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방학도 바쁘게 생겼다. 억지스러운 분주함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즐거움이다.
여러 일정 중에 한 고등학교 오후 영어몰입특강이 예정되어 있다. 매일 3시간씩 4일간 진행되는 과정이다. 고작 12시간이 고 1 학생들에게 극적인 영어실력의 전환점이 될 것인가? 된다. 난 그런 각오와 비장함으로 수업을 준비했다. 아이들의 수준과 상관없이 각자의 출발점에서 결국에 도달할 목표를 향해 자신만의 속도와 수준으로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 아이들의 수준을 먼저 파악한 후 그 여정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도록 명확하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압축된 어휘와 문법과 구문 기본기를 제시해주려 한다. 결국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과정이 될 것이다.
지난 금요일 그 학교 교감선생님께 전화를 받았다. 학교 학생들 잘 부탁한다는 전화였지만, 나에 대한 안부 인사이기도 해서 감동을 받았다.
그분과는 오래 전 3학년 담임을 몇 년 간 함께 하였다. 무엇보다 학생들에 대한 애정과 순수한 열정은 물론 늘 진심으로 경청하고 존중해주시는 따뜻함으로 교직경력 겨우 6년을 넘겼던 난, 그분께 교사로서 많은 것을 배웠었다. 수능 끝나고 나서 함께 농구를 했던 기억도 잊을 수 없다.
이보다 더 아이들에게 열심과 진심을 다하실 수가 없으셨고 그렇게 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으신데 승진을 생각하고 계신다고 하셔서 그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셨다.
지금이야 젊으니까 아이들이 잘 따르지만 나이가 더 들면 교사가 아무리 다가가려하고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려 해도 아이들이 거리를 두며 멀어질 거라고. 아이들이 자신을 원하지 않을 때를 대비해 비켜주는 거라고...
30대 초반이었던 내가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할 리가 없었지만, 아이들을 향한 진심에 감동 받았고, 결국 나도 나이가 들어갈 거라는 현실을 어렴풋하게라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 같은 분이 오래도록 아이들 옆에 있어야 한다는 아쉬움만 겨우 전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결국 교감선생님이 되셨다. 승진의 성취보다 아이들을 위해 다른 역할을 찾으신 것 같아서 가슴 찡했다.
이번에 전화로 오랜만의 안부를 물으시면서도, 학교 아이들이 영어를 잘 하는 편이 아니라는 안타까움과 절실한 느낌이 내게 전달이 되어서, 난 그 마음을 헤아리고는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학생들을 만난다는 설렘도 가득하지만 이제는 교감선생님을 다시 대면해서 인사드릴 생각에 들뜬 마음까지 들었다.
그 당시 4년 만기가 될 때 계속 함께 근무하며 더 배우고 싶기도 했고, 학교 학생들도 너무 좋아서 유예하기로 했다가 갑자기 내 선택으로 사대부고로 배신하듯 떠났었다.
학교를 떠난 지 한 달 만에 여전히 3학년 부장으로 계시는 그 학교에 인사를 드리러 갔었는데 선생님을 뵙자마자 눈물이 터져서 한동안 멈출 수가 없었다. 계속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과 당초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먼저 떠나버린 미안함과 내가 머물기를 간절히 원했던 학생들(떠나는 게 아쉽고 미안해서 봄방학 때 3일간 무료 특강을 진행했는데 80명이 넘는 학생들이 끝까지 반짝이는 눈빛으로 몰입해주었던 감격이 아직 내 세포 끝까지 살아 있다)에 대한 애절함 등 모든 감정이 뒤섞였던 것 같다. 벌써 20년 쯤 지난 일인데도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난다ㅠㅠ
지금 나의 모습은 이제까지의 만남의 총합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내가 교사일 수 있는 이유, 그리고 이런 모습인 것도 이제까지 만났던 훌륭한 선생님들의 직간접적인 가르침 덕분이고, 내가 교사일 수밖에 없는 정체성을 잊지 않게 해준 학생들과의 만남 때문이다.
그 때 지금의 나보다 젊은 시절의 선생님이 우려하셨던 나이의 장벽을 넘어서 아직 내게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물론 6년 전 초빙교사를 지원할 때 선배선생님께 초빙으로 지원하기에는 나이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는 등 나이의 한계는 넘어설 수 없는 현실이긴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아직 고등학생인 둘째 딸과 밥 먹으면서 학교에서 나이가 많으신 선생님들에대해 학생들이 실제로 거리감을 느끼는지 물어보니, 아빠의 나이를 의식해서인지 자신은 마음의 문을 닫은 분이 아니라면 삶에 대한 더 큰 영향을 받고 배울 것이 많고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는, 나이가 많으신 선생님이 더 좋다는 말을 해서 큰 위로를 받았다.
내일부터 있을 수업과 강연 일정을 앞두고 그저 늘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비장해지려 한다. 만남에 최선을 다하며 혼신의 힘을 다하기로 다짐하면서.
그렇지만 과욕과 허상으로가 아니라 온전히 나의 모습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모습만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