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 과정을 통해 배운 교사의 자세

by 청블리쌤

40년이 넘도록 운전하는 건, 저랑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차가 없다는 것보다 면허가 없다는 말에 놀라는 모든 이들의 반응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았지요. 딸들이 어릴 때도 그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편리함이라 감사하면서 자족하며 살았습니다. 딸들도 차 없는 것에 대해 불만이 없었으며 초등학교 다닐 때 아빠를 차도남(차 없는 도시 남자)이라고 친구들에게 소개하며 자전거 뒤에 매달려 가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이 참 감사할 뿐입니다. 가족 여행은 기차가 닿은 곳 위주로 다녔지요.


이제 딸들이 중고생이 되었는데 이대로 좋을 것 같았는데 나이가 더 많이 들어버린 저는 먼 거리 학교 통근을 하며 너무 아파서 학교를 결근까지 한 상황까지 생기고 와이프가 일단 겨울에 면허를 따서 후일을 대비하자고 저를 푸시하였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다하지 못한 가장의 역할과 혹 편찮아지셔서 거동이 불편해지실 수 있는 어른들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결국 용기를 내보았습니다.


운전학원은 겨울의 특성상 수능 끝난 학생들의 집합소였습니다. 교습일까지의 대기일도 무척 길었습니다. 안전교육을 받으러 강의실에 들어갔는데 순간 저는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수업하러 온 것 같은 익숙한 느낌이 들면서 당황하였습니다. 학교에서 늘 대하던 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만 모여 있었던 것이죠. 이 나이에 면허를 딴다면 난폭운전이나 음주운전으로 면허정지 후 다시 면허를 따는 것으로 오해받는 게 마땅한 상황이었고 이전의 무면허에 대한 남다른 뿌듯함은 때에 맞지 않는 뒤늦은 민망함으로 느낌이 교차하였습니다.


제가 군대로 대학원 마치고 결혼까지 하고 늦은 나이에 갔는데 조교가 제가 처음 발령받은 제자 또래여서 견디기 어려웠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뭐든 제때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좋은 것인데... 때를 놓칠수록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실감하였습니다.


그렇게 수강생이 되어 운전교습을 하고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느낀 점을 교사의 관점에서 몇 가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편견 없는 교사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상관없이 존중하며 진심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스스로의 처지가 남과 다른 상황이라면 눈치를 보며 더 소심해져 있을 수 있는데 일정한 기준을 적용하며 강요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건 교육의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거라는 걸 느꼈습니다.


2. 결과를 빨리 얻어내려는 재촉함과 앞뒤 설명 없는 강요하는 분위기로는 학생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못하니까 배우는 것인데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핀잔을 주거나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도 충분히 하지 않은 채 무조건 뭔가를 하라고 재촉하는 것은 부정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지요.


3. 원리보다 합격 위주의 가르침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운전능력이 생기면 기능시험과 주행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게 당연한데 실제로 주어진 짧은 시간에 원하는 결과를 얻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개정운전면허기능시험에는 직각 주차코스가 있습니다. 초보가 해내기에는 너무 어려운 과제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7가지 공식이 있습니다. 직각 주차코스에 진입하기 전에 오른쪽 어깨와 경계석을 맞춰 멈춘 후 핸들을 두 바퀴 돌린 후 진입한 후 직각 부분의 경계석에서 왼쪽 어깨를 맞추고 오른쪽으로 핸들을 반 바퀴 돌리고 어디까지 전진한 후 어쩌고저쩌고 하는 단계별 공식입니다. 신기하게 그대로 하면 원리를 몰라도 직각주차후 무사히 감점 없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단계 중 하나라도 까먹거나 잘못 적용하면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물론 미국에 살다 왔다고 수능영어 만점을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말을 잘한다고 모두가 국어를 100점 맞지는 못하는 것처럼 시험에 맞는 구체적 방향성을 전제로 한 대비가 필요하긴 합니다.


그리고 또 한 편으로 사교육이나 공교육이나 할 것 없이 점수를 올리고 시험을 통과하도록 한다면 시간이 더 걸리는 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는 것보다 그저 문제를 잘 푸는 방법만 기계적으로 연습하는 것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교육만으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 남들과 더 많이 비교할 때 그로 인해 조급함과 불안함이 커지면 사교육을 통해 그런 비법을 배우려 하는 경우가 많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도로 주행하는 한 강사분의 가르침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회전할 때 핸들을 어느 정도 돌리냐 하는 것은 정해진 공식이 없으니 전방을 잘 주시하며 스스로 해보면서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에 공식으로 직각주차를 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터득한다면 그게 진짜 배움이겠지요. 그분은 또 가속하고 멈추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엑셀이나 브레이크를 밟지 말고 살살 “누질리”라고요. 대구 사투리로 누른다는 느낌의 말입니다. 그러면서 발이 엑셀에 접착제로 붙여 놓은 것처럼 그렇게 두고 “살살 누질리”라고요... 브레이크도 위급상황이 아니면 발을 대고 “살살 누질리”.. 이렇게 하면 운전하는 자신 옆에 탄 사람이 날 믿고 편안하게 잠을 자며 잠을 깰 일이 없는데, 엑셀이나 브레이크를 그냥 밟으면 밟을 때마다 잠을 깨면서 불안해할 것이라고 유머러스하게 말씀해주시는 거였습니다.


4. 아이들에게 운전대를 양보해야 합니다.

