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션 연수 요청 받다>
학교에서 담임 외에도 연구부 수업개선계 업무를 맡고 있다.
수업 전문가는 아니지만 자료공유에 대한 부담감은 늘 가지고 있어서, 이번 달에 울산 영어교사연구회 강연에서 간단하게 소개할 노션 활용 블로그 페이지를 전체 학교 선생님들께 공유해드렸다.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3123471647
연구부장님께서 부담이 안 되면 2학기 전체 수업나눔의 날에 노션에 대해 발표하는 게 어떨지 물으셨다. 난 부담은 되지만 (존경하는) 부장님이 요청하시면 무조건 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 자리에 선다고 했는지 현타가 왔다.
노션은 다른 툴에 비해서 접근장벽이 높아 보이고, 아직까지 보편화되지 않아 일잘러들만 활용한다는 인식이 있어서 기본적인 기능만 활용해도 전문가처럼 보일 수 있다.
나도 그 높은 문턱에서 헤매다가, 그저 나의 수준과 나의 필요에 맞는 기능만 겨우 활용하고 있을 뿐인데...
활용의 단면만 보여드리는 것은 직접 연수를 하는 것과는 완전 다른 이야기였다.
그래서 연구부장님께 전문가 수석쌤을 섭외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니까, 학교쌤들은 나를 더 좋아하니 그냥 내가 해도 된다는 멘트로 나의 민망함을 덜어주셨다. 차차 더 고민해 보자고...
<비전문 강사의 현실 자각>
작년과 올해 학교선생님들 앞에서 "행복교육, 사교육없는 티칭과 코칭"이라는 주제로 두 번의 연수를 진행했다. 외부에 강의를 다니면서 정작 우리학교에서는 강의를 안하면 안 된다는 교감쌤의 초청이 있었다.
난 전문성의 옷을 입고 나가는 사람이 아닌데, 내가 전하고 있는 교육적 가치와 교육방식들을 내가 정말 삶으로 구현하고 있는 게 맞는지, 허세나 거짓이 들통날 수도 있을 만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선생님들 앞에서 강의를 한다는 건 정말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는데, 감사하게도 학교쌤들은 자기 식구 챙기듯이 전폭적인 지지와 호응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이번 노션 강의 건은 아직 확실하게 성사된 건 아니지만, 내 전문성과 강사의 자격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고민하게 해주었다.
<노션 연수 상상. 그리고 교과 수업과의 비교>
잠시 상상을 했다. 혹 선생님들 앞에 서게 되면 어떻게 연수를 진행할지..
교과 수업과 비교하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 가르치는 표면적인 내용은 준비한 전부가 아니다.
깊이 우려낸 내용 중 표면화되는 가르침은 깊은 고민과 지식 재구성과 듣는 이의 이해(스키마)에 맞닿는 내용으로 선별하고 압축한 것이며, 스키마에 맞닿도록 구성하되 "쌀로 밥 짓는 이야기" 같은 너무 뻔한 이야기가 아니어야 한다. 그러니 교과서나 참고서에 있는 내용을 나만의 연구과정을 거쳐서 나만의 언어로 풀지 않고 그저 전달하는 것에 그친다면 배움도 감동도 재미도 일어나게 할 수 없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당장의 나는 노션의 표면에 간신히 이르게 된 수준이므로 가르침에 적합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니 두 가지 중 하나의 선택에 서게 된 것이다. 그 자리에 서지 않겠다는 선택과, 충분히 더 준비해서 나 자신도 납득할 수준에 이르도록 노력하는 선택이다. 물론 그런 과정을 거치고도 가르치는 표면적인 내용은 깊이가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진짜 좋은 가르침이다.
학생들로부터 "선생님은 많이 아시는 것 같은데 난 한 개도 모르겠다"는 말을 듣는다면 교사의 깊은 지식은 학생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교사의 실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너무 쉽고 단순하게 가르치는 것이 성공일 수도 있다. 알고보면 후자가 교사로서 훨씬 더 힘든 과정이다.
