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글쓰기를 해야 글쓰기를 꾸준히 하는 습관도 형성되고, 글쓰기도 더 좋아진다. 공적 글쓰기란 혼자만의 일기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너무 비밀스러운 얘기를 할 수는 없지만 굳이 자신만의 영역에다가 자기 생각을 가둬 둘 필요는 없다. 공적 글쓰기는 소통을 전제로 한다. 한두 명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나의 자아를 넘어서 성장의 기회를 갖게 되는데 이는 정말 큰 의미가 있다. 마치 깨어지지 않는 껍질을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깨고 나오는 것으로까지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과정에서 비판을 감수해야 하고 상처를 각오해야 하지만...
그러나 갈등과 상처를 통해 성장 드라마를 쓸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더라도 일단 시작해 볼 것을 권한다. 무뎌짐과 예민함의 경계를 스스로 찾아가면서 소통을 통해 위로와 글쓰기 동기를 얻을 수 있다.
글쓰는 건 기능적인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나의 생각이 숙성한다는 의미를 함께 지닌다. 때로는 생각의 정리 없이도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결론에 이를 수도 있고, 다 쓴 후에 “이 글은 정녕 내가 쓴 것인가?”라는 자아도취에 빠지며 스스로 만족해할 수도 있다.
때로는 쓸 거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쓰다 보면 완성되어 가는 글을 보면서, 글쓰기의 시작은 마중물 같은 사소한 자극이라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삶에 몰입하지 않거나, 독서나 대화 등을 통해 아무런 입력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생각이 숙성될 리가 없고 글쓰기가 될 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삶으로 살아 내는 것이다. 그런 삶의 기록이기도 하며, 때로는 기록한 대로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마치 삶의 다짐같이 자신을 유쾌하게 구속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내 경우는 독서기록에서 글쓰기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매체를 통해서도 시작이 되고, 학교 수업을 하면서 떠오르는 영감이나 대화를 통해서도 시작된다.
신기하게 시작이 되면 어떻게든 끝을 맺게 되어 있다. 졸작이라도 상관없다. 나만의 이야기면 된다.
감히 전문 작가와 비교할 일은 아니다. 문체를 흉내 내면서 내 글쓰기의 출력 통로와 표현력을 넓힐 수는 있겠지만 꼭 그 정도의 수준으로 써야 하는 건 아니다.
가장 좋은 글은 나에게 맞는 옷처럼 나만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글이다.
되도록 나의 직접 체험에서 나오는 것이면 더 좋다. 학생들에게도 책을 인용하는 것보다 나의 삶의 체험을 이야기하면 더 깊은 울림으로 받아들인다.
사명감까지는 아니라도 나만의 기록을 남기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힘을 낼 이유가 되어 주기도 하며, 자기 자신에게도 큰 자산이 된다.
세세한 과거의 기억까지는 거추장스러울 수 있어도 과거의 생각과 만난다는 건 또 다른 특별함이다.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젊은 날의 나를 만나는 설렘이기도 하다. 글에는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실은 나도 삶의 이야기를 공적 글쓰기로 표현한 것이 오래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영어 관련 정보를 수업처럼 쓰면서 나의 이야기를 포함시키곤 했는데, 특히 최근에는 그냥 영어수업이라는 매개 없이 나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사실적 글쓰기보다 공감을 더 많이 받아서가 아니라 그래야 순수한 나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쓸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다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이벤트로 그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적 글쓰기 플랫폼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유쾌한 강제성...
한혜진 작가의 <나는 매일 블로그로 출근한다>는 책에서 본 구절이다.
블로그를 시작하거나 지속하려는 분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될 만한 좋은 책이다. (예전 포스팅 참고)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2822365321
'유쾌한 강제성' 정말 와닿은 말이다. 유쾌하기만 해서는 지속성을 가질 수 없다. 강제성만으로도 마찬가지다. 그 둘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니... 이미 난 삶으로 그걸 구현하고 있었음에도...
난 예전부터 개인홈페이지로부터 블로그로 갈아타는 과정에서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글을 쓰기 위해 시작했지만, 이젠 그 플랫폼이 나에게 유쾌한 강제성을 부여한다. 무슨 일이든 보상이 중요한데 블로그를 찾는 분들과의 소통이 내겐 덤으로 주어지는 보상이다. 때로는 조회수나 이웃 숫자가 내게 그런 보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공감, 조회수, 이웃증감에 영향받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나의 소신을 이어가려면 특히 더 그렇다. 블로그 이웃 탈퇴는 있을 수 있는 당연한 일인데도 한 번씩 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람들이 떠난다고 생각하며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부족한 글이라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분들만 남게 되는 것이니까 오히려 더 소신껏 글을 쓸 기회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다.
언젠가 수능수험번호에 대한 블로그 글의 조회수가 수능 전날에 갑자기 폭증한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정신을 못 차렸었는데, 내가 쓰는 모든 글에 대해 그런 관심을 받는다면 난 더 큰 부담을 안게 된다는 걸 체험한 계기가 되었다. 그냥 지금 정도면 그저 감사하다. 늘 난 감당할 수 있을 정도면 좋겠다.
그래서 난 인플루언서가 안 되도록 조심하려 한다. 물론 내가 선택한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블로그에 광고를 올릴 수 있는 자격은 이미 오래전에 갖추었다. 그런 공지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관심이 없었다. 광고를 달지 않아야 혹 학교 학생들에게 필요한 자료를 블로그에서 찾아보라고 권할 때 오해의 소지 없이 조금 더 망설임 없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애초에 생각도 안 했다. 그리고 광고를 달아 조금이라도 수입이 발생하면 교사들은 매년 겸직허가를 학교에 공식적으로 신청하고 갱신해야 해서 귀찮기도 했다.
공적 글쓰기에는 그저 공적 나눔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니.. 이런저런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카카오 브런치의 작가를 신청하여 블로그의 글을 옮기기 시작했다. 브런치를 통해 출판이 된 작가들이 꽤 많지만, 그게 브런치를 하는 주된 목적이 아니었다. 같은 내용이지만 또 다른 플랫폼을 겪어 보고 싶었고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계약을 해서 출판을 하려 한다면 독자에 맞춰서, 출판 기획에 억지로 맞춰야 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만의 플랫폼은 그럴 필요가 없다. 가수에게는 노래를 들어주는 청중들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혼자서 노래를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대중들에 맞추지 않아도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만의 노래를 하는데 굳이 노래를 들으시는 분들께는 한두 분이라도 그저 감사하면 된다.
유효청중이 중요한 것이니, 이웃의 숫자나 조회수에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난 영어간식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 타이틀에 맞춰 살았지만... 이젠 그 타이틀만 보고 들어오신 분들이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로 교육노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머물지 않으시려는 분들에 대해서는 죄송한 마음뿐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누군가 공감을 눌러주면 힘이 되고... 용기 내서 댓글을 남겨주면 글쓰기의 수고 따위는 전혀 생각도 안 날 정도로 행복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모두가 유쾌한 강제성이라는 실감을 한다.
나는 게을러서 뭔가를 지속적으로 하기가 어려운 사람인데... 이렇게 꾸준히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런 모든 일들의 총합이라는 것...
유쾌한 강제성은 학교에서 나의 멘토링학습코칭의 키워드가 되는 말이기도 하다. 학원과의 차별성을 난 여기에 두고 싶다. 아이들이 나와 함께 책을 한 권 끝냈을 때 감격스러워하는 건 학원과의 느낌과 다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해낸 것에 대한 자기효능감인데... 그건 자율성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유쾌한 강제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