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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105 - 이벤트 아닌 일상

ESV, KJV, NIV, NLT, MSG 영어성경 비교

by 청블리쌤

영어성경버전별 요절

직역(ESV, KJV) - 의역(NIV, NLT) - 창조역(MSG) 순


ESV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to my path.


KJV

Thy word is a lamp unto my feet, and a light unto my path.


NIV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for my path.


NLT

Your word is a lamp to guide my feet, and a light for my path.


MSG(The Message)

By your words I can see where I’m going; they throw a beam of light on my dark path.


개역개정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어구해설>

KJV의 Thy는 Your, unto는 to의 고어 형태이므로 ESV, KJV는 동일한 문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NIV와의 차이는 a light to/for my path에서 to 와 for의 차이입니다. for는 방향성, to는 도달입니다. 빛이 나의 길에 도달한다는 의미와 나의 길을 향한다는 사소한 의미의 차이인데, 결과와 과정의 차이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NLT에서는 a lamp의 용도를 더 구체적으로 특정 짓습니다. 나의 길을 인도하기 위한 등이라는 것입니다. guide라는 단어가 없어도 의미의 차이는 없습니다. 발에 등을 비추면 문자적으로 더 표현되지 않아도 어떤 의도인지 다 파악이 가능하니까요. 그러니까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주어 추론의 수고를 덜어주는 의도 외의 차이는 없습니다.


MSG는 더 풀어서, 새로운 정보까지 더해서 이야기합니다. 특히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등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을 어디로 가야 할지 명확하게 볼 수 있다는 직설적인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우리 길에 빛이라는 문구에 전제가 되어 있는 어둡다는 속성을 환기시킵니다. 밝은 길일수록 빛의 역할은 더 축소됩니다. 빛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둡다는 것이 전제입니다. 너무 당연해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절망적인 어둠이 아니라면 빛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충분히 어두운 상황임에도 자신의 길을 고집하는 속성이 있으니, MSG에서 굳이 어둡다는 표현을 포함시킨 것은 당연하지만 의미 있는 해석입니다.



<말씀해석>

이찬수목사님의 새해 첫 주일예배 설교에서 들었던 말씀입니다. 너무도 익숙하고 친숙한 말씀이어서 특별한 느낌조차 없는 말씀이었는데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목사님 설교의 내용에서 요약해서 제가 받은 은혜의 해석을 더해서 인용을 해보겠습니다.



원어로 “내 발”이라는 것은 그저 한 걸음을 의미합니다. 등도 멀리 비추는 너무 환한 등이 아니라 작은 빛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위력 있고 생동력이 있고 생명력이 있으며, 특히 믿는 자에게 미치는 능력은 무한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적용되는 범위는 그저 한 걸음입니다.


목사님이 목사 안수 받으실 때 자신의 인간적 연약함으로 교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성령의 안수로 인성이 변화되기를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응답은 없었다고 합니다. 여전히 옛 자아가 남아 있고, 육체적인 연약함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동안은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에 대해 좌절과 원망이 있었지만, 이 말씀에 의지하여 그것이 은혜와 축복이라는 것을 목사님은 고백합니다.


단번에 완벽하게 변화되어서 그 이후에 하나님의 의지하지 않아도 자신의 힘만으로 목회를 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본인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사가 되기를, 온 세상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목사가 되기를 기도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저 하루하루 매 순간 어린아이처럼 기도한다고 합니다. 매 순간 우리가 가는 길이 너무 당연하고 기도조차 필요 없어 보이는 순간조차 잠시 멈춰서 주님께 어디로 가야 할지를 묻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매 순간 하나님의 의지하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지요.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배움과 공부는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열정과 화려함과 찬란함이 아니라 초라해 보이고 사소해 보여도 조금씩이라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서만 지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기독교를 비판합니다. 기독교인들의 연약함으로 인해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는 것이 완전한 인격을 단번에 성취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연약함과 부족함의 그 어두운 길에 주님의 말씀의 빛이 존재감을 더 드러냅니다.


우리의 시선과 절실함과 갈망이 또 그에 따르는 인간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 과정에서 더 좌절하고 상처받고 부족함을 더 크게 깨달을수록 더 큰 은혜가 넘칩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인한 성취도 의미가 있지만, 매 순간 겸손하면서 상처받은 무력함에 대한 고백과 의지함으로 인해 우리의 약점을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성화와 변화의 과정이 너무 더디더라도 좌절할 이유가 없는 것은, 단 한 번의 이벤트로 받아야 할 축복을 놓쳤다는 박탈감을 느낄 필요가 없기 때문이며, 매 순간 늘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배움의 과정이든 신앙의 삶이든 조급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아주 조금씩 변화되고 성장하고 있으며, 충분히 성취한 느낌이 들어도 여전히 그 변화와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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