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이미 지식의 축적과 체계화, 즉각적인 활용에서 인간의 역량을 넘어섰고, 지식 전달에서까지 인간을 넘어선다면 교사의 무용론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인간 교사의 경쟁력을 여전히 낙관하고 있는 이유는 인간 대 인간의 교감이 지식 전달의 효율성을 능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교사가 지식 전달에만 초점을 맞추고 인간으로서의 교감을 포기한다면 곧 AI에 대체될 것이다.
AI는 교감을 이루며 진행되는 인간의 교육의 코파일럿의 역할이 부여되어 마땅하다. 어떤 직업이든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하지 못하는 인간을 대체할 것이니 교사들은 AI를 대적할 것이 아니라 일종의 협업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인간 교사로서 그리고 공교육교사로서의 경쟁력은 멘탈코칭과 학습코칭이라고 확신한다. 교실 밖으로 확장되는 학생들의 역량을 시공간을 초월해서 코칭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은 배움의 장이며, 교사는 원리와 이해 중심의 핵심 사항을 제시하여 기본기를 탄탄하게 갖추도록 해준 이후에는 교실 밖에서 학생들의 자기주도학습이 일어나도록 도와야 한다.
교사에게 과부하가 걸릴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초반에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자동화되는 루틴으로 이끌기만 하면 교사의 역할이 최소화되면서 학생들이 주도성을 발휘하며 그냥 자연스럽게 굴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일단 학생들과의 교감이 우선이다. 학생들과 친해져야 한다. 내가 나이가 계속 들어감에도 담임교사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담임교사를 하면 자신의 반뿐 아니라 학년 전체의 교감과 친밀함의 크기가 교과 담당교사보다 보통은 더 크다. 물론 담임이라는 자리가 개별 교사의 노력을 면제하지는 않으니 친해지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큰 도전이 된다.
그리고 유쾌한 강제성의 요인을 고민해야 한다. 학생들 자신의 자기효능감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작의 선택도 학생들이 하고 그만두거나 지속하는 선택도 계속 보장한다. 물론 경고 누적으로 탈락될 수 있음도 분명히 하고는 있지만, 무료로 진행되는 과정이니 선택에 강제성이 없다. 그래서 학생들의 지속적인 참여가 더 의미가 있다.
강제성은 학생들의 수준과 속도를 무시할 때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 출발점을 존중하고, 느린 속도조차 격려해 주면, 학생들은 소소한 성취에 젖어들기 시작한다. 존중하며 응원해 줄 뿐 결국 시작해서 지속하기로 하는 것은 학생 자신이기 때문에 강제로 숙제 분량을 채워야 하는 것과는 다르다. 물론 멘토링 과정에서 최소한의 단어학습 분량은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노력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면 다소 낮은 단어시험점수도 비판이 아니라 노력에 대한 칭찬과 격려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학생들은 그저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고 그저 할 수 있는 만큼만 애쓰면 된다.
유쾌함이 끼어드는 지점은 학생들의 자발성이 개입될 때이다.
유쾌함만으로는 그리고 본능에 충실한 방임으로는 습관형성이나 지속적인 참여를 끌어내기 어렵다. 학생들이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행동의 구속력을 부여하는 어느 정도의 강제성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강제성은 일률적이지 않다는 것이 중요하며, 학생들의 자발성이 끼어들 여지가 있을 때 유쾌함의 속성을 부여받는 것이다.
그러니 학생 수준에 맞는 시작점을 알려주지만 절대 강요하지는 않으면서 스스로 공부를 이어갈 수 있는 습관형성의 플랫폼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잠시 헤매더라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돌아올 기지 같은 느낌인 것이다.
거기다 교사의 관심과 격려가 유쾌함의 요인이 될 수 있다.
학생들과 교감이 형성되고 멘토링을 기획하고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거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오프라인 대면으로 주 1회 학생들이 매일 학습한 단어와 독해를 점검을 했다. 그 거점 같은 곳은 교무실의 내 자리였다.
