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제자의 청출어람

by 청블리쌤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2715674448



작년에 내게 깜짝 감동을 주어서 블로그에도 올리기도 했던(위의 링크 참고) 제자를 오랜만에 만났다.

이번엔 제자의 고1 때 담임선생님도 함께 만났다. 그 선생님도 그 다음 해 고3 담임을 하면서 옆자리에서 친하게 지냈던 분이어서 세 사람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았다.


21년의 시간 중에 한 번씩 만나고 전화 통화도 했었지만 세 명이 함께 모인 건 제자가 졸업한 이후 처음이었다. 각자의 젊음을 건너 뛰어 다시 만난 셈이다.

그럼에도 그 세월의 흐름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학창 시절 1년 동안 학교에서 오랜 시간 동안 나누었던 교감과 그 기억은 빛바래지 않은 채로 박제되어 있었고, 그 말투와 어감도 그대로였다.

제자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아줌마 신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내게는 10대 때의 그 사랑스러운 제자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며 너무 놀랐다. 이 제자는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 있었던 거였다.

고3 때 전교 1등이었으면서도 수업시간에 숙면을 취하는 분야에서도 전교권에 들으려 욕심을 냈고, 생활 자체가 완전 모범생은 아니었고, 부담 없이 자신의 의견을 소신껏 이야기하는 학생이었는데... 오히려 그래서였는지 학생 이해의 스펙트럼이 넓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학생들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었다. 모든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고, 불쌍하고 안쓰러워하고 있었다. 시댁도 친정도 가까이 있지 않은 곳에서 남편조차 직장 때문에 육아에 적극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린 아들을 건사하며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 사이에 궂은일은 혼자 다 맡아 하며 평화를 지키는 교사 역할까지 했다. 고3 미적분 수업과 다른 수업을 걸치면서 교재연구할 시간이 부족한데 집에 가면 아이를 챙겨야 하고, 겨우 아이가 잠들고 나면 울면서 교재연구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교사로서 짝사랑을 마다하지 않으며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교육을 하지만... 자신의 교육의 효과가 드러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학생 입장에서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아침에 아들 어린이집에 보내려 할 때 아이가 씽씽이 킥보드 없이는 가려 하지 않아 아이를 보내놓고 학교에 씽씽이를 끌고 오면서 아가씨인 척 우아한 척하기는 글렀었다는 웃픈 이야기를 해맑게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수업에도 최선을 다하고 고3 담임을 하면서 진심을 다해 아이들을 관찰하고 케어해주면서 입시지도에 전력을 다했다. 개별적인 강점을 살려서 입시전략을 기가 막히게 짜서 아이들의 길을 열어주었음에도 아이들이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올해는 비담임으로 고교학점제 및 교육과정부 업무를 하게 되어 좋다는 말을 했다.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린 아들과 담임을 하게 되면 맡게 될 반 아이들을 다 챙기기는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로서의 삶을 살면서도 주어진 한계 내에서 전력을 다하면서 느끼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자신은 정성스럽게 물을 주고 비료를 주는데도 시들어 가는 듯한 아이들을 보면서 무력하고 속상했고 혹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으로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할 수도 있는 담임교사로서의 무게감이 크게 느껴졌던 것 같았다.


그러면서 제자는 업무는 오히려 실수해도 되니 좋다는 말을 했다. 업무는 자칫 실수해서 큰 상처를 받거나 악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무생물이기 때문에 일을 잘 못해도 바로 사과하고 수정하면 되는 거니까 부담이 없다고 했다. 그 말에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어떻게든 실수 없이 아이들의 삶에 교사로서 최고의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노력했던 그 애씀이 느껴져서, 아들과 학교 아이들을 다 어깨에 지면서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어 걱정하며 마음을 썼을 그 치열한 삶이 느껴져서 뭉클했다.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니라 그동안의 그 책임감과 무게감에서 잠시 쉬어가는 타이밍인 것 같아서... 그리고 분명 쉽지 않은 업무임에도 오히려 실수나 업무적 부족함에 대해서도 자유할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음자세가 참 흐뭇했고 부럽기까지 했다.


