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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Mar 28. 2023

Tomorrow is another day.

벚꽃이 피었다. 이보다 더 만개할 수는 없을 정도로. 

만개했다는 건 곧 저문다는 뜻이다.

내가 보름달보다 초승달을 더 좋아하는 것은 무조건 좋아질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벚꽃이 필 때마다 마음이 조급하다. 지금 이걸 놓치면 다시 기회를 얻을 때까지 꼬박 1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가 없다. 그냥 벚꽃 핀 것을 누리면 되는데, 피어 있는 동안 져서 없어질 것만 먼저 떠올리면서 그걸 어떻게든 후회 없이 담아두려는 시도가 순간의 몰입을 방해한다.


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장소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눈에 담아두는 것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남기면 그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관광지에 카메라봉이 난무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혹 그 욕심 때문에 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카메라 렌즈로 본 세상은 맨눈으로 보는 것과 분명 다른데... 결국 카메라로 본 그 장면만 우리의 기억을 보존하며 여행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딸들이 어렸을 때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을 남기지 못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 더 많은 삶의 장면을 글로 남기지 못한 것도 후회했다. 그러나 기억나지 않는 것은, 그 이유로 무가치한 것인가? 오히려 지금 사진이나 글로 남아 있지 않은 것은 그 순간 온전히 몰입했기 때문이 아닐지...


난 오히려 딸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는 것이 더 두렵다.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남겨두었지만, 그건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일 수 없어, 닿지 않는 그리움만 너무 가득해지기 때문이다. 

기억나지 않아도 그 순간 막연한 행복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분명 그때는 행복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딸의 어린 시절에 더 놀아주지 못하고 더 여유롭게 대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 자책하며 괴로워한다. 그 어린 날 중 단 하루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그 후회의 뿌리를 뽑아낼 수 있을 거라는 비장하지만 비현실적인 소원을 “한”의 정서로 품고 있다. 그런 아내에게 그랬다. 당신만의 방식과 사랑으로 그 자리를 지켜주었다고. 우리의 아쉬움과 관계없이 아이들은 저렇게 잘 커주었다고. 더불어 행복했던 그걸로 충분하다고. 우리가 채워주지 못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그 이상을 채워가며 행복해했을 거라고...


딸과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면서 후회를 남기지 않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딸은 재수하면서 고3 때만큼 아빠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도 유경험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원하지도 않는데 내가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하면 그저 공허한 잔소리로 그칠 것이니까 난 그저 대기조로만 자리를 지킨다. 일전에 블로그에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려 했을 때 딸은 실제로 검열을 해서 내게 다시 돌려준 적도 있다. 그래서 딸 이야기를 자주 올리기가 조심스럽다.


딸은 성취지향적이다. 난 오히려 의도적으로 성취보다 과정에 즐거움을 갖도록, 그 소소한 행복에 빠지기를 권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이번에 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목표도 있고, 성취하고 싶은 도달점도 있지만, 수능 끝나고 노력했던 과정에 후회를 남기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도달점으로 성공여부를 판단하지 않아도 되니 부담감이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난 더 힘든 여정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딸에게 되물었다.

얼마나 잠을 덜 자야, 얼마나 덜 쉬어야, 얼마나 정신력으로 힘겨운 시간을 버텨야, 얼마나 플래너의 형광펜이 더 짙어지고 여백이 줄어야 후회를 안 할 수 있겠냐고. 매일 집중력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없을 것인데 하루에 14시간 이상을 공부하고 나면 그 다음 날이 더 힘들어지고, 늘 비교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불만이 가득해지는 삶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냐고. 남들보다 당장 성적이 덜 나오고, 공부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매 순간 느끼면서, 그렇게 지금 이 순간을 힘겨워하면서 어떻게 훗날 후회를 안 할 수 있겠냐고.



결국 후회하지 않는 비결은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잠을 줄이고 물리적 학습시간을 늘리고 나면 몸이 감당하지 못해 강제 휴식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고, 그걸 또 무시하고 정신력으로만 버티면 몸에 병이 날 것인데...


잠을 충분히 자야한다는 한계를 인정하면 오히려 깨어 있는 시간에 더 절실하게 집중할 수 있고, 댄스연습 다니는 걸 포기할 수 없다면 댄스를 가기 위해서라도 주어진 공부시간에 더 몰입할 이유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가진 것에 대한 한계를 명확하게 할수록 확실한 행복이 보장되는 것처럼, 가진 역량과 시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밤에 축복처럼 주어지는 잠자리에 들 수 있다면 의외로 과정 중에서도 누리는 행복이 커질 것이라고.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대사" 내일이라는 또 다른 기회에 또 다른 가능성을 품에 안고 오늘의 아쉬움은 자책하지 않고 잠과 함께 묻어버리는 의도적인 노력이 편안한 일상이 되길...


그렇게 각자 가진 역량과 체질의 차이도 고려해야 하니, 단순한 남들과의 비교로 스스로 힘들어하지 않을 일이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결국 이뤄낼 역량을 가불 받아 땡겨쓰듯 무리하지 말고 서서히 무리하지 않고 만들어가야 점점 커지는 성장을 확인하며 갈수록 더 행복해질 것이다.



후회를 안 하는 두 번째 비결은 결과와 과정을 분리하는 것이다. 결과를 보고 후회를 떠올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결과가 선하다고 후회가 면제되는 것도 아닐 것이니, 과정에만 집중하도록 애써야 한다.

나도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나니 만남의 기회도 유보하며 낭만적으로 소중히 혼자 키웠던 사랑의 감정조차 사치로 느껴졌었다. 과정 중에 소중할 만큼 의미 있던 것도 결과로만 판단하면 비판과 후회를 피해 갈 도리가 없다.


물론 열심히 하지 않아서 생기는 후회는 변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 후회조차 의미 없는 낭비는 아닐 것이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후회가 생기는 건 희망의 징조이기 때문이다. 한계를 인정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은 이후에 후회를 다시 겪지 않을 기회가 될 것이니까.


얼마간의 후회는 영원히 이룰 수 없지만 완성으로 향하는 성장의 여정을 멈추지 않도록 도와준다. 여전히 의미 있는 것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자각으로도 멈추지 않을 거라는 사실뿐이다. 그냥 그 자리에 머물지 않으면 더 이상 후회는 아닌 것이다.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Margaret Mitchell, Gone With the Wind

어쨌거나 내일은 또 다른 하루이다.


1) after all 어쨌거나, 기대와는 반대로


2) another 

① one more person or thing of the same type 똑같은 종류로 하나 더

② not the same thing, person etc, but a different one 같지는 않고 다른 하나

another는 “an + other”의 형태로 “하나 더”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게 같은 종류로 “하나 더”이거나 다른 걸로 “하나 더”일 수 있으니 문맥을 잘 살펴야 합니다.


3) 우리는 내일을 같은 종류의 “하나 더”로 인식하며 지겨운 일상의 반복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 문장은 오늘과는 다를 또 다른 하루를 의미합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는 듯한 비장함이 이렇게 쉽고 간단한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우리말로 이 말은 이렇게 의역이 되어 또 다른 감동을 줍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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