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수능 난이도와 변별(Feat. 수험생의 자세)

by 청블리쌤

<학력고사와 수능의 차이점>

학력고사에서 수능시험으로의 전환은 암기에서 이해로의 프레임 전환을 의미한다.

학력고사 국어의 경우 지문에 대한 분석과 암기를 통해 문제대비가 가능했다. 영어는 문법 문제 등의 지식을 묻는 문제가 많이 출제되었다.

수능국어 비문학 독서영역에서는 낯선 글을 대하게 된다. 인문, 사회,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보며, 수험생들은 공부의 경험치로 축적된 노력의 산물인 암기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해력으로 실력을 인증받는다. 물론 사회, 과학에 능한 학생들과 배경지식이 있는 학생들이 더 유리한 면은 있지만 공부를 더 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능력치라서 불공평할 건 없다.

수능 독서영역은 낯선 글을 출제해야하므로 기존의 지문을 반복할 수 없고, 수능과 간접연계되는 EBS지문을 그대로 활용할 수도 없다. 단, EBS에 나오는 분야와 소재를 활용하여 출제할 수는 있어서, EBS지문을 교과처럼 공부해 두면 지문이 그대로 나오지 않더라도 도움이 되기는 한다.

내신시험은 시험범위 내의 지문을 누가 더 철저하게 분석하고 더 잘 기억하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지만, 수능은 그런 과정을 통해 결국 새로운 지문에 대한 파악능력을 키우는데 초점이 있다.

그래서 수능은 내신처럼 단기간에 대비가 불가능하다. 평소 꾸준한 학습습관과 공부내공이 쌓여야 실력을 증명할 수 있다.

영어의 경우도 동일한 지문이 출제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EBS 간접연계로 전환된 이후에 EBS 지문 자체도 그대로 출제되지 않는다. 문법 문제도 한 문제만 나오고, 이조차도 문법지식이 아니라 문장해독능력의 전제로 접근하는 문제다. 학력고사가 정확성에 초점이 있었다면 수능은 유창성에 더 초점을 두는 느낌이다. 그러나 수능영어의 유창성은 정확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야 해서, 결국 학력고사보다는 더 높은 수준의 실력을 요구한다. 순서와 빈칸추론 등의 유형은 정확성이 없으면 접근할 수 없다.

원어민들이 수능영어를 보고 경악을 하면서 엉터리영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려는 핑계에 불과하다. 수능영어는 구어영어와는 다르다. 구어영어는 영어듣기에서 정형화된 대화로 드러날 뿐, 대부분의 독해지문은 학술적인 글이다. 우리는 한국어 원어민이지만 수능국어를 시간내 다 풀기 어렵고 다 맞히지도 못한다. 원어민이라도 수능영어를 다 맞혀야 한다는 건 망상이다.

수능 국어와 수능 영어의 목표는 문해력이며, 정확하고 빠른 독해능력이다. 실제로 이 능력이 이후의 공부능력도 결정한다. 영어의 경우도 수능영어 독해를 감당할 수준이 되면 대학교에서 원서를 보거나 영어로 온라인 리서치하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다.

영어교육을 오래 받았는데 말하기가 안된다는 건 영어독해에 대한 강점조차 포기하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말하기와 듣기는 공교육의 시수와 학생수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개별적인 축적으로만 역량이 발휘가 될 수 있으니, 학교 교육을 바탕으로 각자가 개발해야하는 영역이다.


학력고사 세대 교사로서 수능세대를 가르치면서 시험의 전환은 매우 유의미하다고 생각해왔다. 당장 지식을 암기하지 못해도, 새로운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받아들여야, 비판적 사고나 창의성을 키울 여지도 생긴다. 그게 국어든, 영어든 언어로서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교과과정 내에서 수능 출제?>

그렇다면 학교교육과정 내에서 수능 국어 비문학을 출제하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고등학교 독서와 문학 교과서는 학교마다 다르다. 그러니 공통된 지문을 수능에서 출제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게 학교 내신 시험범위의 개념과 다른 점이다. 그러면 모든 출판사 교과서 내에서 범위를 정해서, 혹은 EBS지문에서 직접연계로 다 출제한다고 가정한다면? 그걸 공부하면서 문해력이 늘긴 하겠지만, 그보다는 범위 내의 지문을 더 분석하고, 암기하다시피 하는 학생들이 더 유리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주어진 범위의 지문은 지식적으로 알겠지만, 새로운 글에 대한 적응력을 보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바탕으로 본인이 스스로 문해력을 향상하려는 진짜 공부력에 대한 내공을 쌓는 방향이 아니라, 예전 학력고사처럼 내신 공부하듯이 암기위주의 학습으로 돌아선다면 오히려 학생들의 불안함은 더 가중될 수도 있다.

