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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Mar 29. 2023

삶으로 꽉 채운 글(Feat. 수석쌤들과의 인터뷰)

수석쌤 두분을 만났다. 

쌤들은 나의 글쓰기와 삶에 대해 궁금해했고, 취조하듯이ㅋㅋ 내게 질문을 던졌다.

두 시간 넘게 거의 나 혼자 얘기했던 것 같다. 얼마나 쓸데없는 말을 많이 쏟아내었을지, 기억이 다 나면 이불킥하느라 잠을 못 이룰 정도일 것 같아 두렵다.



함께 한 식당 방 칸막이에 구멍이 나 있었다. 옆 방과 소통을 위한 용도라고 의심할 정도의 크기였다.

다행히 음식은 맛있었고 쌤들도 좋아하셨다. 구멍이 용서가 되는 순간이었다. 혹 인테리어만 좋고 음식 맛이 없었다면 오히려 배신이었을 것이다.



내 분위기와 어울리는 식당인 것 같다는 한 쌤의 말씀에 난 다른 의미로 과연 그렇다고 했다. 난 맛에만 신경쓰는 부류라고.. 내가 정한 가치와 의미만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하나만 선택해도 잘하기 부족한 내 자신의 역량을 인정하고 나니... 온전히 가정과 학생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고...



난 모든 조건이 채워지고, 골고루 잘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매몰되고 싶지 않다. 사교성 없는 나의 약점을 굳이 숨기려하지도 않는다. 그래야 더 절실하게 학생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명분과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인테리어에 구멍이 났어도 맛이 있으면 될 거라는.. 그리고 계속 맛만 추구하는 그런 삶은 내 한계를 인정하고 얻어낸 나만의 삶의 방식이다.



글을 쓰는 것도 내 장점은 아니다. 그저 내 삶으로 흘러가듯 채워간다. 부족해도 내 삶으로 꽉꽉 채운다. 

그래서 쓰고 싶을 때만, 쓸거리가 있을 때만 쓴다. 




선생님 한 분이 얼마 전 블로그 글의 제목 자체의 울림에 대해 언급하셨다. 특히 나눔하는 과학쌤들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그 제목은...


열정의 연료보다 습관의 관성을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3048065189

그 글을 언제 무슨 근거로 썼는지 궁금해하셨다. 

그래서 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딸과 제자와 학교에서의 경험이 섞여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제목은 그냥 제자에게 해준 말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었다. 



또 얼마 전 올렸던 글...

추억의 의미, 기억의 해동

제자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냥 생각이 났다고 했다. 결론을 정해 놓고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 글이 어디로 향하고 어디에서 멈출지 나조차 잘 모르고 궁금하니, 글 읽는 분들도 궁금해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품었다.

그러니까 어떤 목적을 갖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그 영감과 힌트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거라고...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3052766612



1. 언제 쓰나?

아침에 써서 바로 올리는 게 아니라, 미리 써 놓은 글을 아침에 퇴고하고 올린다.

요즘에는 하루 쓰고 하루 올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넘치는 반복과 일상의 매몰로... 고갈되어 가는 것 같긴 하지만 여유가 있으면 열 편까지도 미리 저장해두고 한 편씩 꺼내 올리기도 했다.



어쨌거나 시도 때도 없이 쓴다. 영감이 떠오르고 삶이 차오르며, 혼자 웃거나 감동을 느끼기 아까운 것들을 어떻게든 나누려는 마음은, 평소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안달 나는 심리와 다르지 않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 한 분이라도 공감한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공감 없이도, 보상 없이도 글은 계속 썼을 것이기 때문에...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공감이 많을수록 좋고 조회수가 올라갈수록 기분이 좋고 힘이 나는 건 사실이다. 댓글에도 격한 반응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조회수나 공감이 많지 않아서 하나의 반응에도 내가 감격해하고 더 감사할 수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전문작가처럼 시간을 정해 놓고 쓰지는 않는다. 마감시한은 없기 때문에 부담도 없다. 물론 '유쾌한 강제성'으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 애쓰고 있지만, 매일 꼭 써야 한다는 부담에서는 자유롭고 싶다.



