이 많아서 미리 끝내려 하는 거다. 시험 기간까지 걱정을 이어갈 자신이 없으니까 평소에 공부를 더 해두는 거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마감시한까지 걱정을 이어가고 싶지 않아서 바로 끝내고 잊어버리는 거지.
결과적으로는 부지런함으로 비칠 수 있는 그런 속성도 알고 보면 게으름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에듀테크에 관심을 가지고 늘 실행하려고 애쓰는 것은 시간을 절약해서 쉬거나,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다. 그러니까 게으름이 효율추구의 동력인 셈이지.
그렇게 아빠처럼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딸에게 축하와 반가움의 인사를 건넸다.
애초에 게으름이 디폴트 값인지도 모른다. 게으르지 않으려는 포장은 각기 다른 타이밍과 전략과 방법으로 구현될 뿐이다.
나이가 든 탓인지, 체력이 더 떨어져서인지, 걱정에 다소 둔감해져서인지...
최근에는 자꾸 미뤄두는 습성도 생겼다. 무기력함에 가까운 힘든 상황에서는 마감의 힘을 빌려와야 할 때도 있는 거였다.
젊은 날의 체력으로 걱정조차 내 통제하에 두려고 했던 그 영역에서 밀려나는 느낌이다. 아니 자발적으로 그 늪에서 나오려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대학 학과 동기가 MBTI의 "파워 J"에 대해 서로의 기질을 인정했는데... 그런 성향이 드러나는 이유는 어떻게든 상황을 통제하고 싶고, 변수를 최소화하려는 걱정 때문이라는 것에 서로 공감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원래부터 성실했겠지만, 나는 성실함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게으름에서 나오는 일종의 방어기제였던 셈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기력도 쇠하지만 모든 상황을 다 통제할 수 없음을 자꾸 인정하게 된다. 저학년 학생일수록 바뀔 가능성이 높아지긴 하지만, 인간은 잘 바뀌지 않으며 적어도 우리가 원하는 타이밍에 그 성장과 변화를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젊음의 혈기로 어떻게든 조급하게 학생을 바꾸려 했던 것에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 좀 더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딸은 나처럼, 나는 딸처럼 되어간다는 현상이 참 기이하고 신기했다.
장점과 단점의 문제도 아니고 꼭 어떠해야 한다는 지향점도 아닐 것이다.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의 진심과 노력이면 그걸로 충분할 것이니...
당장의 성취여부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