제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동안 무조건 담임만을 고집하며 아이들의 긍정적인 변화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설레고 그 집중했는데... 나의 부족함과 실수로 인해 혹 미칠 수도 있는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도 겸허하게 생각하며 교만을 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제자 덕분에 정말 교사로 학생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렵고 떨리는 일일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겼다.


그 외에도 제자가 교사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얼굴을 맞대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마치 삶으로 전달하는 교사 연수를 받은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내가 올해도 부장을 안 하고 담임할 것 같다고 하니까, 제자가 내게 미안한 마음이 없냐고 물었다. 그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이 학교는 대규모 학교고, 나보다 유능한 분들이 많아서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거라고 변명했다. 직전 학교에서 담임을 포기할 수 없으면서 부장을 하라는 압력에 학년부장을 할 때에도 난 교장, 교감선생님들과 학년 담임 선생님들께 분명하게 말했다. 능력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차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맡긴 했지만, 원활한 학년의 인화나 선생님들이 기대하는 추진력이나 카리스마나 효율이 없을 수 있음을 이해해 달라고...


이번에도 교감선생님께 말씀드렸다.

힘들어서 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혹 그 자리에 카리스마도 부족하고 소통도 원활하지 못한 제가 있어서 불편해지고 제대로 기대했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 두렵다고. 그 대신 부장님을 잘 보조하며 업무진행을 도울 자신은 있으니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그리고 제가 더 잘 할 수 있는 중3 전체 학생 대상으로 한 학습코칭 등의 관리에 더 집중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교감 선생님은 평소 학생들에 대한 나의 열심과 진심을 알아주셨고 오히려 따뜻하게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다.


직전 학교 학년 부장을 하면서 난 동료 교사들보다 학생들에게 더 집중했다. 그 지위를 이용(?)해서 학생들에게 필요할 학년 자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추진했고, 영어멘토링 학습코칭도 더 큰 명분을 얻어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동료 교사 간의 친목을 다지고 원활한 의사소통에 기여하지 못한 건 아직도 선생님들께 많이 미안하다.



제자 학교에 퇴직을 앞두신 열정적인 선배교사의 “이렇게 아이들을 만나다가 곧 학교를 떠나면 사교육을 하게 되는 거겠지”라는 말씀을 듣고 슬펐다는 말을 전하며, 어쨌거나 학생들을 만나고 교육할 기회를 갖는 건 똑같은 것이니 그저 응원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가 내게도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제자가 내게도 퇴직을 해도 그냥 집에만 계시는 것을 좋아할 분이 아니니, 학생들을 계속 만날 기회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퇴직 이후의 삶도 미리 격려했다. 그러고 보니 함께 한 선생님도 정말 열정 넘치는 실력 있는 국어 선생님이었고, 제자는 수학과니까 국영수가 다 모였으니 농담처럼 나중에 학교 밖에서 뭉쳐야겠다는 말도 했다.


만남 이후 제자의 문자가 왔다.

제가 또 찾아뵐게요. 건강하시고 제가 두 분 모두 많이 존경합니다^^ 담에는 진중한 모습으로 찾아뵐게용.


바로 답변을 해주었다.

오늘 보니 청출어람인 것 같아서 너 얘기 듣는 동안 계속 뿌듯했다. 정말 자랑스럽다

나이 든 쌤들 잊지 않고 찾아준 것도 참 놀라운 일이고

집에 아이와 학교 아이들에게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중에 일탈을ㅋ 하는 날이 오게 되었을 때 오히려 더 그리워지고 진정 행복했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다. 그저 매 순간 행복을 누리렴


꼰대 같은 선생님의 문자에도 제자는 끝까지 다정했다.

아니 저는 막 쓸데없는 말만 했는데 이러시면.. ㅎㅎㅎㅎ 저는 운이 좋아서 선생님들을 만나서 롤모델이 있었자나요 ^^ 제가 멀리서 근무하지만 항상 의지하고 계신 두 분이에요. 선생님들의 제자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살고 있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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