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둘째 딸이 고3이 되었지만, 주말이 되어서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할 기회를 가졌다.
반 학생들과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현재 느끼는 마음의 부담과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몇 가지만 정리해 보려 한다.
1. 학년 초 벌써부터 느끼는 조급함에 대하여
학반에서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을 보면 멋있고 존경스럽기까지 하겠지만 그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면 초라하거나 한심하게 느껴질 수 있고, 더 조급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늘 하는 얘기지만, 너만의 속도로 너만의 길을 가도록 애써보렴. 지금 너의 자리에서 뭔가 판단이나 결정을 할 이유는 없단다. 아직 갈 길이, 남은 기회가 너 생각보다 훨씬 많이 있거든. 어차피 남들처럼 똑같이 흉내 내는 건 제대로 된 자신만의 성장이 아닌 거잖니.
그동안 공부에 전력을 다하지 않은 후회로 인해 지금 너의 공부를 일부러 힘겹게 너무 애쓰면서 할 필요도 없다. 그동안 생활의 여유와 여백을 너무 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지금 너에게 여유가 더 필요하다. 그런 여유가 없이는 제대로 본게임을 하기도 전에 지칠 수도 있기 때문이지. 지금도, 앞으로도 너의 공부는 배움의 즐거움을 누리는 행복이면 좋겠다. 스스로 여유도 재미있는 공부도 사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저 충분히 즐거워도 된다. 그래야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거구.
D-day 달력을 보면서 그동안의 시간의 흐름을 생각해 보면 시간 순삭처럼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할 거다.
그렇지만 지난날에 대한 기억은 늘 왜곡되는 거 경험으로 알고 있지? 과거의 기억은 미화되기도 하고,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을 건너뛰어 말 그대로 시간 순삭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기도 한단다. 그러나 오늘 너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짧은 시간이었니? 순간순간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으로 측정할 수 없는 시간의 길이를 가지고 있단다. 아니 실제로 물리적으로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것도 팩트란다.
2. 첫 모의고사를 앞둔 부담감
이번 첫 모의고사가 3월 24일이더구나. 그 시험에 대한 압박감도 엄청날 거다.
그런데 이번 시험의 의미는 네가 수능장에 들어서는 멘탈을 훈련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수능 직전까지 다 이루었다는 깔끔한 완성의 마음으로 시험장에 들어갈 수는 없잖니. 그냥 거기까지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오히려 당당하게 너의 실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더 열심히 했으면 좋았겠다는 가정법적인 생각은 실력 발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니까...
3월 시험도 그렇다. 네가 겪게 될 수능에 비해서 턱없이 덜 준비된 거, 객관적인 사실이잖니. 그동안 네가 너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다면 이번 모의고사는 너에게 충분한 준비를 하고 무대에 오르는 듯한 설렘일 수도 있겠지만.
그저 지금 중요한 건 시험 직전까지의 너의 노력으로 그어 놓은 너의 도달점과 한계를 인정하는 거란다.
9월 모의고사가 수능 직전 가장 중요한 시험이지만, 그럼에도 그것도 수능 성적이 아니다. 3월은 말할 것도 없지.
그저 겸손하게 네가 노력한 그대로 솔직한 결과를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기회라고 생각하렴.
수능 전 모의고사는 건강검진과 비슷하다. 혈압이 높은데 인위적으로 혈압을 낮춰서 건강검진이 좋게 나왔다고 좋아할 일은 아닌 거지. 더 위험한 일인 거란다. 있는 그대로 결과가 나와야 그 솔직함으로 인해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거란다.
시험을 치르는 과정이나 시험 후에 네가 감당해야 할 감정적인 무게가 크겠지만, 내려놓으려 애쓰면서 철저하게 이성적인 판단을 하면 좋겠다. 네가 어디까지 와 있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거란다.
시험 후 아빠가 성적표 가져오라고 해서, 이것밖에 못하냐고 다그치거나 부담 주지 않을 거 알고 있지? 그보다 너 스스로 많이 힘들어하게 될까 걱정이지만, 아빠는 그저 그게 끝이 아닐 것임만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구나. 결국에 도달할 그곳을 바라보면서 조급해하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좀 더 가져도 된단다.
3. 정시파이터로 수업시간에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고민
수시에 올인하는 아이들은 어떻게든 수업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긴 하지. 그에 비해 정시파이터인 너는 학교에서 수능 대비로 수업을 진행을 하더라도, 수능만을 목표로 너의 속도와 발전단계를 고려한다면 학교 수업이 과목에 따라서는 별로 의미 없는 시간 낭비처럼 생각될 수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그게 정말 너에게 도움이 안 될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조급함으로 인한 오판일 수도 있음도 생각해야 한단다.
학교 수준에 따라 수업 수준도 달라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어떤 수업에서도 네가 배울 건 있단다. 조급함이 앞서면 당장 내 앞에 쌓여 있는 목표 분량을 내 힘으로 빨리 끝내고 싶어 수업 시간에 안면몰수하고 수업 안 듣고 자기 공부만 하게 되기도 하지.
그런데 내신은 물론이고 수능조차도 시험에 응시한다는 건 출제자의 의도에 맞추는 일이란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고집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문제 풀 때도 그러다 보면 자신만의 고집으로 쌓아올린 지식의 체계에 시야가 가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단다.
50 정도의 수업을 들었다면, 50 정도를 그대로 산출값으로 생각하지 말고, 수업을 들으면서 너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정보처리를 하고, 다각도로 교재를 검토하면서 완전학습에 애쓰다 보면, 100이 될 수도 있고 200이 될 수도 있는 거란다.