내신시험도 범위가 적으면 문제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변별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범위가 정해지면 문제는 더 지엽적이 될 수도 있다.


수능 사탐, 과탐의 경우 기출문제에서 중복되는 문제를 제외하다보니 갈수록 문제가 더 어렵고 지엽적이되는 현상도 이에 맞닿아 있다.

적어도 국어와 영어는 기존의 글을 얼마나 더 많이 봐서 기억했냐보다, 낯선 글을 얼마나 잘 읽어내느냐의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고, 학생들 입장에서도 공부의 방향이 훨씬 명확하다.


<수능의 난이도를 낮춘다면?>

그렇다면 고등학교 과정에서 문제를 낸다는 것이 범위 지정이 아닌 시험 난이도의 문제라면?

물론 비문학독서의 수준이 이미 대학교양수준이상을 넘어서기도 한다는 건 우려스럽기는 하다. 국어 쌤들도 교재연구를 하면서 관련 교과 선생님들께 자문을 구해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영어 쌤들도 마찬가지다. 영어지문도 교과적 이해에 바탕을 둔 학술적인 지문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가 전체적으로 평이해지고, 소위 말하는 킬러문제가 사라진다면?

정시의 비중을 늘리는 방향과 모순될 것이다.

내신시험 중심의 수시는 개별학교 시험으로 확정된 성적과 수능최저등급 등의 요소로 대입이 결정되니, 수능 킬러문제의 존재여부에 큰 영향이 없을 수도 있다. 혹 영향이 있다면 수능최저등급 맞추기가 더 쉬워져서 수능대비 정도의 문해력을 갖추지 못했어도 각 개별학교의 수준에 따라서 학업능력의 차이에 상관없이 합격되는 비율이 증가한다는 정도일지도.

수능은 말 그대로 수학능력시험이며, 대학에서 공부할 최소한의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 문해력이 자리한다.


수시에 활용되는 최저등급의 경우 갈수록 완화가 되고 있고, 의대 등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자신없는 영역은 포기하고 다른 영역으로 최저를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수시학생들에게는 수능시험에서 극강의 변별은 필요없다.


그러나 정시에서 킬러 문제 한두 개 차이로 의대 진학 여부가 결정되는 촘촘한 간극을 생각하면 킬러문제의 부재는 변별기능의 상실을 의미한다. 물론 수능수학 주관식 몇 문항을 제외하고는 모든 문제가 선택형이라서 찍어서 맞추는 운 좋은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내 제자 중 한 명은 수학 문제 하나를 찍어서 맞혀서 의대를 갔다. 물론 다른 문제를 다 풀었기 때문에 주어진 축복이긴 했지만, 완벽하게 실력을 측정할 수 있을지, 한두 문제 차이가 진짜 실력을 변별할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는 있다. 킬러 문제의 장벽은 매우 높아서 수학 한 문제를 더 맞히기 위해 재수를 선택할 정도이니, 한두 문제 차이를 별 거 아닌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물론 사교육에 의존하는 현 교육시스템의 문제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교육교사들은 더 각성해야 하고,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학부모와 학생의 인식도 전환되어야 한다.

수능이 변별도를 상실한다면, 특히 의대를 포함안 최상위권 대학들은 변별할 수 있는 별도의 장치를 연구할 것이다. 최상위권 대학에서 수능으로 학생 선발 기능을 상실한다면, 대학별 고사 등의 필요성이 대두될 수도 있다. 물론 교육부에서는 금지한 대학별 고사를 찬성할리가 없고, 이전부터 대학별고사의 유사한 성격을 지닌 논술도 축소할 것을 권장해온 마당에, 대학들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겠지만, 선발 과정에서 논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공정한 선발에 대한 대학과 학생들의 고민도 깊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내신을 확대하여 반영한다면 각 학교의 격차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을 것이며, 현재 확대 시행되는 과정인 고교학점제의 취지에는 상대평가가 아닌 내신도 절대평가가 어울리므로 내신성적의 등급 등은 영향력이 줄어든다. 절대평가가 되면 교육특구, 특목고, 전국단위자사고 등이 교육과정의 다각화나 학생활동의 다양성 등으로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수능이 그래도 공정하다고 인식하는데는 유일한 표준화시험이기 때문이고, 학교의 격차 등의 개입되지 않는 순수 실력을 평가한다고 믿는 시험의 신뢰도 때문이다.

