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아침 시간>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출근은 7시 50분까지여서 평소보다 15분 정도 일찍 집에서 나선다. 아침 7시쯤.
지하철을 타고 걸어가는 출근길은 비슷하다. 10분을 덜 타고 10분을 더 걷게 되어 출퇴근 소요 시간도 비슷하다. (집에서 자전거로 지하철역까지 4분, 지하철 15분, 학교까지 빠른 걸음으로 21분 + 지하철 기다리는 시간)
걷는 기회가 많아져서 건강에 더 이롭다고 믿고 싶지만, 지하철 내려서 버스 환승하려는 유혹을 매일 매 순간 이겨내야 한다.
우리 반은 고3인데다가 학업에 열의가 있는 학생들의 비중이 높아서 아침 영어 단어 시험 없이도, 담임의 잔소리 없이도 면학 분위기가 바로 조성된다. 아침 전달사항 전달하기가 미안할 정도다.
교실에 들어서면 교탁 옆의 내 자리에 앉아서 전교생 사진대장 읽기로 하루 루틴을 시작한다.
반 아이들은 내가 잠시 교무실에 다녀와도 전혀 동요되지 않고 분위기를 유지한다.
<중고의 가장 큰 차이는?>
사소한 것까지 밀착 지도해야 하는 중학교에 비해 고등학교는, 특히 고3은 자율성이 극대화된 학년이므로 갑자기 거리 유지의 의무라도 부여받은 듯 매순간 학생들의 자율성과 선택을 존중하는 자리에 있게 된 것이 몇 달 만에 갑자기 달라진 일상이다.
<점심시간>
중학교와 달리 점심시간 교실 순회 당번도 딱히 필요 없다.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교과교실에서 자습을 하거나 홈베이스에서 친교를 나누고 도서관에서 운동장에서 지신들만의 자유를 누린다.
점심 식사 후 선생님들도 운동장을 산책하는 등의 여유를 가진다.
<하루 일과 비교>
칼퇴가 거의 보장되고 시간외 근무가 일상적이지 않던 중학교에서는 바쁜 업무와 학생지도와 교재연구 등의 일을 퇴근 전까지 마무리해야 하니 바쁘게 일상이 진행되었다. 원서 업무나 학교 내 강의 등으로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날도 더러 있었지만 중학교에서는 단 한 번도 초과근무를 올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다시 와 보니 담임의 경우 학년 업무 외에는 학교 업무와 겹치지 않아 업무 부담이 중학교보다 크지 않고, 수업시수도 중학교보다 적으며 시간외 초과 근무가 일상적이어서 서둘러서 일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니 시간의 흐름이 다소 느려진 듯하다.
4년 만에 초과근무 결재 올리고 지문 찍고 출퇴근하는 일상이 낯설어서인지, 초과근무 일자를 잘못 올리고 지문만 찍어서 시간외수당을 날리는 황당한 신고식도 했다ㅋㅋ
중학교 때의 분주함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인지, 원래 내가 그랬던 것인지 잘 구별되지 않지만 공강시간에는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늘 있다. 순 수업시수가 중학교 18시간에서 15시간으로 줄었다.
물론 수업 시간이 45분이 아니라 50분이라는 것은 사소하지 않은 차이지만, 금방 적응했다. 중학교 수업시간보다 시간이 더 빨리 가는 느낌이다.
중학교에서는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좀 더 늦추고 더 낮춰서 우회하듯 가르쳐야 하는 느림의 미학이 포함되어서 그런 것 같다.
고등학교 와서는 모든 학생들이 내 말을 다 알아듣는 건 아니겠지만 의식적으로 좀 더 구체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것만 같다.
그래서 더 많은 말을 하고 더 압축된 수업내용을 전달하고 있음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수업을 하고 있다.
<고3 담임이라서 더 바쁘다는 오해>
고3 담임이라서 퇴근도 많이 늦고 힘들지 않겠는지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러나...
학교마다 사정이 다르겠으나, 대구에서도 코로나 이후 전체 학생들 대상으로 한 배정형 보충수업도 자취를 감추었고, 야자도 강제로는 시행하지 않는 것 같다.
방과후수업이 없으니 7교시 수업 마친 4시 30분 이후에는 오후 자습이 진행되고 석식 이후 야자 및 심자로 이어지는데 오자도 희망을 받아 자율적으로 하는 추세다.
