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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Aug 28. 2023

AI와 맞짱 뜨는 연수를 마치고

토요일 오전에서 오후까지 넘어가는 시간을 온전히 다 투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주가 아니고 한 번의 이벤트라도 마찬가지다.

그런 자발적인 연수 모임에 강사로 초대받았다는 건 정말 놀라운 축복의 시간일 것임을 직감했다.

담당 장학사님께서 섭외 전화를 하셨을 때, 단 1초의 망설일 이유를 찾지 못했다.


대구 중등영어교사 Talk & Share 직무연수는 대구시 영어교사의 열정을 상징하는 행사다. 다른 지역 1정 연수를 갔을 때 담당 연구사님께서 대구에서 영어교사를 위한 연수의 규모와 지원에 부러운 마음을 표현하시기도 했다.

전체가 함께 참여하는 기조 강의 외에도 10가지 주제 중 두 세션씩 선택하는, 뷔페 같은 연수다. 

그렇게 큰 행사이다 보니, 연수기획, 강사 섭외, 홍보, 수강신청부터 행사 당일 스탭 선생님들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 고생하신다는 게 느껴졌다. 다른 지역과 사범대 학생들의 신청도 받고 있었다. 


강사가 되니 열정 선생님들을 만나는 축복 같은 설렘 이면에 선택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대구 영어교사 행사지만, 강사는 전국구로 섭외하며 정말 좋은 강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강의 제목은 에듀테크를 추구하는 전체 트렌드에 맞서는 듯한 느낌의 “AI와 맞짱 뜰 수 있는 인간 교사의 경쟁력”이었고, 인지도가 높은 강사도 아니었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관심 밖이라고 생각하는 건 충분히 합리적인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연수 전날 학교의 친한 선생님들께 응원을 받고 싶었다. 이런 주제로 강의를 가는데 망신만 당하지 않도록 응원해 달라고... 감사하게도 많은 선생님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 주셨다.

연구부장님은 “영어과의 이세돌”이라는 메시지를 남기셨다. 그렇다. 맞짱 뜰 정도면 그 정도의 경쟁력이나 인지도는 있어야 할 텐데.. 하면서도 재치 있는 응원의 메시지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대학교 때 도서관 같은 층에서 공부하던 인연으로 도서관 3층파로 불렸던 두 명의 동기들이 내가 부탁도 안 했는데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의리” 신청을 해주었다. 마치고 티타임을 갖자는 명분으로 그렇게, 한 강의실에서 3명이 뭉쳤다.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교수인 대학원 동기도 와 있어서 깜짝 놀랐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을 이렇게 마주하는 게 신기했다. 대학 동기 한 명은 내가 이렇게 강의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이하 동문이었다. 내 삶의 목표도 아니었고, 그런 역량이 될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전문성, 인지도, 역량을 갖추었다는 말은 아니다.


교수님인 동기는 연수 후, 자기 대학 학생들을 위한 특강에 초대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는 그저 감사한 초대였다.


강의 당일... 꼭 강의가 있는 날은 새벽에 일찍 잠이 깨서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설렘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문득 AI와 맞짱 뜬다는 어그로 끄는 제목에 대해 챗 GPT 의견이 궁금했다. 자꾸 챗 GPT를 만나다 보니 이제는 무슨 인격체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래 챗 GPT와의 채팅은 GPT 4 버전으로 뤼튼(wrtn.ai)에서 진행했다.


내 질문 : 인간교사가 AI에 맞짱 뜰 수 있다고 생각하나?


