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졸업, 학생들을 떠나 보내며

by 청블리쌤

졸업식 전 날 영어수업시간에 우리반에서 잔소리 같은 마지막 인사를 담아 전달했고, 졸업식 당일에는 졸업장만 전달하고 아무 말 없이 강당의 졸업식 무대로 아이들을 떠나보냈다.

아이들이 학년 초에 작성했던 1년 후의 자신에게 쓰는 꿈 타임캡슐 편지를 졸업장에 끼워두어 1년 전의 자신과 만날 기회를 주었을 뿐.


졸업식은 상징적인 관문과 같은 비유다. 아이들에게 주어질 새로운 무대와 같을 것이다. 그런 벅찬 생각 끝에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다.

졸업식이 시작되기 직전 아이들에게 문자로 종례와 같은 편지를 보냈다...


무심한 듯 작별인사를 건넸지만 마음속에 아쉬움과 때 이른 그리움이 가득하네요. 함께 있는 동안 다 이루지 못한 교육적 성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내림이었을 거라고 믿으며 희망의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떠나보냅니다. 눈부시게 성장할 여러분들의 변화를 향한 변함없는 응원의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기억하겠습니다. 안녕~~


졸업식날 울지 않으려고 애쓰며, 넘치는 슬픔과 감정을 졸업식 훨씬 전부터 눈물로 무디게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눈물없이는 떠나보낼 수 없었고, 간신히 절제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인쇄해서 주었던 예전과 비교하면...너무도 건조한 작별이었다.

나의 마음이 나이와 함께 무뎌진 것인지, 중학교 졸업식의 특수함이어서인지... 중 3때 너무 행복했던 학교를 떠나기 싫어서 오열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렇게 학교를 떠나기 싫어서 교사가 되어서라도 여전히 학교를 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ㅠㅠ


어쩌면 이번에는 나의 사랑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르겠고, 이번의 담임과 교과교사로서는 자책과 아쉬움이 너무 컸던 탓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늘 좋았던 시절과 뿌듯했던 교육성과에 대한 성취의 경험과 비교하게 되니, 상대평가 하듯 이번의 성과에 대해서는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

분명 좋은 만남이었고, 내게서 좋은 영향을 받은 학생들도 있었음에도 실패라고 규정하는 자세는 나의 자만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학생 탓을 하면서 오히려 부족한 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각자의 출발점과 속도에 맞는 개별적인 성장을 부르짖으면서 그 가르침과는 다르게 나 혼자만의 조급함과 아집에 갇혀 있는 건 아니었을지...

졸업식 때 일부러 찾아오셔서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시는 학부모님들도 계셨고, 몇몇 학생들은 편지와 선물을 전해주기도 하였다.

이번 교육성과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듯 역대급으로 가장 적은 숫자의 편지이긴 했지만, 그것으로 한 해 동안 나의 교육활동이 의미가 없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학생들과 멀어진다는 것은 학생들이 유지하려는 객관적인 거리보다, 거리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먼저 다가가다가 받을 상처에대한 두려움이 그 실체일 것 같다. 그러면 다행이다. 나의 노력으로 개선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으니.


학생들의 편지 중에서 이런 학생들의 편지문구가 주저 앉아 있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선생님의 존재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됐어요. 서툴고 부족한 저에게 항상 아낌없는 칭찬과 조언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소한 걸로 자꾸 찾아가서 죄송해요. 그래도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항상 이야기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학생들을 빛내주시는 선생님, 오늘만큼은 모두가 행복하고 빛났으면 좋겠어요.


선생님께 영어도 배우고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도 배우고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 가르침들을 꼭 기억해서 고등학교 가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금껏 만난 선생님들 중에서 가장 학생들을 아낀다는 느낌이 1년 동안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교직생활 행복하게 하시고 많은 학생들에게 저처럼 큰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뜬구름 잡는 소리 안 하시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시는 16년 인생 유일무이한 선생님이셨습니다.


3학년 처음부터 선생님 말씀 듣고 열심히 해볼걸 하는 후회가 드네요. 1년 동안 감사했습니다.


영어멘토링 하면서 영어랑 많이 친해진 것 같아요. 처음으로 스스로 공부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학원의 강제성이 아닌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리고 고민이 있을 때나 질문을 하곤 하면 정말 정성을 다해서 답해주셔서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선생님과 가까이 지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제 기억속엔 선생님의 존경스러운 모습만 가득해요.

오래 오래 기억될 좋은 선생님, 청블리쌤.. 너무 너무 감사했습니다. 앞으로의 선생님의 교사생활을 응원합니다...


편지를 다시 훑어보면서 정리하는데 봉인되었던 눈물이 울컥 쏟아지려 했다. 나의 교육활동을 모두가 따르지 않는다는 나의 찡찡거림이 혹 내가 학생들에게 진심을 다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면, 정말 미안하고 통탄할 일이다.

나야말로 성과에 대한 조급함을 내려놓고, 나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아도, 배척당하는 느낌이 들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킬 일이다.


고등학교에서는 나를 대놓고 필요로 하는 학생들의 눈빛을 감당하고 그들이 내민 손을 잡아주기만 해도 내 한계를 넘어서는 나의 역량과 정성을 다할 기회가 충분했는데, 중학교에 와서도 여전히 난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빗대어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적어도 중학생들은 마지막에 인용한 편지의 주인공처럼 정말 자신들이 필요해서, 절실해서 내게 먼저 손을 내밀 일이 흔하지 않을 것이니까.

억지로라도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했더니 고등학교 가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행복하게 적응하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려한다. 물론 그럴 경우 나의 존재감은 없을 것이다. 너무 순탄하게 흘러가면 그게 당연할 줄 알고 지나갈 것이니... 그런데 그게 교사의 역할이어야 할 것이다.


졸업 후 내가 추가로 가지게 된 걱정은... 내가 쏟아낸 잔소리를 온몸으로 막아서며 버텼던 아이들이 고등학교 가서 내 잔소리의 의미를 그제서야 이해하며 후회를 쏟아낼까 하는 것이다. 물론 잔소리 끝에 그런 깨달음의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하면 다음 대안과 희망이 있다는 잔소리를 늘 추가하기는 했으니 다시 힘을 낼 거라는 희망을 여전히 품고 있지만...


그러니 나의 소망은 졸업 후 아이들이 나의 존재감을 지우고, 나의 영향력도 다 인식하지 못한 채 행복걸음으로 꿈을 향한 도전을 즐거운 성장을 이뤄가며 멈추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 편지의 학생도 편지에도 그런 첨부된 나의 잔소리를 기억하는 듯한 글이 있었다.

"고등학교 가서 어떨 땐 시험을 못쳤더라도, 뒤쳐지는 것 같아도, 포기하지 않고! 나의 발전 가능성을 믿고! 다시 열심히 공부하는 멋진 학생이 되겠습니다!"

제자의 이런 다짐의 출처나 영향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교사는 자신의 티칭과 코칭 등에 저작권을 주장하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확인되지 않아도 자기주도학습과 독립을 이뤄가는데 미력이나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는 확신과 감사와 소망을 품는 존재일 뿐이다.


설령 나의 영향력이 소수의 학생들에게만 미치더라도, 단 한 명의 삶에라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다면...

그저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어떤 해의 영향력이 더 컸는지 확인 여부와 관계없이 난 그저 행복한 교사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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