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행사처럼 벚꽃이 만개할 때쯤 진분홍색 옷을 입고 출근한다
청블리라는 별명이 시작된 옷이어서 기념일을 챙기는 느낌도 있다.
일 년에 몇 번 안 입어서인지 옷 자체의 품질이 좋아서인지 15년을 훌쩍 넘겼다.
학생이 선물했던 옷이다. 그전에도 분홍색 옷을 입고 다녀서였는지, 학생이 내게 어울릴 것 같아 추천하듯 선물했는지 이젠 그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마치 내 퍼스널 컬러인 것처럼 키보드, 마우스 등 개인 물품도 분홍색을 우선 선택한다.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아서 더 기억하기가 좋은 것인지, 어떤 제자들은 수업용 파일, 마우스패드 등도 분홍색으로 선물해 주기도 했다.
왜 분홍색이 좋냐고 물으신다면? 하늘이 왜 푸르고, 꽃은 왜 피는지 묻는 것과 비슷한 대답일 것 같다.
갑자기 이유가 있는 건 좋아하는 거고, 이유가 없는 건 사랑하는 거라는 말이 떠오른다ㅋㅋ
혹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게 이유라면 분홍색은 탁월한 선택일 것이다.
올해는 벚꽃이 질 무렵, 망설임 끝에 다른 해보다 더 큰 용기를 끌어모았다.
쌤들과 학생들과의 래포가 예전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출근하자마자 담임쌤 중 한 분이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색깔이라고 내게 농담처럼 말을 던지셨다.
주변 쌤들은 화사하고 좋다고, 남자는 핫핑크라고 변호해 주시면서 갑자기 학년실에 웃음이 가득해졌다.
순간 고민이 되었다. 기분 나빠해야 하는 건가?
그러나 고민이 되었다는 건 기분 나쁘지 않다는 의미다. 그 선생님과 충분히 친해졌다고 생각했고, 평소 화법을 잘 알고 있으니.
자신의 취향을 표현하셨을 뿐이고, 나도 내 느낌에 솔직하면 되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상 범주가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누군가 그걸 넘어서는 듯한 상황에서 말로 표현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할 것만 같았다.
문득 나의 행동과 말과 매사의 선택에 불편한 마음의 교사, 학생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현을 안 한다고 모두가 괜찮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통념을 깨고 분홍색 옷을 입을 용기가 필요했고, 어쨌거나 취향에 대한 표현도 존중해 주는 것이 마땅했다. 나도 내 취향을 옷으로 자유롭게 표현한 것이었으니.
옷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표현과 상처의 경계는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굳이 자발적으로 상처를 받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문득 분홍색 그 옷을 입고 가자 한 학생이 "무슨 청블리인 것인가?"하면서 비꼬듯 반응하여 '청블리'라는 단어가 내 삶에 처음 들어오던 순간이 떠올랐다.
비꼬는 그 말을 오히려 내 정체성으로 받아들였다.
무뎌질 용기는 훈련으로도 가능한 것이었다.
실은 다른 사람들은 나의 모습과 행동과 말에 별 관심이 없다.
차라리 표현을 한다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중학교에서는 내옷에 대해 딸기우유, 스크류바라는 반응이 쏟아졌었다. 관심은 감사히 받으면 된다. 너무 솔직한 반응이라도.
그러나 나와 상관없는 이들의 말과 글에 상처받는 건 사양한다.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매순간의 다짐과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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