챗 GPT 답변 : 

"맞짱 뜨다"라는 표현은 경쟁이나 대립을 의미하는데, 인간 교사와 AI를 경쟁 상대로 보는 것보다는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파트너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AI가 가진 강점 중 하나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고 분석하는 능력입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 패턴을 파악하고 개인화된 학습 계획을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반면, 현재의 AI 기술은 감정적인 지원이나 창의적인 문제 해결, 그리고 복잡한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 등 인간 교사가 잘 수행하는 역할들에 비해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 교사와 AI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서 협력하여 최상의 교육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교사가 AI와 함께 작업함으로써 자신들의 가르치는 방법을 개선하거나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술 발전에 따라 변화에 적응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중요한 인간적 요소를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볼 때, "맞짱 뜨다"보다는 "협력하며 발전한다"가 더 적합한 표현일 것입니다.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물론 나의 의도도 챗 GPT의 능력과 똑같은 조건으로 똑같은 역량으로 맞짱 뜬다는 것이 아니긴 했다. 대체의 개념이 아니라 코파일럿(copiolot)의 가능성을 두고, 인간의 장점에 집중해야 한다는 방향이었는데, 싸움을 거는 듯한 나의 말에 챗 GPT는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래서 추가로 물었다. 

AI와 맞짱 뜰 수 있는 인간 교사의 경쟁력은?


챗 GPT 답변 : 

인간 교사가 AI에 대항할 수 있는 주요 경쟁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감정적 이해와 공감: 인간 교사는 학생들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고,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나 스트레스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감정적인 지원은 AI가 아직 제공하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2. 창의적 사고와 복잡한 문제 해결: 인간은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는 현재까지 AI가 완벽히 모방하지 못한 영역입니다.

3. 유연성과 적응성: 인간 교사는 학습 환경이나 학생들의 개별적인 요구,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 따라 가르치는 방식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4. 윤리와 도덕적 판단: 인간 교사는 윤리와 도덕에 대해 판단하며,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중요한 생활 지침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5. 문화와 사회적 맥락 이해: 인간 교사는 자신이 속한 문화와 사회를 이해하며, 그 맥락 속에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결정합니다.

6. 관계 구축 및 관리 능력: 학생들과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은 성공적인 교육 경험을 위해 필수입니다.

따라서 AI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교사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특히 AI 기술을 활용하여 자신의 가르치는 방법을 개선하거나 확장하는 등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도 중요한 경쟁력일 것입니다.


대답에 놀랐다. 챗 GPT에게 물어가면서 강의를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방향도 비슷하고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내 강의를 굳이 듣지 않고도 궁금했다면 그냥 챗 GPT에만 물어봤어도 원하는 답을 찾았을 것이니, 강사의 나의 역할은 무엇일 것인지...


그러니까 이 지점에서 인간 교사의 역할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그저 정답만 제시하고, 지식 자체만 주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 맞짱 뜨기도 전에 교사의 역할은 그냥 묻혀 버릴 것이다. 


새벽에 챗 GPT와의 대화를 연수 PPT에 눌러 담았다.

정답을 먼저 스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도 인간 강사가 진행하는 챗 GPT와의 차별점을 강의 자체로 보여드리는 것이 내게 주어진 새로운 미션 같아 보였다.

그래서 이제껏 그래왔듯이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로 재미와 감성을 담아 교감에 이르도록 진심을 다했다. 


선택해 주신 두 세션의 모든 선생님들께 고마운 마음이었다. 선택의 본질이 그렇듯, 이 경우에는 8개 이상의 다른 강좌를 포기하고야 올 수 있는 것이어서...


그래서 욕심이 더 났던 것 같다. 90분의 시간 동안 쉬는 시간도 없이 막 달렸다. 

감사하게도 선생님들과 대학생 예비교사들은 모두 지친 기색 없이 끝까지 몰입해 주시고 반응해 주셨다.

마치고 동기들이 솔직한 피드백을 주었다.

쉬는 시간을 주었어야 했다. 말이 너무 빨랐다. 전달한 양이 너무 많았다.

다른 강사들을 보니 쉬는 시간을 확실하게 확보해 주었고, 전달할 양도 최소화해서 듣는 사람들의 부담을 줄여주었다는 얘기도 해주었다.


평생 떠안고 있는 나의 고질병이다. 너무 내 욕심으로 달리는 것... 난 쉴 새 없이 떠드는 게 충분한 여유를 갖는 것보다 더 어려운 과제다. 학교에서도 그것 때문에 학생들도 힘들어할 것인데.. 그러고 나면 나도 목이 너무 아파 오는데..