이전에 도로주행 교육하셨던 분은 저를 믿지 못하였습니다. 뭐 당연하긴 합니다. 초보운전도 아니고 이제 운전을 처음 시작하는 거니까 그럴만합니다. 수시로 브레이크를 밟고 운전대를 자꾸 대신 잡으면서 자신이 설정한 속도와 방향으로 저를 강제로 이끄는 느낌이었습니다. 분명 제가 못하는 게 맞으니까 주눅 들고 자꾸 몸에 힘이 들어가고 실수하고 그러는데 그럴 때마다 긴장을 풀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니 답답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누질리” 강사분은 무심할 정도로 저를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리고 위급할 때만 강사 자리의 브레이크로 제동을 걸고 설명을 하였지요.


부모나 교사나 이런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아이들이, 공부라는 걸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좌충우돌하며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의 조급함과 욕심으로 그들의 운전대를 빼앗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갑니다. 사실 사춘기라는 과정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스스로의 가치관을 다듬고 방향을 정해 가는 중요한 시기인데 그런 부모나 교사의 과도한 간섭은 그들의 반항과 과격한 반응을 가져옵니다. 그러면 더 격하게 반응하여 그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때로는 스스로 나아갈 기회조차 박탈해버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지요. 부모와 교사가 써야 할 것은 자신의 앞에 놓인 브레이크입니다. 너무 위급하고 선을 넘어설 경우에만 밟아줘야 하는 브레이크인 것이지요.


청년기의 실수와 실패는 특권이자 권리입니다. 그런 실수와 실패를 미리 막아주는 것은 당장의 그들의 아픔을 면제해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지만 그들을 결국 불행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 저는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매번 깨닫습니다.


5. 결과로만 판단하고 성과를 재촉하는 데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운전면허는 거의 누구나 다 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한두 번 불합격하면 정말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의식이 있습니다. 남의 이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과정이 괴롭다는 것을 겪어보지 않으면 압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스켈레톤 종목에 알바를 하면서 거의 개인적으로 준비하여 참가했던 아프리카 선수와 이스라엘 선수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선수는 꼴찌를 하고도 춤을 추며 자신의 참가와 완주를 기뻐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선수는 감격스럽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는 메달을 따야, 기대를 많이 하는 경우는 금메달을 따야 만족하고 함께 기뻐합니다. 메달로 보상받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그것에 집중하였기 때문입니다. 운동선수들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서 운동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러고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그 과정이 의미가 없는 것이니 모두가 조급한 마음으로 성취 중심적인 노력을 하는 경우가 많겠지요.


그런데 외국에는 이상하게 자기 직업이 있으면서 국가대표를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냥 그 과정을 즐거워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메달이라도 따게 되면 더 기뻐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남들 들러리 서는 의미 없는 대회 참가가 아니라 즐기고 애쓴 과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쇼트트랙에서 우리나라 선수를 실격시키는 데 원인 제공을 했다며 우리나라 네티즌들의 SNS 테러를 당했던 캐나다 여자 선수가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싫어하는 건 아닐 거라며 그저 자신의 자리에 최선을 다하며 다른 종목 경기에서도 동메달을 딴 후 금메달을 딴 우리나라 선수를 축하하며 격려해주는 모습에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우리나라 선수는 이전 종목에서 캐나다 선수와의 접촉에서 실격을 당하며 은메달을 놓친 선수인데 그 결과에 연연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다음 상황에 최선을 다하여 이뤄내는 모습도 감동이었지만요.


과정과 결과의 분리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운전면허 시험 합격에 연연할 필요는 없는 것은 준비 안 된 상황이면 핑계 댈 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어쨌든 준비가 덜 된 것이니 보충을 해서 결국 자격을 얻을 때까지 노력하면 되는 것이고 그래도 딸 수가 없다면 난 운전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니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니까요. 오히려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도 한 번에 통과를 한다거나 그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님에도 억지로 얻어내려 억지로 애쓰는 것이 더 위험한 것이겠지요. 스스로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게 되겠지요.


물론 한 번에 통과를 해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교만해졌지만 이전에 가졌던 심적 부담감 들을 생각해보니 너무 소모적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모험을 즐기고 배워가는 것에 대해 설레며 기뻐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교사나 부모로서 배움의 기회를 가진 아이들에게 그런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가르치기만 하는 일방적인 입장에서 밑바닥부터 새로 배워가는 과정이 나이가 들어서도 제게 가르침에 대해 큰 통찰력을 주었다는 것은 운전면허에 덤으로 따라온 축복이었습니다.


결국 아이들이 당장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좌절하더라도 함께 아파해주며 그들의 성장을 기다려주고 용기를 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6. 격려하고 희망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운전 배우는 과정에서 저는 과연 내가 운전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면허를 딸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함에 시달렸습니다. 운전하는 모든 사람이 다 존경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럴 때 제게 필요한 것은 지금은 이렇게 잘 안되었지만 차차 나아질 것이고 결국 잘하게 될 거라는 희망과 격려였던 것 같았습니다. 안 되는 것, 부족한 점에 대해 지적하며 비난하는 것은 배움의 소망과 의지를 꺾어버리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 저는 하루가 다르게 배워가고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지요. 그런데 전체 과정을 알고 이미 겪었던 인생의 선배들은 큰 그림에서 오늘의 과정이 좌절스러워도 의미 있는 한 걸음이었다는 것을 말해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격려는 사실일 것임을 배우는 이들은 느낍니다. 그리고 그 한 마디가 정말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도로주행 시험을 마치고 시험관이 제게 “운전 잘하시네요.”라는 한 마디가 훗날 혹 제가 운전을 정말 하게 될 때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힘이 된다면 그때 한 마디가 의례적으로 한 말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학교 현장에서 각기 다른 사연과 다른 출발점에서 불안해하며 서 있는 학생들을 만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진심 어린 공감과 희망 어린 격려와 믿음을 품은 일관된 기다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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