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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부조화, 꿈과 현실의 거리

by 청블리쌤

속상하게도 정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

물론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고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학생 본인의 책임이겠지만, 그럴 기회를 주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도 작지 않다.

어른들은 현실이라는 명분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의 싹을 잘라버리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큰딸의 실용음악 전공과 둘째 딸의 실용댄스 전공을 조건 없이 지지해 주지 못했다.

좋아하는 건 취미의 영역이고, 잘하는 것을 해서 번 돈으로 좋아하는 취미를 누리면 된다는 진부한 논리를 내세우면서.



학생들은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욕심은 명확하다. 이 또한 자신의 욕심인지 어른들로부터 주입된 욕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한 칸이라도 더 높은 라인의 명문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런데 꿈과 현실 사이에는 분명히 괴리가 존재한다.

의대 갈 성적이 되는 학생들조차 메이저 의대에 대한 욕심을 더 내기도 한다.



여기서 인지부조화가 발생한다. 때로는 현실에 무지해서 인지부조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저학년 때는 스카이 대학은 마음먹고 하면 누구나 다 갈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명문대 진학이 어렵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짐작하더라도 저학년 때는 자신의 미래 성적을 과대평가하는 경향도 있다. 노력하는 족족 성적이 무조건 오를 거라는 환상에 기인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고3이 되어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인지부조화는 절정에 달한다.

인지부조화를 오래도록 견디기는 힘들다.

인지부조화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 중 하나다.

꿈을 낮추거나 자신의 실력을 높이는 것.

쉬운 해결책은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욕심이 자신만의 것이 아닐 때는 얘기가 복잡해진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려는데 익숙한 아이들은 그 욕심조차 함부로 내려놓을 수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프다. 마음이 아프고, 정말 간절히 아프길 원하면 꾀병이 아니라 진짜 몸이 아프다.

욕심을 의식적으로 내려놓지 않아도 아무것도 안 하면 꿈은 어느샌가 현실에 맞닿아 있다. 그냥 도망가는 것은 스스로도 용납이 안 되니 아이들은 합리화할 명분을 찾는다. 대표적인 것이 고3이 되어 공부하면 된다고 믿으며 현실을 회피하거나, 정시파이터를 선언하는 방법이다.



얼마 전 영어과 출장에 가서 존경하는 선배님들을 뵈었다.

미국과 일본의 교육현장을 다녀오신 교장, 교감쌤들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일본은 자기 고등학교의 지역 내 등수에 대해 질투나 시기를 느끼지 않고 순응하듯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미국의 경우 남들이 비싼 비용을 들여서 사립학교 가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어차피 자신이 그곳에 가도 공부를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인정하며, 공부를 다 잘할 수 없다는 현실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아마 공부도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다양한 영역 중 하나라는 인정과 다른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가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그러나 우리나라는 성적에 따른 서열이 학생들의 정체성이 되었고 성적을 올리는 것이 모든 학생들의 절대명령이 되어 "노오력 신화"를 강조하고 모두가 하나의 기준만으로 가치판단을 하는 문화인 것 같다고.

그런데 그게 우리나라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고.

우스갯소리로 남들이 명품을 들고 다니면 짝퉁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될 거라는 욕망으로, 관련 산업이나 디자인이 발전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그러니까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성장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얘기였다.

노력한 만큼 성장하는 것은 맞지만 모두의 성장 폭이나 속도가 동일할 수는 없는데, 모두가 학원을 다니는 노력과 경제적 투자로 동일한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기대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에 사교육 시장의 확장을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그런 특성은 적어도 모두에게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자의 출발점과 성장 속도가 존중되지 않으며, 진정한 자아실현보다 표준화된 것 같은 삶의 가치와 수준을 강요당하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



교감쌤은 초등학교 때 공부와 직업전선이 나뉘는 일부 선진국의 교육시스템에 비해 우리나라는 늦게라도 학문분야에 대한 역량을 찾고 발휘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장점을 찾기도 했다.



아이들의 꿈과 현실, 그리고 그 괴리에 따른 인지부조화로 인해 고통받는 학생들을 현장에서 만나는 교사의 입장에서... 단순하게 해결에 이르는 방향을 찾을 수 없는 그 현실의 벽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난 늘 희망을 외친다. 지금 당장의 실패나 실수가 좌절이나 한계로 규정되지 않고, 개별화된 위로와 격려에 더불어 사소하고 작은 성취와 성장에 의미를 부여하며 각자에게 맞는 옷을 입는 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렇게 배움과 성장의 즐거움을 학생 각자가 몸과 마음에 새길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그게 행복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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