듣는 사람의 입장을 더 생각해야 하는데... 동기들의 피드백으로 나의 고질적인 문제에 스스로에게 또 한 번의 망치질을 했다. 좀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면서...


강의 후 연수운영위원 선생님께서 마무리 멘트를 하셨다.

에듀테크 연수만 주로 듣다가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라서 좋았다는 말씀을 하셔서 정말 가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정답처럼 제시했던 인간 교사의 경쟁력의 결론은 그 "따뜻함"이었던 것 같다. 

그 따뜻함이 부디 나만의 자기만족이 아니었기를...



강의 후 동기모임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었다. 

장학사가 되어 교감연수를 받는 동기들을 비롯하여, 행사에 참여하신 영어과의 중대한 일을 담당하시는 교장교감선생님, 장학관님, 장학사님들을 한 번에 다 뵙고 인사드리면서 다들 마음속에 자신의 교직생활과 남은 날들을 생각해 보았던 것 같다. 모두 자기의 자리에서 열심히 헌신적으로 애써왔고, 좋은 선생님으로 진심을 다하고 있지만...

한 동기는 그냥 눈앞에 있는 현안에만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왔는데, 이제 고개를 들고 보니 많은 기회들이 사라져 간다고 했다.

영어교사로 퇴직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상관없겠지만, 장학사가 되거나, 교감, 교장이 되거나, 진로상담교사나 수석교사가 되는 다양한 길이 있는 건데, 오히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공부는 덜 했던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우리와는 다른 진로를 갈 수 있었던 현실에서, 세 명 모두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자리를 지키고 공부에만 열중했던 것이 삶 전체의 패턴으로 계속 이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나누었다. 우리에겐 그것이 최선이었으니까... 자신의 성실성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했고...

물론 시각을 넓히고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서 장학사 시험이나 다른 것들을 준비했더라면 이룰 수 있는 일이 많았을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은 이랬다. 

우리 각자는 때로 강박 같은 완벽주의로 자신의 자리에서 정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필요 이상으로 애쓰고, 늘 누군가를 이롭게 하면서, 가정에도 충실하면서 그렇게 자리를 잘 지켜왔다고.

사람들은 평교사와, 장학사와 관리자를 다르게 보고 판단할 수는 있지만, 각자의 역할이 다를 뿐 그 자리가 높고 낮음이나 가치의 차이를 말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매 순간 그저 눈앞에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해서 그 자리를 지켰다면 뭘 더 열심히 했어야 했나, 일찌감치 다른 목표를 정해서 구체적으로 애썼어야 했나.. 이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고.

다른 동기가 장학사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수업이 배제된 업무만으로는 자신의 교사 정체성을 찾을 수 없어서였다고 했다. 나도 영어수업과 담임을 포기할 수 없었으니 그 입장이 완전 공감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다가 중학교에서 자신의 역할과 도움이 되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다른 동기도 끝까지 최선을 다할 의지를 다졌다.


강의 중에 난 선생님들께 개인적으로 AI보다 나이가 더 두렵다고 했다. 젊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활동 역량에 나이가 더 들수록 아이들의 호감이 차차 회수될 것만 같은... 

나만의 노력이라면 얼마든 하겠지만, 나의 열정과 의욕이라는 이름으로 내 만족을 위한 자기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계속 더 걱정하게 된다고...

담임교사로 정년퇴직하는 것이 내 목표이고 꿈이지만, 아이들이 나의 가까운 거리를 부담스러워하고 날 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업무부장이나 학년부장 등의 나잇값에 맞는 역할을 거부하며 연장자임에도 후배들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부장 아닌, 담임 자리만 고집한다면... 너무 미안할 것 같아서, 나의 목표와 꿈은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 끝에, 강연 중 듣는 이들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여유와 여백 없이 나만의 길을 달렸던 것을 통렬히 반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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