저녁때도 쓰지만, 글을 쓰다가도 피곤하면 일단 자고 본다. 새벽에 글이 더 잘 써지긴 하지만, 억지로 쥐어 짜내진 않는다. 자다가 깨서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면 준비 동작 없이 바로 일어나 노트북을 켜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중에 기억날 거라고 미뤄두었다가 글감을 놓쳤던 경험을 한두 번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러게 된다.



보통은 하루 이상 글을 묵혀두고 생각을 정리한 후 몇 번의 퇴고를 거친다. 그날 쓴 글을 바로 올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날 올려야 의미있는 글들은 망설이지 않고 올린다. 올리고 나서 추가 퇴고를 하기도 한다.



20여 년쯤 전에 홈페이지 시작 때는 사실적 글쓰기에만 치중했고, 영어를 매개로 하여 영문법 강의, 영어글 소개, 영화대사 소개 등의 글을 쓰면서 나의 느낌을 조금씩 더했지만,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서 방문하신 분들이 내 홈페이지 디자인이나 나의 문체를 보고 나의 성별조차 짐작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나 자신을 그냥 포기한 듯 드러내며 신비주의 따위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나의 절제심이 동이 나서 일 수도 있고, 나이가 들면서 말이 많아져, 혼자 떠들고 얘기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글쓰기를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 고등학교 친구가 내가 기타치며 노래하는 영상도 올려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게 충격이었을 정도다. 나를 굳이 드러낸다고? 약점 많고 부끄러운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누가 나한테 관심을 가져준다고.. 나를 드러내면 있던 독자들도 떠날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정도 범위에서는 그냥 드러낸다. 솔직한 나 자신의 모습과 연약한 모습도 누군가에게는 용기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도 알게 되고 나서 나도 용기를 내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올렸을 때는 망설임의 시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너무 개인적인 글인데 공감이 눌러지지 않으면, 혼자 당황해서 비공개로 바로 전환했다가, 한참 후 다시 공개로 바꾼 적도 여러 번 있다.



눈치 보지 않고 글을 올리고, 나의 역량 이상으로 애쓰지 않으면서 편하게 글을 올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안 볼 자유를 선택하면서 떠나가면 된다고 당당한 척하지만, 난 여전히 소심하다. 단지 덜 소심해지는 것에 기댈 뿐이다.




2. 글을 쓰는 데 얼마나 걸리나?

글에 따라 다르지만 30분 정도면 한 편이 완성되기도 한다. 물론 한 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다. 그 자리에서 완성하는 글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묵혀두었다가 다시 꺼내 쓰기도 한다. 흐름이 끊겼을 때나 돌파구가 필요할 때 선택하는 방법이다.

어떤 경우에도 글솜씨를 넘어서려 하지 않으면서 더 잘 쓰려는 욕심을 비우려 한다. 그럴수록 글의 완성은 더 빨라진다. 물론 시간 투입에 비례하여 퀄리티가 올라가기는 하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을 넘어서면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체험한 이후에는 굳이 너무 오래 매달리려고 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여기까지라는 한계에 대한 솔직한 인정이, 인간미와 이후의 채움의 기대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므로 굳이 다 채워서 완성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편하게 쓸 수 있는 것 같다. 글쓰는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내가 주로 쓰는 글의 패턴과 표현이 반복되더라도 확실한 길만 간다. 자료를 찾아가면서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더할 생각도 별로 없다. 다만, 내가 지금 이 자리에 머물면 글의 내용도 수준도 그대로 머물 것이므로 평소에 자료를 모으는 듯한 성장을 이루려 애쓴다. 그게 내게는 직접 체험과 독서 등의 간접체험이다. 



나의 일관된 시각을 유지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 시각으로 현상과 주변을 보는 자연스러움을 지킨다. 전문가 코스프레 따위는 하지 않는다. 

