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명사와 고유명사(p.177-)
범주는 인간이 세계를 추상화하고, 개념화하고, 체계화하여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범주화의 함정이 있으니, 바로 개체의 특징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
언어는 범주화에 능합니다. 여러 이론을 배우다 보면 범주를 가리키는 용어들이 쏟아집니다. 표준화된 학교교육이 사회를 지배할수록 추상화된 범주의 출현 빈도는 높아집니다. 나나가 매스미디어와 대량복제기술은 보통명사의 힘을 한층 강화합니다. 결국 고유명사보다는 보통명사의 시대가 되어버립니다. 개별 존재를 통해 범주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범주를 먼저 배우고 개별 존재를 만날 때마다 범주라는 상자에 '분리수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회정치적 영역으로 넘어오면 '딱지 붙이기'와 같은 행태가 됩니다.
...
교육은 범주화와 탈범주화, 보통명사화와 고유명사화를 씨줄과 낱줄로 엮어내야 합니다. 세계를 추상화된 범주로, 과학교 교과의 카테로리로 이해시킴과 동시에 개별 구성원들과 온몸으로, 인격적으로 만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
애석하게도 보통명사가 교육의 중심에 있습니다. 영어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전달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방식을 가르치기보다는 내신과 수능이라는 보통명사들과 씨름하게 만듭니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대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새인의 삶의 아픔을 나누는 통로가 아니라, 표준화 시험과의 전쟁에서 살아남는 전략으로서의 영어를 다루지요.
...
고유명사로 만드는 프로젝트 - '영어'를 국가교육과정이 정해 놓은 문장과 단어로 생각하는 데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위한 마법의 도구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 그 과정에서 자신과 타인의 고유함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하게 되는...
범주화는 지식을 체계화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질서를 부여하는 개념화의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범주화를 통해 각 개체가 언어라는 실재를 갖게 되고, 명사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다. 그리고 범주화가 있어서 보통명사가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개체와 개념과 현상들을 언어에 다 담을 수는 없다. 개별적인 특성을 희생시켜야 범주화를 통한 보통명사가 된다.
그에 비해 고유명사는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개별적인 존재다. 별 맥락이 없다면 사람 이름을 들었을 때 각자가 떠올리는 존재가 다 다르다.
보통명사 '나무'도 개별화된 나무의 총합이지만, 보통 언어로 만나는 '나무'에 대해 우리는 범주화에 익숙해진 보편타당한 일반적인 것을 떠올린다. 이제껏 만났던 모든 나무를 떠올리기보다 언어로 진행되는 의미 전달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효율성으로 인해 우리는 설렘 포인트를 희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자신만의 나무를 바라보며 시상을 창조해낸다.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떠올려낸다. 노래도 문학작품도 일반화된 개념 전달이 아니다.
일반화된 보통명사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흥미를 유발ㅎㅏ기 어렵다.
강의가 재미있으려면 과도한 일반화 범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연수를 들으면서, 연수를 진행하면서도 늘 느낀다. 뻔한 이야기, 생명력 없는 무미건조한 이야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너무 전문적인 강의나 예측 가능한 전개는 재미없다.
모두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개별화된 고유명사화 과정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은 뻔하지 않다는 것이고 의외성에서 반전과 재미와 감동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학교 학생들도 보통명사가 아니다. 또 당연히 아니어야 한다. 각자가 고유명사여야 하지만, 수업 및 학교 현장에서는 일률적인 학생들로 그저 보통명사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수업도 각자 다르게 느끼는 감성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고 답을 찾는 과정으로 일반화된다. 그렇게 얻은 성취만이 낭비 없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억지로 문법에 맞춰 지어낸 문장은 개별화된 숨결이나 감성이 담겼을 리 없으니 아이들은 언어 자체의 감동을 누리지 못한다.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고유명사를 일깨우는 일이다. 이름만 불러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인격적인 개별화로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담긴다. 그리고 그 출발은 보통명사에서 고유명사로의 전환, 즉 원래 속성을 인식하고 돌려주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수업이나 강의에서도 뻔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책 읽듯이 옮겨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 낭비처럼 보이는 치열한 고민과 개별화 연구 과정을 통해 고유명사의 숨결을 충분히 불어넣어야 한다.
그렇게 교사들은 끊임없는 개별화를 통해 고유명사를 끌어내고 있다.
모든 인격적인 만남도 고유명사라는 인식에서 비롯되며, 교사의 개별화 노력으로 주어지는 수업과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도 자신만의 개성과 개별화가 존중되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