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에 기독교사 모임이나 수련회에서 교사 사례 발표를 들을 때마다 너무 초라해졌다. 열심히 노력해서 그런 교사가 되겠다고 다짐하기보다, 넘사벽 같은 강사 선생님의 존재감에 포기에 가까운 마음이 들곤 했다.
그런 내게 2011년 전국 기독교사수련회에 강사로 초대받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엄밀히 말하면 초대가 아니라 기독교사로서 전국구 인지도가 있었던 한 선배 교사의 땜빵이었다.
난 그 자리에서 감히 기독교사의 자격을 논했다. 내가 강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외친 게 아니었다. 강사로서도, 평소 기독교사로서도 한참 자격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부족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참석하신 분들이 나의 부족함을 보시고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게 되기를 바랐다.
성경에서 언급되는 유명한 인물들이 도덕적 결함, 인간적 약점이나 부족함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위대함과 훌륭함의 속성은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함이었다. 그런 자각이 회개의 출발점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음 해 대구 기독교사 모임 워크숍과, 우리 교회 고등부 교사 워크숍에서도 난 여전히 같은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 준비하면서 기독교사로서의 자격을 정리해 본 목록이다.
1) 새벽기도에 매일 가는가? 모든 공예배에 빠지지 않는가?
2) 헌신적으로 중고등부교사를 섬기는가?
3) 성경을 하루 2시간 이상 읽고 1년간 다독하는가?
4) 매일 학교 학생들과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가?
5) 학교에서 가장 기쁨이 넘치고 행복한 교사인가?
6) 학교에서 섬기는 자세로 고된 업무를 마다하지 않고 희생적으로 일하는가?
7)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며 교과지도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존경받는가?
8) 학부모의 신뢰가 넘쳐나 반 운영과 교과지도에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가?
9) 인사이동할 때나 학년말에 동료나 학생들이 헤어짐을 슬퍼하거나 아쉬워하는가?
10)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통해 예수님을 보는가?
11) 모든 학생들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가?
12) 늘 사명감을 가지고 복음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사는가?
13) 다른 교사들이 가장 꺼려하는 힘든 반을 맡게 되었을 때 오히려 감사함이 넘치는가?
14) 자신이 기독교사임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담대하게 최선을 다하는가?
15) 삶으로 학생들과 동료들에게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16) 편안한 반을 맡게 해달라는 기도 대신 나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가?
17) 우리 반 담임은 예수그리스도이고 나는 부담임이 맞는가?
이 목록을 소개한 후, 이런 항목에 자격을 갖춘 상태에서 당당하게 강의를 시작할 거라는 편견(?)을 깨고 난 당당하게 선언했다. 난 이런 기독교사가 아니라고. 나의 삶에 이런 능력이 드러나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의 모습은 아니라고. 그러니 기죽지 마시라고...
같은 학교에 기독동료교사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질문이 아니라 질타에 가까웠던 말이었다.
“너가 무슨 자격으로 찬양예배인도 자리에 서고 있나?”
나의 대답은 부족함 그대로 내어 놓고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선다는 것이었다. 나의 부족함으로 오히려 많은 영혼들이 담대하게 그 자리로 나아올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변명하듯 말했지만 그 말이 진리임을 믿고 싶었다. 노력을 아무리 해도 여전히 난 부족한 사람이라는 자각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상상을 했다.
우리에게 선한 일이 있다면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아직 내가 목적어가 덜 된 것이라고. 우리가 할 일은 우리 능력에만 의지하며, 자기 의에 사로잡혀 있다가 좌절하지 않고 그분을 주어로 한 목적어가 되는 것이라고. 그것이 주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거기서 진정한 헌신이 시작될 거라고.
결론은? No excuse. No exception. No time to lose. What are you waiting for?
변명도, 예외도, 지체할 시간도 없다. 뭘 망설이는가?
나의 능력과 가진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난 여전히 부족해서 당당하게 설 수 없다는 것은 변명도 예외도 되지 못한다. 일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니....
