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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말 한마디의 영향력

by 청블리쌤

10년 이상 연락을 하고 만남을 지속하는 오랜 인연의 제자들을 최근에 차례로 만났다.

한 제자가 불쑥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고등학교 때 왜 선생님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었냐고? 따지듯이 물은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도 지금도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문이었다.


내가 담임으로 만났던 그 제자는 고1 때 다소 쎈 학생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선생님을 실망시켜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고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던 계기가 있었다는 걸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내게 털어놓았다.


복도를 지나가다가 내가 다른 쌤께 자신에 대한 뒷담화(?)를 우연히 들었다는 것이었다.


“**이는 원래 그런 애가 아니에요. 일시적인 상황의 영향으로 잠시 방황하고 있을 뿐이니, 곧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거예요.”


그 당시 학교 선생님들은 자신을 좋게 안 보고 있었는데, 도대체 자신에게서 뭘 보았길래 그렇게 믿어주셨던 거냐고...


실제로 고1 때 어느 시점부터 제자의 어두운 표정은 서서히 밝아졌다. 이후에도 힘든 굴곡이 있었지만 내게 기대면서 의지를 다졌고, 대학을 진학하고 자리를 잡고 나서도 한결같이 내게 연락을 하고 있다.


다른 제자는 취업 준비할 때 내가 했던 말을 가슴속에 품고 있다고 말했다.


"너의 모습 그대로..."​


좀 더 애써서 더 좋은 모습으로 취업과 면접을 준비하라는 격려를 주로 듣다가, 자신의 소중한 가치와 충분히 애쓰고 있다는 노력을 인정해 주는 말이어서 감동과 오히려 더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최근에 어렵고 힘든 일을 겪으며 나를 찾았다.


제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자와 함께 아파했고 용기있는 결단에 응원의 진심을 전했다.​


제자는 나의 존재가 어떤 상황에서도 비판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받아주고, 공감해 주면서 한결같이 응원받을 수 있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며 고마워했다.



난 제자들에게 했던 말을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영향력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해주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어떤 제자는 겨울방학 보충수업 때 교복 안 입고 등교했다고 한 시간 이상 바깥에서 벌을 서다가 들어와서 내게 불평했었는데, 다 들어주고 나서 “추웠겠구나”라는,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던진 한마디 말을 2년간 감동으로 간직하고 있다가 내게 어떻게 그런 멘트가 나올 수 있었냐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건 아마도 그냥 온전한 내 생각을 바로 다 말로 하지 않고 어떤 마음일지 조금이나마 헤아리려는 "잠시 멈춤" 때문이었을 것 같다.


공감의 시작은 "pause"일 것이니.


때론 내 말이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감동으로 남을 수 있겠지만 모두 다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닐 것이다.


혹 감동의 요인이 있다면 학생들의 절실한 마음과 따뜻함과 사랑의 마음이 내가 잠시 머뭇거리는 순간에 나의 말에 투영되는 것일 테니...


그래서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다.


어떤 제자는 교사로서의 자신의 영향력이 미미한 것 같다는 고민을 털어놓아서 이렇게 답해 주었다.


영향력을 확인하려면 일단 학생들 중에 교사의 열정과 애씀을 이해해야 하고, 그걸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정말 운이 좋아야 그런 제자를, 그러니까 너 같은 제자를 만나게 되는 거라고.


눈에 보이지 않고,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교사로서의 역할을 제한하고, 영향력에 대해 소심해질 필요는 전혀 없다고... 지금도 분명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을 것이니,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라고...



시한부 기간이라도 자신의 학생에 대한 교사됨은 충분히 노력 이상의 보상을 늘 받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어지는 인연은 덤으로 주어지는 기적 같은 축복이다.


물론 교사가 진심을 다할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행운이지만, 그런 교감과 인연의 주도권을 지닌 것은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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