노션도 유튜브 영상에서, 책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지만, 그렇게 흔하게 접하는 내용을 옮겨주듯 전달하면 강의에 무슨 의미와 효용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내가 연구하고 공부한 것이 아까울 정도로 압축하고 단순화해서 최대한 문턱만 낮춰주는 것이 내 미션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두 번째, 맥락 연결을 돕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교사와 강사는 맥락 연결 전문가다. 듣는 이들로 하여금 내가 파악한 지식체계와 깊이에서 우러나온 맥락으로 친절하게 안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어도 그 맥락을 이어가기 위해 학생 스스로의 단어공부가 필요하고, 학생들이 익힌 단어를 영어교사의 전문성으로 단어의 문맥상 의미와 문법을 통한 역할을 지정하여 맥락을 연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물론 교사의 목표는 자립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결국 학생들 스스로 맥락을 연결하는 내공을 키워주어야 한다.
노션의 기능을 설명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알아들을 수 없고, 알아들었더라도 스스로 해볼 내공이나 계기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많은 선생님들이 엑셀연수를 듣고 뭔가 기능을 알았지만 실제 활용하지 않으면 그저 증발되는 현상처럼...
내 수업은 교사의 일방적인 티칭에 집중되어 있지만, 영어멘토링 코스 등을 통해 혼자서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매시간 수업진도에 따른 예습, 복습은 학생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나의 목적은 개별적인 그 수업 자체가 아니라 매 수업과 개별학습에 적용될 수 있는 혼자만의 학습역량과 기본기 확립에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노선 강의를 진행한다면 두 가지의 뚜렷한 목표를 설정해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데이터베이스, 대시보드 등이 노션을 정말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최종 도달점을 지향하며 과도한 동기유발을 강요하면 안 될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기능 위주로 쉽게 알려주어 당장이라도 바로 써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게 문턱을 낮추는 일인 것이니까. 문턱만 넘어서면 어렵고 전문적인 기능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유튜브를 찾아보면서 익힐 수 있다.
빈컵에서는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기본지식과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이 그런 이유다. 완벽한 이해가 아니고, 초라해보이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도 의미가 있다. 그래야 그 이후에 조금씩이라도 배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당장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마음을 닫으면 영영 빈컵일 것이므로 배움은 절대 시작되지 않는다.
교사는 그런 초라한 배움의 시작을 격려하고 응원해줘야 한다.
오래 전 공익근무할 때 구청에서 공공근로 임금계산 업무를 보조한 적이 있었다. 엑셀의 가장 초보적인 기능만 알고 있었고, 함수식의 원리만 알고 있었던 내가 보조하기에는 엄청난 함수식의 향연이었지만, 보조업무라는 현실적인 임무라서 절실하게 배울 수 있었다. 내가 함수식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지만 함수식이 점점 더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맥락을 파악하게 된 것이다. 맥락 파악은 그 자체의 현상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사전지식이 필요하고, 그 기본기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설 수 있다.
이후 교직에서 난 남들이 만들어 놓은 엑셀자료의 함수식을 하나씩 이해하면서 결국 혼자서 함수식을 만들어 양식을 활용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 과정에 필요한 건 현실에 적용하는 절실함과 미션이었다. 그런 부담이 없었다면 활용의 단계까지 이르지 못하고 지식에 잠시 머물다가 증발되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문제를 제대로 풀 수도 없고, 영어 해석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하다. 그래야 또 그 최종 미션을 위한 기본기 형성이라는 사전 작업을 해야 한다는 동기유발로도 이어진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선생님들 앞에 서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교사는 학생들보다는 더 전문가이기 때문에 오히려 수준을 낮춰주는 것에 더 진심이어야 한다. 난 고등학교에만 있다가 중학교 와서 그 지식의 저주로 인해 더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교사의 교재연구는 때로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알고 있는 내용을 가르치는 건 교재연구 없이도 가능하지만, 학생들에게 가닿는 수업으로 재구성하는 건, 깊이 있게 새로운 것을 교사 스스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교사의 시간낭비가 학생들의 이해를 높여줄 것이라는 사명감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번 경우는 지식의 저주가 없을 것이니, 수준을 낮추려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니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연수를 한다면 내 목표는 이것이면 된다. 비전문가인 나도 노션을 이 정도까지 쓰고 있으니 노션을 나만큼만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기.
그리고 진정한 배움의 의지를 가진 분들을 위해 템플릿을 복제해서 스스로 만들어 보는 과제를 제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단 시작하면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고, 의문이 생긴다는 건 배움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는 것이니 도달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연구부장님께 말씀드리려 한다. 2학기 때 전문가 초청에 강사비 예산을 쓰지 마시고 저렴하고 수준에 맞는 저를 강사로 쓰셔도 된다고(자신의 학교에서 강의를 할 경우 강사비가 지급되지 않는다)
2학기에 강사로 서기 위해 난 노션을 더 연구하게 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혹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고 자랑하거나 기를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설명하면 더 쉽고 친근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니까.