영어가 절대평가가 되면서 영어의 영향력이 대폭 축소되었다. 그러나 EBS가 간접연계가 되기도 했지만, 상대평가인 시절에 영어 1등급 인원이 4%내외였는데, 절대평가임에도 1등급 인원이 최근 6% 내외인 높은 난이도로 그나마 최상위권 대학에서 어느 정도 영어로 변별하려는 취지에 부합을 해왔을 것이다. 최상위권 대학이 아니라도 수시지원하는 학생들은 최저등급을 맞출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영어의 중요성은 현역 고등학생들의 체감하는 것에 비해 의외로 많이 축소되지 않았다. 그것도 어느 정도 난이도를 확보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각 학교의 내신시험에서도 특히 교육특구의 경우라면 상대평가 등급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소위 킬러문제가 포함되고, 난이도도 어렵게 조정될 수 있다. 상대평가 특성상 등급별인원이 넘쳐나면 그 등급자체에 블랭크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수능도 변별력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변별이 되지 않으면 등급 블랭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와 청와대에서 교육과정내에서 출제하라는 것이 쉽게 출제하라는 의미가 아니라고 답변한 것도 이런 맥락일 수 있다.

그러나 과열된 교육열로 인해 특히 정시에 경쟁력을 갖춘 많은 학생들을 어떻게 변별할 것인가?

사교육을 금지시켜서 모두가 공부를 덜 하고 역량이 넘쳐나지 않는 상태라면 문제가 어렵게 출제되지 않아도 변별이 되겠지만, 시장논리나 개별적인 선택으로 인해 벌어진 결과론적인 현상에 대해, 그동안 과열된 상태로 공부한 내용과 수준을 반영하지 않을 것이니 사교육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접근은 순서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수능 직전에 수능 난이도 언급의 영향과 이후 방향은?>

대입은 수험생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통 제도를 바꾸려 할 때 3년 전에 사전 예고를 해왔다. 수능 5개월 남겨두고 수능에 대한 언급은 좋은 의도였던, 실제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는 영향을 주는 것이었던, 어쨌거나 수험생들의 큰 혼란과 불안함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모두가 9월 모평을 주목하게 되었고, 수능까지 주목할 것이다.


6모와 9모는 수능출제기관에서의 실험적 평가의 기능도 있다. 난이도 조절과 출제 방향을 점검하는 역할도 하고 있고, 수험생들에게는 수능의 맛보기적 기능과 방향설정의 기능도 있다.

물론 각 시험의 난이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안 된다.

6모에 어려우면 9모에 다소 쉽게 출제되는 경우가 있는데, 거의 다 완성되었다는 방심에 수능을 망치는 학생들이 꽤 많았다.


예전부터 불수능, 물수능에 대한 논란은 늘 있었다. 평가원장이 수능직후 평이하게 출제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는데 실제로는 불수능인 경우도 있었다. 출제자들은 학생들의 체감 난이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전문가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난이도 조절이 의도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난이도 조절은 어렵다.


정말 쉽게 내라는 출제 지침을 받았어도, 어이 없을 정도로 의도적으로 쉽게 내지 않는 한, 난이도를 정확하고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수험생들의 자세>

그렇다면 수험생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냥 자기 갈 길을 가면 된다. 수능에 대한 언급이 아니었어도, 9모의 결과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수시원서를 쓸 때 수시납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 9모 결과에 어느 정도의 의미를 찾기는 해야하지만...

어렵게 나올 거라고 공부를 더 하고, 쉽게 나올 거라고 공부를 덜 할 건 아니니... 그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영역이 나올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어서, 난이도와 관계없이 수능의 불확실성 속에서 확실한 자신의 실력을 의지하며 자신의 역량껏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어야 한다.


올해 수능과 대입에 대해 이후 많은 논의가 이어질 것이다. 전체적인 입시제도의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서술형 수능, 대학별고사, IB 등의 도입도 언급될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변화는 그동안 사교육에 더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교육을 지속하는 동력 중 하나가 불안감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 학교에서 공교육교사로서 사교육없는 자기주도학습 과정을 무료로 진행하는데도 학생들과 학부모는 학원을 더 의지하려 한다. 정말 어려운 현실이다.

변화를 기대할 수는 있지만, 오랜 교직생활의 경험 상 진정한 변화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난 그 점진적인 변화와 사소해보이는 교육적 영향력을 붙잡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많은 공교육교사들이 그런 상황적 무력감 속에서 애쓰고 있다.

내 생각에 수험생들이 바라는 건 한 가지다. 자신의 노력이 공정하게 평가되고 노력한 것만큼 성취를 보장해 주는 것... 그 방법과 과정에서 논란의 여지는 많고 기성세대와 교육당국이 할 수 있는 역할도 찾아야하겠지만, 어떤 경우든 노력의 배신이나 공정성의 훼손같은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노력이 부족하면 더 열심히 할 기회를 볼 수 있지만, 그런 일을 당하면 좌절감과 무력감으로 다시 용기를 내기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교사든 수험생이든 가변적인 상황 등의 변수로 인한 소용돌이에서 오히려 더 절실히 상수를 붙잡아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여, 이 순간 할 수 있는 한 걸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변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추천곡) 곁 - 진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