그 자리에 일주일 분량의 단어시험지가 정해진 요일에 놓여 있었고, 따로 마련한 빈 책상 위에 학생들이 자신이 일주일간 공부한 독해집을 점검받으려 올려놓았다.
약속된 시간이 되면 학생들의 몸과 마음이 향하는 그곳이 플랫폼이었다.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장소였다. 그러나 학생들의 학습이 이뤄지는 곳은 각자의 공간이었다.
약속을 지키려는 학생들이 단어시험지를 가져가면서 독해집을 빈 책상 위에 쌓아두면 마치 나의 키에 도전이라도 하듯이 책들이 높이를 더해갔다.
그리고 학생들의 단어 점수와 점검 결과를 기록하는 장판지 같은 기록지도 플랫폼을 구성 요인이었다.
그 기록지를 살펴보며 비어있는 곳을 나의 관심으로 메워서 지나가면서 만나는 그 빈 곳의 주인공인 학생에게 따뜻한 관심의 말을 던져주곤 했다. 보통 100명 정도에 해당되는 멘토링 학생 중 한 명이며, 전교생 500명 중의 한 명임에도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알아주고, 점검결과까지 기억해 주고 있다면 거기서 귀찮음이 아닌 약간의 감동이라도 받는 아이들은 자신의 열정과 노력으로 이후의 기록지 빈칸을 치열하게 채워갔다.
학생들과의 교감과 친밀함의 중요성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적어도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주고받으며 거래하는 비즈니스 관계는 아닌 것이니, 한쪽의 일방적인 손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 일방적인 손실은 멘토인 나의 몫이었다.
교감을 이루면 좋은 점이자 안 좋은 점의 양면성은 학생들의 성과와 실패에 따라 번갈아 나타난다. 마치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은 상대방으로 인해 상처받는 느낌까지도 든다. 거기다 응원하는 만큼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 같은 상실감을 학생과 함께 느끼기 때문에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학습코칭을 하는 사람은 멘탈코칭도 겸해야 한다. 그리고 감정노동은 필수다.
이런 신뢰와 친밀함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의지를 점검하고 다시 시작할 용기도 얻게 된다.
코로나로 학교조차 가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 눈에 보이는 거점은 확보될 수 없었다. 등교조차 하지 않는데 멘토링 거점 확보는 사치에 가까운 허상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14년째 멘토링을 해왔으니 이제 안식년처럼 쉴 때도 되었다고 포기할 법도 했지만, 영어멘토링 학습코칭에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난 방법을 찾았다.
그 문을 열어준 것은 에듀테크였다.
그 거점을 온라인상으로 옮기면 되는 거였다. 그러면 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소통까지 하면서 멘토링을 시작할 수 있을 터였다. 어차피 학습은 학생들 각자의 공간에서 하는 것이니 멘토링 거점은 온라인이라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학생들을 온라인상에서 점검할 수 있을까?
일단 공지사항을 올려 두어 학생들이 수시로 확인하고, 단어시험과 학습진도를 점검할 링크도 정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했다.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던 구글클래스룸이 최적의 플랫폼일 것 같았다.
이왕 온라인으로 점검을 진행한다면 전체 학생의 점검 결과가 한 시트에 자동으로 정리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구글드라이브의 구글설문지를 활용하면 될 것이니 그 기능을 연계하는 편리함도 있을 것 같았다.
구글클래스룸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습코칭보다 온라인학습에 최적화된 플랫폼이었다.
1인 1기기, 혹은 4인 1기기 등의 환경에서 협업을 통한 실시간 수업 진행도 가능하게 해주는 기능까지 갖추었다.
그렇게 시공간을 초월한 영어멘토링학습코칭 기획이 설렘으로 시작되었다.
실제 기술적인 에듀테크 영어멘토링 진행 방식은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