서울대 의대 진학한 제자의 수업 시간 필기는 선생님의 수업을 능가하는 경우가 많아서 선생님들마다 그 노트를 탐내곤 했다. 그 학생의 경우 때로는 수업이 촉매제가 되어 자신의 지식을 확장하기 때문에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모든 수업에 몰입할 수 있었을 거다.
수업 시간에 EBS를 완전학습하렴. 실제 체감 연계율이 유의미하게 높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EBS를 바탕으로 수능 제시문이 나오거나 그 수준으로 출제가 된다고 생각하면서, 교재 자체에 몰입하여 그 시간에 다 끝낸다는 생각으로 도전해도 좋을 것 같다.
4. 수시와 정시의 애매함으로 고민하는 친구의 고민을 들어준 이야기
너는 내신보다 수능이 더 잘 나올 것이 확실한 케이스라서 정시파이터임을 의심할 필요는 없지. 물론 정시파이터는 험하고 힘든 여정을 거쳐야 하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긴 하지만..
그런데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늘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거의 모든 학생이 자신의 내신으로 지원 가능한 대학을 원하지 않는단다. 심지어 9월 모의고사 성적이 아무것도 증명해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내신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을 무시하며 그 이상의 가능성을 꿈꾸는 게 보편적인 현상이지.
수시 중 교과전형은 내신으로 거의 예측이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늘 변수는 있고,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에는 내신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더 큰 변수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거라고 해석하게 되는 경향이 있거든.
게다가 수시 지원하는 대학은 정시로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흔하고... 수능이야말로 아직 남아 있는 가능성이니까, 수시로 여유 있게 합격이 가능한 대학은 쳐다보지 않는 거지. 그런데 수시로 갈 수 있었을 대학을 놓쳐버리고는 정시로도 못 가게 되는 경우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아빠가 고3 담임할 때 아이들에게 이런 전략을 이야기하곤 했다. 남들 합격해서 후회할 만한 대학을 지원하면 합격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소위 자발적 수시납치를 당하는 거지.
고등학교 내신도 특히 고3 수업은 수능대비이긴 해서 이론적으로는 내신과 수능의 방향이 같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막상 공부를 해보면 (방향은 다르지는 않아도) 공부 방식이 분량과 초점이 좀 다르긴 하단다. 수능은 장거리육상인데, 내신은 장거리 육상 중 단거리 경주에도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거든.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어야 하니까... 물론 수시라 하더라도 지원 및 합격 가능성을 높이려면 수능최저등급까지 염두에 두고 공부를 하긴 해야 해서 수능공부를 안 할 수는 없지만, 그게 정시의 자세와는 많이 다르단다. 물론 그런 안일함으로 수능최저를 못 맞추는 경우가 너무 많긴 하지.
올해는 수능최저등급이 전체적으로 완화가 되어 수능최저 맞추기가 쉬워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어떤 학생들에게는 더 안일하게 수능을 준비하게 되어 오히려 악재가 될지도 모른다.
제자들 중에는 수시에 몰입했다가 결과가 좋지 못하니까 정시에 몰입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애들도 있었단다. 그런데 그보다 수시로 갈 대학보다 더 잘 갈 수 있다고 정시를 바라보고 내신에 소홀했는데, 9월 모의고사까지 생각만큼 모의고사 성적이 잘 안 나와서 소홀히 한 내신으로 생각보다 더 낮은 대학을 진학하면서 후회하는 경우가 더 많았단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내신을 거의 완벽하게 관리해 온 최상위권 학생과, 내신에 전혀 미련이 없는 정시파이터라는 양 극단을 제외하면 누구나 다 할만한 고민이란다.
그런데 고민으로 해결되지 않는 건, 당장의 성적만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각 과목별 어느 정도 수능 대비가 되어 있고, 준비도가 어느 정도인지도 다각도로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할 수도 있고, 전문가라고 100% 다 옳게 판단하리라는 보장이 없을 정도로 변수가 많기도 하니 속 시원하게 고민이 해결되기는 힘들다. 개인의 준비도와 성질과 기질도 살펴야 해서 어느 정도가 더 유리하다고 일반화시켜서 말하기가 어려운 면은 있을 거다.
5. 마무리
공부를 열심히 할 때 집중하면 되는 거지,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마음 불편하게 느낄 필요 없단다. 절대 시간낭비가 아니니까.
이번 주 네가 낮밤이 아직 안 돌아왔음에도 힘겹게 몸을 일으켜 토요일 오전 자습과 학교 심자까지 잘 참여해서 너도 기분이 좋을 거고 아빠도 뿌듯하다. 그런데 한 번씩 지치기도 할 거고, 공부가 잘 안되는 순간도 있을 거란다.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렴.
다른 아이들의 속도를 비교하고, 너 스스로의 공부 능률의 시간대를 비교하면서 힘겨워하지 말고 그저 주어진 상황과 기회에만 최선을 다하며 즐거움을 회복하길... 부담 갖지 말고 즐기라는 말은 말처럼 쉽지 않아서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음에도 난 주문처럼 자꾸 일깨워주고 싶다. 무리하지는 말자.
친구들과도 잘 지내되 모든 걸 네가 다 책임지려하지는 마라. 혹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네가 대책을 제시하고 책임지려하지 않아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친구에게 큰 힘이 될 거다. 고3이 되면 사소한 일로도 크게 근심하는 일이 흔하단다. 해결책이 없음을 알면서도 고민을 하는 거란다. 그리고 그때 자신과 함께 아파하며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힘을 얻게 되는 거고... 너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 기대면서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다.
혹 정말 도움이 절실한 친구가 있으면, 정말 절실해서 어색함과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아빠랑 상담을 받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아빠가 얼마든지 도울게. 그 친구도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할 거니까 굳이 아빠가 먼저 나설 일이 아니긴 하겠지만...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