세 번째, 새로운 것, 어려운 것에 대한 저항감을 허물고 도전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어른이든 학생이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원래 하던 것에 익숙한 채로 머물고 싶어 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보다 도전 과정에서의 좌절의 아픔과 귀찮음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보통은 comfort zone에 머무는 걸 선택한다.
학교에서 영어멘토링이나, 방학 자기주도학습 과정을 신청하는 학생들은 기본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 않거나, 절실함으로 그걸 넘어선 경우다. 물론 용기를 냈다고 완주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시작만 했다가 끝을 보지 못한 미성취의 기억이 이미 한가득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다 미완성의 기억을 더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도 처음 노션을 도서관의 신간도서에서 만났을 때 대출을 하려는 망설임 끝에 그냥 책을 두고 나왔다. 지금 내가 활용하는 프로그램으로도 충분하고, 새로운 것까지 받아들일 여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서관에 갈 때마다 책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좀 더 알아보고 포기해야 미련이 없을 것 같아 다시 집어 든 책에서 신세계를 발견했다. 노션 관련 책도 구입했다 유튜브영상을 찾아보며 하나씩 단계를 밟아 겨우 문턱을 넘어섰다. 그렇게 시작하고 나니 활용도가 보였다.
데이터베이스를 연결하여 표와 캘린더를 연결하여 수업공개일을 선생님들이 찾아볼 수 있는 페이지를 만들어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매번 지도안과 참관록 양식을 보내드리는 것보다 수업공개일에 맞춰 학교메신저로 노션페이지 링크만 보내드리면, 각자 수업 일정과 학반, 수업공개 내용 및 양식 다운까지 한 페이지에서 다 해결할 수 있었다. 게다가 수업공개일과 내용이 바뀔 경우 바로 수정된 내용을 반영할 수도 있었다.
전문가가 아니니까, 전문가에게 직접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나 혼자서 활용하는 방법을 성취할 수 있고, 이후에도 필요에 따라 응용하고 확장할 자신감이 좀 생겼다.
선배선생님 한 분이 뒤늦게 기타연주를 배우면서 부진아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자신의 전문분야와 교과가 아닌 다른 분야의 배움의 과정을 겪으면서 교사들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선생님들 앞에서 노션을 이야기한다면, 기능적인 제시보다 왜 노션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이 우선일 것이다. 불편함과 귀찮음을 무릅쓸 이유를 보여드려야 할 것이다.
코로나시국은 교사와 학생들의 온라인수업 툴에 강제로 적응하게 했다. 그토록 단시간에 거의 모든 교사와 학생이 온라인 줌수업이나 구글클래스룸 같은 플랫폼에 익숙해지는건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새로운 것에 대한 저항감 따위를 돌아볼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 막상 하니까 어떻게든 하게 되었다.
교사는 수업시간에 모든 내용을 다 가르칠 수는 없다. 그래서 혼자서 학습할 기본기를 어떻게든 수업시간에 많이 소개하고, 교실밖에서 확장하도록 학습코칭하고, 이왕이면 온라인 수업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플립러닝, 블렌디드러닝이 일어날 기회를 주며 자립을 돕는 것이 교사의 구체적인 목표설정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왜 귀찮음과 좌절감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 그 교과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지에 대한 절실함을 일깨우고, 이왕이면 재미와 흥미를 갖도록 해서 지속적인 학습을 이끌어 내는 노력도 필요할 것 같다.
<교사로서의 축복을 다시 생각하며>
그러고 보니 교사들은 이런 불가능한 미션들을 매 순간의 삶에서, 그 일상에서 도전하고 이뤄가는 자리에 있던 것이었다.
내게 주어진 새로운 도전의 기회에서, 난 수업에 대한 나의 절실함과 나의 노력의 가치와 의미를 마주하며 힘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교사는 자신의 삶으로 가르친다. 자신이 먼저 실행했던 것, 먼저 느꼈던 것, 배움의 즐거움을 누렸던 순간들을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설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
전문가가 아닌 내가 강의를 할 수 있는 것도 나만의 삶의 스토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주도권이 내게 있지는 않아서 내 강의를 들어달라고 부탁할 일은 없지만, 강의 요청이 있을 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내 삶의 의도적인 계획은 아니지만, 내 삶의 일부가 되고, 또 다른 설렘이 되고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