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이 책의 내용을 다 말해준다. 독서에 대한 실제적인 지침과 동기유발이 필요한 분들을 위한 친절한 책이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작가의 독서에 관한 이야기, 씨네 21 이다혜 기자(읽기와 쓰기 책을 찾아보다 보니 자꾸 이다혜 작가님을 만난다. 최근 블로그 포스팅 3번째 등장이라 이젠 친근하기까지 ㅋㅋ)과의 대화도 있고, 분야별 작가 추천도서 목록 800권도 실려 있다.
그중 몇 부분만 발췌해서 소개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문성을 이야기하고 그 중요성도 높아집니다. 전문성이란 깊이를 갖추는 것이겠죠. 그런데 깊이의 전제는 넓이입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아요. 넓이의 전제가 깊이는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깊이가 전문성이라면 넓이는 교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적인 영역에서 교양을 갖추지 않는다면 전문성도 가질 수 없죠. 사람들은 대체로 깊어지라고만 이야기하는데, 깊이를 갖추기 위한 넓이를 너무 등한시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국경과 시간적 제약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현대에는 넓이에 주목하는 게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넓이를 갖추는 데 굉장히 적합한 활동이 바로 독서입니다.
스피노자가 한 ‘나는 깊게 파기 위해서, 넓게 파기 시작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깊이 파기 위해, 그 확신을 얻기 위해 우리는 여러 분야를 만나야 한다. 그게 깊이 파기 위한 탐색이 아니라도 우린 교양을 얻는다. 그 교양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과 교감을 더 원활하게 해준다. 맥락과 이해의 바탕을 마련해 주는 것이니 우리는 독서를 멈출 수 없다.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철학에서도 그렇고 뇌생리학에서도 그렇게 설명합니다. 책을 읽은 후 우리는 그냥 뭉뚱그려진 감정과 생각의 덩어리를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글이나 말의 형태로 옮기지 않는 한 생각은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또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말하고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린 시절 독후감으로 인해 오히려 책 읽는 즐거움을 박탈당한 경험이 다들 있으실 듯. 책을 읽은 후 자발적으로 독후감을 쓰는 게 아니라, 독후감을 쓰기 위해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난 독서를 하면서 몇 부분을 발췌해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식으로 독서노트 포스팅을 한다. 책 전체의 내용을 나의 지식 구조로 재구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막연한 느낌을 구체화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리고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에 블로그 독자들과 나눌 수 있다. 때로는 공유하기 위해 일부러 노력을 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난 성장하고 변화한다. 그리고 그걸 더 촉진시키는 것이 말하기와 글쓰기다.
목적 독서는 지쳐요. 왜냐하면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서는 쾌락을 못 느끼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얻어지는 부산물, 결과를 겨냥하고 책을 읽게 되면 독서를 '견디게 되거든요. 힘든데, 다 읽고 나면 '한 권 읽었다'에 그치는 거죠. 책이라는 것은 우회로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자꾸 얘기하는 건데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하는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책을 읽으면 지식이 늘고, 화술도 늘고, 글도 잘 쓸 수 있고………. 저는 이 모든 게 부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책을 읽다 보면 그 안에 주제도 있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라는 것도 있고 정보라는 것도 있는 거거든요. 굳이 이야기하면 우리에게 질문을 주는 책들이 더 좋은 책들이죠. 그렇지만 뒤집어 얘기하면 제대로 질문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도 아니에요. 책이 거기 있기 때문에 읽는 거예요.
두 딸을 학원에 보내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독서였다. 독서 경험이 학원에서 배우는 것을 능가하는 공부력을 갖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세 살 터울의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내가 1,2주마다 시립도서관에서 괜찮다 싶은 책들은 원 없이 다 빌려다 주었다. 근데 문제는 아이들의 절실함이 아닌 아빠 주도적 독서였다는 것이다. 물론 한 번씩 더 가까운 동네도서관을 다니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는 책을 보고 빌리기도 했지만, 책을 더 많이 읽히려는 욕심에 더 큰 시립도서관에 내가 자전거로 배달하듯 날라다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도 책을 좋아서 읽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아이들의 학업능력에 더 목적을 둔 목적독서였다는게 아쉬운 점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더 욕심내서 읽을 수 있도록 페이지당 1원, 3원, 5원 정도씩 시기별로 책정해서 정산해 주기도 했다. 이 또한 자발적 동기가 아닌 외적 동기에 의해 좌우되게 한 아쉬움이다. 물론 그래서 아이들이 책에 더 몰입하게 하는 외적 효과는 분명 있었고, 아이들도 매달 정산할 때 재미있고 즐거웠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덕분에 아이들의 학업능력에는 유의미한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준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독서의 자발적인 즐거움을 찾은 것은 아빠의 적극적 개입이 종료된 후 시간이 더 흘러서였다. 물론 아빠의 개입이 독서의 문턱을 넘어서게 해주고 읽기 능력을 향상시켰으니 이후의 독서 시작의 기반이 되었음도 뿌듯한 마음으로 인정할 수는 있겠지만...