어차피 교사들은 모두 시한부로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주어진 시간에 힘껏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짧은 시간이다.
그 짧은 만남에서 우리의 삶을 통해 그분의 사랑이 나타나고, 상처받은 아이들이 위로와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축복의 통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준비도나 자격이나 능력은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을 향한 진심과 사랑이면 되고, 그분의 능력을 바라는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이면 된다.
그리고 강의 중 기독교사로서의 삶에 대해 영감을 주고, 방향성을 부여할 두 구절을 인용하면...
1. 노방전도가 최선인가?
오늘날의 문제 중 하나는 예의 바른 사람은 종종 강한 신념이 없고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예의가 없다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이 신념 있는 시민교양Convicted civility을 가져야 한다.
복음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으로 전해져야 한다.
시위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기 의를 내세우면서 전하는 복음은 상대방에게 증오심을 유발할 수도 있다.
시민교양과 더불어 진리를 향한 강한 열정까지 갖추어야 한다.
리처드 마우(풀러신학교 총장)
2. 크리스천의 변화된 삶을 통한 복음선포
바울과 베드로 시대 크리스천들은 마음껏 말할 자유가 없었지만 바르게 살 자유는 있었고 그들은 예수 안에서 변화된 삶을 살았으며 그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은 왜 그렇게 사느냐?”라고 물을 수밖에 없고, 그 질문에 바울과 베드로가 응답하며 복음을 전했다.
우리가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살아간다면 외치지 않아도 사람들은 우리에게 질문할 것이다. 비신자들에게 질문받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
달라스 윌라드(기독교변증가, 남가주대 철학과 교수)
사람들이 내게 질문을 할 때는 주로 내가 손해 보거나, 세상적 성공이나 성취에 욕심이 있어 보이지 않거나, 뭔가 다른 가치관이나 삶의 지향점을 보일 때였다. 기독교사의 삶은 거룩해야 하고 구별되어야 하는 것도 틀린 건 아니지만, 자기만 옳다는 배척하는 자세 또한 경계해야 한다.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가치는 있지만, 모든 면에서 자신의 옳음과 정당함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4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단 1:4,7
말씀에 암시된 것처럼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 배우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그 위에서 진리와 복음을 전달할 수 있다.
학생들이 날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학생들을 더 많이 사랑하며, 그중 일부분만 돌아온다. 교사는 짝사랑의 숙명을 받아들인다. 그 사랑은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교감을 이루며 바른 길을 가도록 교육하는 것으로 증명되기도 한다. 그러기위해서라도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 한다. 나 혼자 거룩한 척하면 영영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고 그들의 문화로 이야기하는 것은 선교사가 그 나라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재미있지 않으면 아이들이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니 미리 준비한 재미와 감동적으로 접근한다. 물론 그들과 소통되는 언어로,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언어 위에 진정한 가치를 전한다.
교사는 수업의 전문성과 경청과 소통의 상담으로 말한다.
때로 망가지는 것도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허점을 통해 아이들이 들어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호감과 존경은 양립할 수 없다. 난 늘 호감을 선택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갈데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배우면서도 타협할 수 없는 것은?
예배와 말씀과 기도, 주님과 복음을 향한 열망이다.
교만한 자는 기도하지 않는다. 자기 힘으로 다 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향한 진심과 노력을 다하는 교사들일수록 기도를 잊기 쉽다.
나의 힘으로 학생들을 변화시키고, 반 운영도 완벽하게 할 수 있다고 교만해 있을 때면, 내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학생들과 사건들을 만나게 하셨다.
어쨌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사명이다. 아픔까지도..
내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난 기도하기 위해 게으름뿐 아니라 교만함과도 늘 싸워야 했고 지금도 그렇다.
"내모습 이대로"라서 더 은혜와 능력을 체험한다. 아이들도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며 교육적 변화를 꿈꾸며 기다린다. 성장은 완료가 아닌 늘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