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학생들(고1)의 행복을 지켜주고픈 담임의 첫 편지

by 청블리쌤

(2018. 3. 18.)

사소한 일로도 행복해하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전체적으로 행복한 모습이 개개인의 행복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아직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가 있어 가슴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요소를 딛고 이토록 빨리 적응하고 또 적응해 갈 여러분들의 모습이 대견하기만 합니다.

“행복 = 현실/기대치” 잘 알려진 행복공식입니다. 다른 학교보다 우리학교의 행복지수가 더 높은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현실보다 기대치에 있다는 걸 지난 한 해 이곳에서 서서히 알게 되었습니다. 단지 무조건 서울의 주요대학에 진학해야한다는 욕심이 적다는 사실 외에도, 주어진 것에 그저 만족하며 감사하는 착한 마음이나 인성도 더 큰 행복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더 높은 꿈을 갖도록 격려하는 것을 학생들 스스로 많이 불편해 하였습니다. 현실을 외면하거나 기대치를 높이지 않고 그저 평온해 보이는 행복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해가 바뀌어 여러분들을 새로 만났지만 저는 여전히 여러분들의 꿈을 이야기하고 그 꿈을 이뤄갈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 주도적인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여러분들 자신이지만 저는 그저 제게 주어진 사소하고 작은 비중에서나마 진심을 다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여러분들이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을 거치면서 입시의 과정을 거치고 대학에 진학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그 행복이 지속되도록, 적어도 시간이 더 흘렀을 때도 각자 후회의 몫이 남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 목표는 모두가 명문대에 가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꿈의 모습도 다르고 성취해야할 분야도 다 다릅니다.
제 딸에게도 그런 목표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욕심내는 거기까지이며 자신의 맞는 옷을 입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격려할 뿐입니다.
그러나 딸에게 여전히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때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때가 있는 거라고... 그게 사회에서 통용되는 모든 거래의 내용이며, 실제로 의무적으로 보이는 그 일에 충실하며 인내하며 기다릴 때 그 일조차도 즐거워질 때가 올 거라고... 그러니 때로는 영문도 모르고 그저 습관처럼 뭔가 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저는 똑같은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하고 있네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강권하는 것은 그 의무적인 일들에 치이면서 계속 고통스러워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문턱을 넘어서 이후의 과정이 즐겁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딸이 고등학교 2학년 이과를 진학하기 전 이번 겨울에 수학 선행을 할 것을 조언하였습니다. 학원을 가지 않더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해야 정작 진도를 나갈 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것은 1등이나 1등급을 성취하기 위해 욕심을 내는 작업이 아니라 정작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진도에 맞춰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런 준비 없이는 너무 힘들고 지칠 거라고...

이전에 딸이 고등학교 입학해서 공부가 즐겁고(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많이 하지는 않고 취미처럼 해서 그렇겠지만) 생활이 행복하다는 말에 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딸의 높은 성적을 원하고 응원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그 행복한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존중해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부만 하기에도 바쁜 이 시기에 음악과 사랑에도 빠져서 공부를 더 잘 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 부모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괴로운 일이지만, 그래도 1학년 때부터 매일 학교에서 11시까지 심화자습은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믿음을 가지고 딸을 지켜봅니다.

그런 동일한 마음으로 저는 여러분들을 지켜보려 합니다. 제 관심과 교육이 많은 학생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일으킬 거라는 거,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욕먹을 것을 알면서도 저는 여러분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교육은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과 사회성을 키워나가는 것이고 주위를 돌아보며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과정입니다. 공부를 포함한 그 모든 과정은 본능에 충실하여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사는 것으로 절대 키워지지 않을 것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chungvely를 금기어로 선언하였습니다. 1년 후에 그렇게 불리길 간절히 바라면서 그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년 후 저도 이렇게 말하며 정말 뿌듯한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떠나보내길 기대합니다. “청블리,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그거면 됐다. 널 사랑했다”

작년 이맘때쯤 반학생들에게 써주었던 편지 글의 일부를 아래 인용하며 편지를 마칩니다. 아이들은 달라졌지만 제 마음은 변함이 없네요.

드라마 도깨비에서 날이 좋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순간이 찬란했다는 말...
인생을 오래 산 저로서는 더 큰 감동이 되었던 건 오늘은 이런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고, 내일은 또 저런 이유로 불만이 가득하고, 그 다음날은 그 이후의 일들을 대비하기 위해 즐거울 겨를이 없었던 지난날들에 대한 후회로 귀한 느낌을 떠올렸기 때문이에요.
그런 거였어요. 우리의 매 순간은 지금 현재의 불편함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따위로 망치면 안 되는 것이었던 거거든요. 날이 좋거나 안 좋거나 기분이 좋거나 안 좋거나 상황이 우리 기대대로 흘러가거나 아니거나 관계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가 그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던 거죠.

여러분들은 그렇게 생에 가장 아름답게 빛날 추억을 향한 시작점에 서 있는 거네요. 그리고 저는 그 가장 찬란한 기억 속에 담임으로 여러분들의 기억의 한 부분을 함께 할 수 있는 축복받은 사람으로서 그 소중한 것들을 지켜나가도록 곁에서 지켜보게 되는 것이구요.

지난번 했던 얘기처럼 최악의 경우 비행기가 결항이 되는 등의 일이 생겨도, 날씨가 좋지 않아도 그 순간을 즐기며 지내요. 어차피 그 순간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어떻게든 우리는 이 곳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까 미래지향적으로 현재를 쉽게 보내버리지는 맙시다.
장기자랑 꼴찌를 하거나 실수해서 망신을 당해도 괜찮아요. 우리가 그 순간 가장 행복하면 그걸로 족한 거니까 결과를 위해 그 행복을 흘려보내지 말자구요.

저는 1년간 여러분들의 꿈을 향한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강조하며 결국 기승전공부로 귀결되는 잔소리로 여러분들을 이끌려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매순간 여러분들이 행복하면 좋겠어요. 단지 성적을 올리기만을 위한 도구적인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자체를 즐기며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에 빠지게 되면 좋겠고, 사소해 보이는 쉬는 시간에도 서로 즐거움의 느낌들을 공유하며 그 순간이 즐거우면 좋겠어요.
경쟁을 피할 정도로 비겁하거나 용기 없지 않으면서도 경쟁에 찌들지 않고 여유 있게 맞이하며 큰 그림을 그리는 당당한 여러분들의 모습이 되도록 돕고 싶어요.
넘어지더라도 이게 끝이 아님을 알고 벌떡 일어서며 넘어짐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 힘든 과정이 즐거운 과정이 될 수 있도록 그 곁에 제가 함께 아파하며 함께 즐거워하며 자리를 지키고 싶네요.

어제 꿈속에서 딸 둘과 자전거를 탔어요. 그리고 꿈을 깨어서 눈물이 날 듯 했어요. 이전엔 그렇게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게 일상이었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이 현실로 일어나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커버렸고 자전거는 팔아 버렸고 어느샌가 첫째는 자전거 타기를 두려워하며 자전거 타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어서 말이지요.
일상처럼 보이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나이가 더 들면서 느끼게 되네요.
매순간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다하며 지내면 좋겠어요.
공부건 수업이건, 어떤 행사건, 쉬는 시간, 노는 시간 그 어떤 시간도 찬란한 순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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