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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집중력 - 요한 하리

by 청블리쌤

부제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스마트폰 중독이 심각하다. 이 책은 그 중독에 대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있는 듯하다. 개인의 노력만이 아닌 사회적, 국가적 시스템의 혁신까지도 논한다.


개인이 외로운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희망도 든다. 나 자신만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 인류 모두가 운명공동체로 함께 이 위기에 맞서야 할 것 같은 비장함까지 느껴지니, 오히려 개별적인 노력의 명분과 힘도 얻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과 저자의 인용문 일부를 책의 목차를 따라가면서 정리해 보려 한다.



<너무 빠른 속도, 너무 잦은 멀티태스킹 - 집중력은 한정된 자원이다>


일단 저자는 현 세대의 멀티태스킹의 허상에 대해 논한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며 뇌과학적으로 멀티태스킹은 착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제 많은 이들이 인식하고 있다.


속도와 조급함, 쏟아지는 정보가 우리를 멀티태스킹의 허상으로 내몬다.


그로 인해 깊이를 희생당했고, 집중력과 이해력과 생각하는 여유를 빼앗겼다. 점점 표면적인 것에만 집중한다.


이는 우리나라 사교육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여러 과목을 동시에 선행 진도를 뽑으면서 사고력 향상, 내신 대비, 비교과 준비 등에서 탁월할 것을 강요받는다. 그래서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눈에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며 만족한다.


같은 독서를 하더라도 활자로 보는 것과 화면으로 보는 것은 다르다. 화면읽기는 잡지를 스캔하듯 훑어보기 때문에 단순한 문장만 선호할 수밖에 없다. 깊이와 길이에서 점점 멀어지며, 그러다 보면 짧지만 임팩트 있는 자극적인 글과 영상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 당연해진다.


<잊혀진 몰입의 즐거움>

스마트폰이 득세하기 아주 오래전 칙센트 미하이 교수는 TV와의 경쟁에서 몰입의 황홀함을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더 강력한 괴물과 맞서야 한다. 아니 이미 밸런스는 붕괴되었다. 맞서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해 보일 정도다.


피곤하거나 귀찮을 경우 우리는 가장 에너지가 덜 드는 편한 동작을 선택하다. 예전에는 TV 시청이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눕는 것이다.


조깅을 하려면 현관문만 나서면 되는데 현관까지의 심리적 거리가 너무 멀다.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시작만 하면 몰입의 단계로 올라설 수 있지만, 보통은 그 문턱을 넘지 못한다. 몰입의 수동 스위치를 올리면 이후 자동화된 몰입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임에도...


저자는 미하이 교수의 몰입 상태에 빠져들기 위한 세 가지 단계를 해석하여 이렇게 제시한다.


1) 명확하게 정의된 단일한 목표와 한 번에 하나만 집중한다

2)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한다

3) 능력의 한계에 가깝지만 능력을 벗어나지는 않는 일을 한다. 선택한 목표가 너무 쉬우면 자동조종 모드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멀티태스킹과 완전 다른 방향이며, 본능에 이끌려 쉽게 하는 동작도 아니며, 너무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어느 정도는 challenging 한 일을 해야 몰입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는 일도,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는 것도 단 번에 가능한 미션은 아니다. 그러니 몰입의 과정도 시작한다고 바로 보장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얻어내는 것이다.


나도 퇴근하고 기진맥진하면 읽기, 글쓰기, 자료 탐구 등의 명확한 목표와 의미와 생산성 있는 일의 몰입에 빠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수동이든 자동이든 출발하여 가속이 붙기까지 더 큰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손쉬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드라마나 영화를 감상하는 일이다.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어지면 스마트폰을 가지고 소파에 눕는다.


의지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다. 체력도 필요하며, 루틴 같은 습관도 필요하다.


