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블리쌤 Aug 29. 2023

대화와 글쓰기로 이뤄가는 성장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독서모임을 주도하시는 선생님 한 분께 메시지를 받았다. 

독서모임을 위해 본인이 추천한 <마흔에 읽는 니체> 책에 대한 내 블로그 서평에 평소 다른 글들과 다르게 날 선 비판이 가득한 것이 마음에 걸리셨던 거였다. 그 비판이 니체를 향한 것인지, 니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덧입힌 저자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1학기 때부터 독서모임 참여를 권유했고, 이 책을 추천한 자신을 향해 있는 건지 조심스럽게 내게 물으셨다.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3182300568

메시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학생들과는 달리 학교선생님들과는 원만하게 잘 지내지 못하며, 늘 소심하게 나만의 움츠림으로 지내던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셔서, 혼자서라면 하지 못했을 모임에도 참여하고, 독서모임에도 초대를 받고, 그 가운데 성장의 기회와 따뜻한 환대 같은 느낌으로 고마운 마음뿐이었는데도 감사의 마음만 다 전해도 모자랄 것인데, 그분의 그런 조심스러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런 오해를 하게 한 나의 둔감함에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바로 답장을 드렸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에 대해 강력한 옹호와 반론이었으며, 그 비판이나 불편한 마음은 선생님과 전혀 상관이 없고, 선생님께는 그저 고마운 것뿐이라고.


그 일이 있고 나서, 독서모임의 공동 추진자이신 사서 선생님과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릴 때 만나 학교까지 함께 걸었다. 

나처럼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서 선생님도 니체의 책을 처음 볼 때부터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독서모임 과정 중의 오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서 선생님도 혹 비슷한 마음의 부담을 가지신 건 아니었는지 우려하면서..

나라면 자발적으로 선택하지 않을 책, 혹 선택했더라도 끝까지 보지 않았을 책을 덕분에 완독까지 해냈다고. 오히려 내가 가진 본질적인 생각과 신앙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철학의 관점과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하려 애쓸 수 있었고, 어떻게 나의 생각과 가치를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여전히 선생님들의 모임을 부끄러워하는 나는 그 초대에 대한 소중한 느낌을 서면으로 대신 참여하려는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고.


그런데 거기에는 나 자신만 있고 상대방이 충분히 납득할 맥락 있는 설명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하고, 내 입장에서 너무 쉽게 말을 던지는 나 자신의 경솔함에 대해 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난 이렇게 성장할 기회를 가졌지만, 나로 인해 불편한 마음을 가지셨을 선생님께는 너무 미안했다. 나의 성장이라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의 아픔을 가벼이 여길 일은 아닌 것이었다.


정작 당사자 없이 우리끼리 오해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 계속 대화가 이어졌다.


누구보다 책에 대한 열정이 넘치시는 사서 선생님으로부터 자신의 자리가 원하는 책만 골라서 읽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 자신을 돌아보니 난 책을 정말 편식하고 있었다. 내가 마음에 드는 책만 골라서 보고, 읽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든 책에 다 예의를 갖추기에는 내 나이가 충분히 많으며, 내 삶의 남아 있는 나날 동안 보고 싶은 책들만 다 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가차 없이 책을 덮어 버리고 있으니... 

게다가 내가 읽는 모든 책을 다 블로그의 교육노트나 독서노트에 올리지도 않는다. 그 글쓰기도 내 생각에 맞닿아 있을 때에만 발휘가 되는 거였다.


사서 선생님은 일단 아끼는 책을 잘 모아두고, 어떻게든 책을 많이 읽으면 글로 정리하려는 노력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내게 말씀하셨다. 학기 중에 너무 바쁘니까 더 긴 겨울방학을 고대한다고 하시면서.

한 번씩 블로그에서 만나게 되는 선생님의 서평은 긴 시간에서 나오는 생각과 고민의 깊이로 숙연해지기까지 했었다. 

거기에 비하면 나의 독서기록은 얼마 전 포스팅하기도 했던 “보급형 글쓰기” 컨셉처럼 그냥 막 쓰는 것에 불과하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은 전혀 가볍게 느껴지지 않으며, 내면의 깊은 데서 평소 축적되어 있는 것을 그냥 길어 올리는 것 같다는 과분하고, 우아한 칭찬을 해주셨다.