지향하는 이상적 수준과 전문성을 바라면서 글을 쓰는 것은 빵 사러 가서 빵을 만들어 오려는 시도와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계속 써 온 습관이 속도에 영향을 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영어문장이 보이면 어려운 문장도 바로 해석되는 것 같은 기본기와 습관에 관한 문제다. 자꾸 하다 보면 그냥 아침, 점심 식사하듯 애쓰지 않아도 그냥 글 위에 올라타서 미끄러지듯 글이 이어지는 것을 스스로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글을 쓸 때 많이 고뇌하거나 고심하지 않는다. 사소한 고민조차 많이 하지 않는다. 글을 쓰다가 두 갈래 길이 나오면 한 쪽을 과감하게 가버린다. 다음 기회에 다른 길을 갈 기회가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일단 길을 가는데, 혹 기회가 다시 없다면 어차피 내 길이 아니었을 것이므로 미련을 가질 것도 없다. 일단 내 모습 아닌 시각으로 생각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자신만의 일관된 시각이 있다면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 고민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냥 보는 대로 읊어가면 되는 거다. 물론 내 삶의 풍성함과 성장은 기본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어차피 자기성장은 매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글쓰기는 그 성장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이기도 하다. 삶에서의 성장을 꿈꾸는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더 큰 축복일 것이며, 내 삶의 성장을 응원받는 큰 힘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3. 글쓰기 보상은. 더 큰 욕심은?

그러니 글쓰기를 해서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글쓰기 자체에 의미가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응원을 받는다는 의미로 접근하면 글쓰기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재미있어서 쓰는데 다른 분들이 공감까지 해주시니 과분한 축복이다. 출판 의뢰를 받는다면 마다하지 않겠지만, 책을 안 내본 것도 아니고 안 망해본 것도 아니어서 환상은 없다. 




4. 글쓰기 소재는?

삶 자체다. 그렇다고 모든 삶을 다 기록할 의무를 가진 건 아니라서, 자유로울 수 있어서 좋다.

때로는 수업내용이나 소중한 만남에서 대화의 녹취록처럼 기록하며 보완하여 쓰기도 한다.

나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나눈다는데 초점을 둔다.




5. 글쓰기나 삶 자체의 루틴은?

카페에서 글이 더 잘 써지긴 한다. 그러나 집에 듀얼 모니터를 갖춰놓고 집에서 놀던 오디오 스피커를 연결한 후에는 그냥 집에서 쓴다. 글을 쓸 때 음악을 틀어 놓는 건 글쓰기를 더 즐겁게 하는 일종의 보상이기도 하다. 



밤 9시만 넘으면 언제든 잘 준비를 한다. 피곤한 날은 9시 되기 전에도 잔다. 일찍 자는 것만큼 새벽 3-4시에 깨기도 한다. 

난 누군가를 만나는 약속이 거의 없다. 제자들과의 만남은 소중하게 응하는 편이지만, 어른 친구는 거의 없다. 내가 나가려 하지도 않지만, 나를 초대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만남은 내게 희귀하고 무슨 큰 이벤트 같은 것이어서 보고하듯 블로그의 소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를 만나실 분들은 블로그 소재가 될 각오가 필요하다ㅋㅋ




6. 그렇게 일찍 자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만남이 제한적인 이유는?

학생들과 최상의 모습으로 만나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 내 삶의 반경을 좁히고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서 그러는 거다. 그러니 내 삶의 방식이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난 오히려 다양한 만남과 취미와 활동을 하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물론 학생들과의 만남에 지장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

난 체력도 약하고 나이는 계속 들어가고 사소한 일에도 정서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담임교사로서 감정노동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서도 담임을 포기하지 못하는 모순적인 삶을 살고 있다.



또 글쓰기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지향하는 삶을 보조하고 다독이는 느낌으로 생각한다.




7. 마무리 

난 블로그, 브런치, 학교수업, 강연 등을 통해 통념과 싸우고 있다는 말을 했다. 행복교육 캠페인 같은 나의 교육철학이 힘겨워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님과 (예비)교사들에게도 작은 위로와 희망이 메시지가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관점을 조금씩 달리하고, 각기 다른 상황에서 글을 쓰더라도 나의 중심 메시지는 변함이 없다.



난 이 모든 것을 은혜라고 말했다. 자격 없는 내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기쁨. 그래서 늘 감사하고 풍요로움 속에 감격할 수 있다고... 

애초에 활동중심연구회 첫 강연에 강사로 초대한 그것부터가 은혜의 출발점이었다고... 그렇게 감사한 마음도 전했다.



이후 블로그나 브런치에 나의 삶이 어떻게 기록될지, 글쓰기가 고갈될지 더 풍성해질지, 알 수가 없고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래서 자신감도 없다. 침묵이 계속되면 내 삶의 침체도 들킬 수 있겠지만 억지로 괜찮은 척은 하지 않을 것 같다.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오셔서 긴 이야기에 경청해주셔서 은혜를 체험하게 해주신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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