저자는 집중력이 저하되는 것에 수면과 음식의 질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우리 삶은 다양한 요인이 유기적으로 영향을 준다. 건강한 신체와 마음, 습관... 삶의 준비가 집중력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소설의 수난 시대 - 긴 텍스트를 읽는 능력이 떨어지면 벌어지는 일>

집중력을 회복하기 위해 우린 긴 텍스트를 읽어내야 한다.


저자는 “독서의 붕괴가 어떤 면에서는 집중력 감퇴의 증상이자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집중력이 떨어져서 독서에 집중을 못 하고 그래서 집중력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이다.


저자는 소설 읽기의 장기적 효과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소설을 많이 읽을수록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어냈다는 것이다. 특히 독서는 ‘바깥을 향한 관심과 내면을 향한 관심을 결합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토막 난 파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때는 무언가에 오랜 시간 집중할 때만큼 공감이 나타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짧은 영상, 짧은 글이 집중력뿐 아니라 공감력도 퇴보시키고 있다.



<딴생각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말해주는 것>

저자는 집중한다는 것이 눈앞에 놓인 명확한 한 가지 미션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딴생각을 하는 것은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한다.


저자는 딴생각에 대해 이렇게 주장을 이어간다.


책을 읽을 때 개별 단어와 문장에 집중하지만, 정신의 일부는 언제나 배회하며 단어가 자신의 삶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이해되는 방식으로 책을 읽는다고 말한다.


독서뿐 아니라 삶에서도 딴생각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딴생각을 할 때 서로 다른 것들을 새로 연결하기 시작하며 문제의 해결책이 떠오르기도 한다.


딴생각 중 우리의 정신은 ”머릿속 시간 여행“을 떠나 과거를 더듬고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딴생각은 오히려 반드시 필요한 형태의 집중이다.


<우리를 추적하고 조종하는 테크 기업들 - 집중력 파괴는 그들의 사업 모델이다>


저자는 집중력을 파괴하는 것은 테크 기업들이라고 명확하게 주장한다. 심지어 집중력 파괴가 그들의 사업 모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중독되는 것은 스마트폰 기계가 아니라 앱과 인터넷이며 그것으로 구현되는 소셜미디어다. 소셜미디어 기업은 분열을 조장하고 일부러 집중력을 파괴해야 한다. 광고 수익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머무르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한 스크롤은 다음 페이지를 볼 것인지 주도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자동 박탈하며 편리함이라는 명분으로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를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알고리즘의 일관된 핵심 원칙은 소셜미디어는 우리가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게 만들 정보를 준다는 것이다. 그래야 광고 수익이 늘어나니까. 알고리즘은 집중을 방해하도록 설계된다.


또 다른 예로 알고리즘은 중립적이며 우리가 계속 스크롤을 내릴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지만 인간은 긍정적이고 잔잔한 것보다 부정적이고 충격적인 것을 더 오래 바라본다. 분노를 많이 일으킬수록 참여도도 높아진다. 많은 사람이 많은 시간을 분노하는 데 쓰면 문화가 바뀌기 시작한다. 이러한 현상은 ’증오를 습관화‘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본 후 “어디에서 시작하든 말도 안 되는 것에서 끝이 난다.”고 어느 전문가가 말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가짜뉴스와 대중 선동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인류의 집단적 퇴화와 기계의 진화 시대에 우리는 합리성과 지성, 집중력을 갈수록 잃어가고 있다.


분열과 집중력을 감퇴하는 만큼 소셜미디어 기업의 수익은 극대화된다.


페이스북 제작자들은 처음부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시간과 주의력을 가능한 한 많이 소비할 수 있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이들의 기술은 인간 심리의 취약한 부분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해커의 속성에 더 어울린다.


아이폰을 공동 개발한 토니 파델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세상에 뭘 내보낸 거지? 사람들의 뇌를 날려버리고 재설정할 수 있는 핵폭탄 생산에 일조한 것은 아닐지...”