고3인데 오자를 안 하고 뭐 하나고 물으면 아이들은 대뜸 학원 스케줄이 있다고 대답한다. 자습의 중요성을 외쳐도 학원 선택을 말릴 명분도 이유도 없다.
학원이 아니라도 나름 관리형 독서실이나 스카 정기권을 끊어서 다니는 학생들도 많은 것 같다.
7교시 후 4시 반부터 6시 10분까지 자율적인 오자 시간이 시작되면 담임쌤들이 따로 당번으로 감독을 하니 굳이 학교에 남아 있지 않아도 된다.
석식도 7시 이후까지 시간외근무를 올리고 근무하는 쌤들께만 무상 제공된다.
우리 학교는 3학년 담임들로만 야자 감독 당번을 정하는데 12개 반이니 12일마다 당번이 돌아온다. 물론 토요일 오전, 오후 감독도 따로 돌리니 6주에 한 번씩 오전이나 오후 반나절 근무를 해야 한다.
<고등학교의 더 큰 부담>
물론 고등학교는 생기부 부담과 수행, 지필평가에 대한 부담과 무게감이 중학교와 사뭇 다르다. 그러나 학생들들에게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면 사뭇 설레고 멋진 여정일 것이라 믿고 싶다.
어쩌다 보니 가는 곳마다 교과 평가계획이나 진도표, 시험문제 편집을 거의 도맡아 했었는데, 오래간만에 돌아온 고등학교에서 나이도 훌쩍 많이 들어 있었고, 나이 때문이 아니라도 배우려는 겸허한 자세라는 핑계로 초반부의 그런 업무를 무임승차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놀라고 있다.
물론 기존에 계시던 좋은 후배 영어선생님들을 만난 덕분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물론 학년에서의 나의 역할을 찾을 것이니 미안한 마음은 갖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중학교 생활지도와 교육에 대한 고민>
중학교 있을 때는 교육 자체에 대한 고민할 기회가 많았고, 그 고민의 결과를 블로그에 많이 옮겼던 것 같다.
고등학교 오니 뭔가 달라졌다. 교육의 근본적인 고민이 특히 고3에게는 사치인 것 같다. 고민을 그저 살아내야 하니까.
그러니 교재연구에 집중하게 되고 고3 담임이니 당장 직면한 입시정보에 집중하게 될 것 같다.
중학교에서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생활지도에 대한 무력감 때문이었다. 학업에서도 준비되어 손을 내미는 학생들에게는 모든 열정을 다 쏟았지만 준비 안 된 학생들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괴로웠고, 나의 무능력을 한탄하며 지냈다. 생활지도 면에서도 그랬다.
내가 고등학교 교사로서 뛰어난 것이 아니라 중학교 교사로서 약점이 많은 교사였던 것을 중학교 현장에서 알았다. 노력으로 개선될 여지는 있었겠지만 늦깎이 신입사원처럼 좌충우돌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커졌다.
안 쓰던 근육을 계속 써야 하는 상황 같았다.
물론 고등학생들 생활지도가 훨씬 더 수월하다는 것은 아니다. 방향과 방법이 다를 뿐이다. 오히려 현실의 벽 앞에서 괴로워하며 마음이 아픈 학생들도 있다. 고등학교라고 지각하는 학생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훈육과 자기성장의 경계를 오가며 소모전을 벌이기도 해야 한다.
<고입, 대입 지도의 차이>
중3 입시는 담임교사와 학년부장에 무한 책임 시스템처럼 느껴졌었다. 일반고 컷을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원서접수 업무는 담임의 세세한 관여를 통해서 이뤄졌고 원서접수의 모든 과정은 디지털 시대에 추가로 치밀하고 빈틈없이 정확하게 도장과 확인서와 출력물을 다 갖춰야 하는 부담의 연속이었으며, 학부모님들과 입시 결과를 놓고 갈등을 겪을 가능성에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고3 입시는 그에 비해 자율성이 보장된다. 아니 보장해 줘야 한다. 학부모님들은 사설 입시컨설팅을 더 의지하기도 한다. 그러니 학교에서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공할 뿐 모든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것이 당연한 문화가 된듯하다.
<새로운 목표>
물론 학교 적응과 학생들을 위한 교육 활동이 우선순위다. 상담과 생기부 기록에 필요한 학교행사의 멘토 역할도 학생들이 원하다면 그들 편에 서주려 한다.
부디 나이와 체력 핑계 댈 일이 없기를...
어떤 식으로든 배움과 성장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