둘째는 고등학교 때까지 자발적으로 서양고전소설 완역본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첫째는 대학생이 되어서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탐색하고 골라서 읽고 있다.
공부할 때나 독서할 때나 무슨 일을 할 때에든 나의 교육관이 반영된 말이 “어쩌다 보니”이다. 목적독서가 아니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공부가 아닌데 그저 즐거워서 하게 되면 어쩌다 보니 뭔가를 성취하고 있는 또 다른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오히려 성과도 더 확실하게 얻을 수 있고, 결과에 관계없이 과정 자체도 즐거울 수 있다고 믿는다.
얼마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청소년들이 게임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은데 게임하는 시간을 줄이는 기가 막힌 방법이 있다는 거예요. 게임하는 걸 숙제로 내주면 된대요. 오늘 반드시 3시간을 하고 5단계까지 깬 다음에 사진을 찍어 내고 그걸 중간고사에 반영하겠다고 하면 게임 하기를 싫어하게 된다는 우스갯소리인 거죠. 이 이야기인즉슨, 강제성이 있으면 얼마나 재미가 손상되는지를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독서에 대해 누차 하는 이야기는 독서의 자발성과 재미인 거예요. 재미를 못 느끼는데 타고난 엄청난 성실성으로 1만 권의 책을 읽었다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일 중요한 건 재미예요. 몸과 정신에 덜 좋은 것일수록 쉽게 재미있어져요. 그게 무엇이든, 대표적으로 게임이 그렇죠. 어떤 것은 수백 번을 해봐야 비로소 재미가 생기는데, 한번 생기면 그게 평생을 가는 게 있단 말이죠. 어느 단계까지만 올라가면, 그다음부터는 세상에 책만큼 재미있는 게 없어요. 책만큼 안 지겨운 게 없고요.
나도 들은 적이 있다. 게임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는 대국민 대책은 게임을 학교정규교과에 포함시키는 거라고. 강요하지 않아야 오히려 생기는 자발성... 근데 무작정 전혀 강요하지 않고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 때로는 강제로 시작하고 나서야 재미있어지기도 하는 거니까.
영어의 경우도 재미있어서 공부를 시작하면 좋지만 처음에는 닥치고 무조건 기본적인 것을 갖추고 나서야 재미있게 공부를 이어갈 기회가 생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기본기를 갖추지 않은 채로 성과만 강조하는 사교육을 받다 보니, 기본기가 없어서 이해보다 암기 위주로 공부를 이어가다 보니 영어에 재미를 느낄 기회를 얻지 못해서 안타깝다.
그러니까 시작부터 자발적이지 못하더라도 결국 자발성을 가지고 혼자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학교 교육의 실제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다 채워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자립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다혜 : 독서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쌓는 독서와 허무는 독서라고 할 수 있겠죠. 쌓는 독서라고 하면 내가 내 세계를 만들어가는 내 관심사에 맞는 책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읽을 것 같고요. 허무는 독서는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거나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는 경우일 텐데요. 쌓는 독서를 게을리하면 '내 것'이 안 생기고, 허무는 독서를 안 하면 내 세계가 좁아지거든요. 이 두 가지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시는지요. 새로 나온 책들을 살펴보실 때, '이건 내가 좋아하겠다' 생각해서 읽으시는 책이 있을 것 같고, '내가 모르는 거다' 싶어서 읽으시는 책이 있을 것 같거든요. 균형을 생각하시는 편인가요.
이다혜 작가의 기가 막힌 발문이다. ‘쌓는 독서’와 ‘허무는 독서’ 이 얼마나 멋진 독서에 대한 분류와 정의인가.
덕후가 되기로 작정했다면 쌓는 독서만 하게 될 것이지만, 자신의 영역을 깨고 지식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허무는 독서를 피할 수 없다.
좋아하는 분야와 모르는 분야의 균형... 대답을 듣지 않아도 우리로 하여금 어떤 균형 잡힌 독서를 해야 할지 명확하게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