<근본적인 해결책>

저자는 사회시스템적인 해결 방안을 촉구한다.


소셜미디어를 유료화하거나 국가가 인수하면 광고 수익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니, 근본적으로 사용자들의 행복을 위한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다.


그리고 적절한 재정적 유인책이 마련되면 우리의 집중력과 사회를 망가뜨리는 대신 회복시킬 수 있도록 주요 소셜미디어 사이트를 재설계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하루에 한 번만 푸시 알람 설정하고, 좋아요와 댓글 요약정보를 신문처럼 하루에 한 번만 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무한 스크롤은 뇌가 관여해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먼저 우리의 충동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소셜미디어그룹은 무한 스크롤을 그냥 꺼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화면 맨 밑에서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릴 것인지 의식적으로 결정해야 하니까 인간의 주도성은 다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의 추천 엔진이 사람들을 급진화한다는 증거가 있으며 그 기능을 즉시 없앨 수 있다고 한다 .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에서 가능하지 않은 일일 것 같다. 마약중독 같은 심각성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시스템적인 문제라기보다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을 위한 이 기술이 수퍼컴이라는 괴물을 만들었고, 수퍼컴은 우리의 모든 취약점을 파악할 방법을 찾게 될 것이므로,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느끼겠지만 사실은 주체성과 자유 의지가 직격탄을 맞게 될 거라고 경고한다.


<스트레스와 만성적인 각성 상태 - 방해 요소에 저항하는 능력이 현격하게 낮아진 이유>

이후 저자는 집중력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사실 소셜미디어가 집중력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집중력이 회복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소셜미디어로 시선을 돌리지 않을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니까.


그러면서 스트레스 해결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룬다. 평상시 주의를 기울일 수 있으려면 반드시 안전하다고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과로를 피하기 위해 주 4일 근무, 업무 휴가 분리 연결되지 않을 권리도 주장한다.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감금된 아이들 - 아이들은 놀고, 배회하고, 질문하고, 유능해진다>

그리고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감금된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전한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서 빼앗아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거나 흥미로운 일을 하면서 집중하는 법을 배우는데, 요즘 아이들은 성인의 지시에 따라 살기 때문에 행복도 집중력도 박탈당하는 것이라는 논리다.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집 밖 안전 문제 등을 걱정해서 아이들이 마음껏 노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는 안타까운 마음도 전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학원을 보낸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어울려 놀 시간이 없다.


놀이는 뇌 발달의 유의미한 영향을 주고, 사회성과 공감과 회복탄력성에도 영향을 준다는 주장도 있었다.



<에필로그>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집중력의 세 가지 층의 형태에 대해 인용한다.


1) 스포트라이트(spotlight) – 즉각적인 행동에 집중


2) 스타라이트(starlight) – 장기적인 목표, 시간이 드는 프로젝트


3) 데이라이트(daylight) – 장기적 목표가 무엇인지 파악하게 해주는 집중(주변 상황 명료하게 살핌)


이중 데이라이트 상실이 가장 심각한 형태의 산만함이며 분열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도 인식도 못 하면, 하찮은 목표에 집착하거나 디지털의 단순한 신호에 의존하게 되고 산만하고 마비된 상태로 해킹당한 것처럼 살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디지털 디톡스의 체험과 다양한 리서치를 통해 우리에게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재미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꾹꾹 눌러 담아 제시한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며, 문제에 대한 인식은 곧 해결의 의지와 희망이 되기 때문에, 당장 균형 잡힌 삶이나 집중력인 회복된 처방을 받아들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인식만으로 우리의 삶은 좋아지기 시작할 것이다.


동일한 고민을 품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큰딸에게 책을 선물하니, 자신과 상관없는 제목의 오류를 지적하며 웃었다. 자신은 집중력을 가진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도둑을 맞냐고ㅋㅋ

딸이 예전에 마음에 들어했던 책제목은 <게으르다는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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