그러고 보니 독서를 많이 해온 것에 비해 내가 블로그에 나의 느낌을 더해서 글을 쓴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전에는 책을 그냥 읽기만 하다가, 소장용 도서는 줄을 치면서 보기만 했고, 어느 때부턴가 마음에 드는 부분을 발췌하거나 요약해서 홈페이지에 올리는 정도로 그쳤다. 그저 인풋에만 집중했었던 거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는 쥐어짜내려는 노력 없이도 그냥 어떤 책 내용에 대해 정리해서 써보고 싶다는 강렬한 느낌이 들면 무작정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쓰다 보면, 그 결론을 처음부터 정한 것이 아니라도 어떻게든 글이 완성된다. 


공적 글쓰기 특징상 처음에는 글을 읽을 분들의 눈치도 봐야 하고, 내 글의 수준이 과연 다른 분들이 굳이 읽으실만한 것인지, 이렇게 공개된 플랫폼에 막 올려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홈페이지 운영 초기에는 영어수업하듯이 강의 위주로 글쓰기를 했었는데, 어느 때부턴가 책을 정리하거나, 일상을 정리하거나, 어떤 생각이든 정리해서 글을 쓸 때는 그런 눈치를 점점 덜 보는 것 같기는 하다. 퇴고하는 과정에서 민감하거나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애써 수정하지만, 나의 수준이 너무 떨어지니 아직은 더 내공을 쌓고, 더 준비되어 글을 올려야겠다는 비장한 생각을 요즘은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글 솜씨가 좋아진 것이 아니라 내가 더 무뎌지고 뻔뻔해지는 느낌이다. 공적 글쓰기 플랫폼에 올리지만, 독자분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 패스할 자유가 있으니, 그렇게 나의 글을 강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이 계속되다 보니 좀 더 용기가 나는 것 같다. 

아직도 공감이나 댓글로 받는 인정으로 내 글쓰기의 가치를 기대어 지속할지에 대한 명분을 얻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떨 때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냥 쓴다.


사서 선생님께 개인적인 수업평가를 그냥 올려버린 얘기도 했다. 여전히 마음에 드는 삶의 하이라이트 같은 사진을 보정해서 올리는 SNS처럼 블로그의 글도 그런 경향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남에게 비춰진 나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하려고 애쓰는 노력 중 하나였다고. 혼자 품고 있다가 터져버리는 것보다 공적 글쓰기 플랫폼의 무대를 빌려서 공개적인 부끄러움을 선택하다 보면 오히려 그 아픔의 실체가 내 안에 있을 때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객관화시키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고.

나의 아픔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성찰할 기회를 가지고, 성장통을 받아들이면서 이왕이면 더 많이 성장하려 애쓰고, 그렇게 치유를 받기도 하며, 때로는 그 불편한 글이 비슷한 아픔을 가진 분들께도 위로를 드릴 수 있다고 믿고 싶다고.


완성된 모습으로서의 글쓰기가 아니라 완성을 지향하기만 할 뿐이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헤매는 연약한 모습, 내 모습 이대로 존중받는 느낌이어서, 글을 쓰면서 위로받고,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로 인해서 힘을 얻고 있다는 일상 속의 감사의 마음을 발굴해 낸 느낌이었다.


짧은 시간의 산책 같은 등굣길에서 난 이렇게 큰마음의 울림과 깨달음을 얻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책 읽기도, 일상의 만남도 모두 대화인 것이며, 자신의 생각만 관철시키려 하지 않는다면, 대화를 통해 내면에 숨겨져 있던 것들의 봉인을 해제하기도 하고, 나의 고집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조금씩 내려놓기도 하고, 때로는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우리는 성장한다. 

책은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읽으며 다가가지만, 이번에 책 추천과 모임에 초대를 받는 등의 기회로 먼저 다가와 준 두 분 선생님께 많은 은혜를 입었다. 

은혜는 부족함과 연약함 그대로 존중하고 수용해 주는 데서 느껴지는 감격이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AI와 맞짱 뜨는 연수를 마치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