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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Feb 25. 2024

부모가 오히려 아이를 힘들게 할 수도 있음을

부모는 의도하지 않게 자녀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나 아이를 해치려는 의도가 아닌 사랑과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아이는 그 상처를 통해서도 성장한다고 믿고 싶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부모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 그 상처가 더 커지지 않기를, 견디지 못할 범위를 벗어나지 않기를 의식하며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할 숙명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아이에게 폭언을 하지 않아도 응원 같은 부모의 기대조차 때로는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부모님의 과도한 기대에 따른 삶의 체험으로 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확신했었고, 강의할 때마다 강조하고 다녀서, 난 적어도 그렇게 우리 집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제 작은 딸이 내게 이랬다.

아빠가 수능 망해서 가게 된 대학교라고 말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그러면 좋은 대학에 가는 느낌이 아닌 것 같아서...

 

이 정도면 대학 잘 가는 거라고, 고1, 2학년 때 성적에 비해서도 올랐고, 그전 해 망쳤던 수능보다는 올랐으니까... 그리고 너가 가려는 대학도 많은 학생들에게는 꿈의 대학일 수도 있는 곳이라고...

그렇게 말해주었어야 했는데, 이렇게 얘기하면 결과로 아이의 능력을 제한하는 말처럼 들릴 것 같아, 그렇게 상처가 될 것 같아서 차마 하지 못했다.

 

그런데 실은 내가 아이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컸다는 것을 보여주는 화법이었던 것이다. 물론 아이에게 실망했던 것도 아니었고, 힘겨운 과정이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 온 노력에 칭찬을 해주고 싶었던 의도였고, 아이의 아픔을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그 결과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그 이상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데...

아이가 수능 직후 겪었던 “과정만 좋으면 뭐 하나, 결과로 증명하지 못했는데”라는 속상함을.. 그 아픔을 덜어주는 말이라고만 믿고 있었는데... 

그런데 행여 그랬더라도 이제 마음잡고 현실을 인정하고 그 대학에 가서 잘해보려는 아이에게 오히려 아물어가는 상처를 더 후벼 파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라는 뒤늦은 자각에 너무 괴로웠다.

 

그러고 보니 내가 모의고사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놓고도, 재수할 때 아이의 모의고사 성적이 연고대 성적이 나오고, 서울대 가려면 제2외국어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자고 했던 걸 보면, 덤덤한 아이에게 바람을 불어넣었던 것도 나였다.

 

딸 소식을 궁금해하던 분들에게 학교 얘기를 하면 공부 잘했네.. 잘 되었네.. 라는 축하를 압도적으로 많이 들었는데, 난 여전히 이보다 훨씬 더 잘했고, 더 잘 갈 수 있었다는 아이의 속상함을 헤아리려 했던 이면에 부모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컸던 건 아니었는지 돌아보았다.

 

딸이 재수 초반에는 독서실을 다니다가, 수능 3달 남겨놓고 독학재수학원에 보내달라고 했었다. 수업을 따로 듣지는 않지만, 아침 등원, 밤 하원 등의 시간관리를 철저하게 해주고, 휴대폰 관리도 해주는 용도만으로 원래 독서실보다 3.5배의 비용이 더 드는 것이 완벽하게 납득되지는 않았지만 막판의 규칙적인 아침 등원과 시간관리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허락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걸 너무 힘겨워했으면서도 스스로 몸을 일으켜 자신의 의지만으로 몇 달 동안을 감당하느라 힘들고 지쳤을 것 같아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도 그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독학재수학원을 수능 직전까지 다녔다. 

오히려 경제적인 걸 생각하지 말고 초반부터 거길 보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는데... 딸은 훨씬 관리가 철저한 독학재수학원에 처음부터 갔다면 대학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아팠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부모의 미안한 마음을 헤아린 대답이었을 것이다. 

재수 초반에 기숙학원 얘기를 꺼냈다가 비용을 알아보고는 생활이 곤란한 정도의 수준이라서 안 되겠다고 하니, 딸은 어차피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그것도 부모의 마음이 편하라고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독학재수학원에서 다음 해 입시설명회 안내 문자가, 보호자로 등록된 내게 왔다. 이제 이런 거 보내지 말라고 얘기하는 대신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25년 대비 입시콘서트 문자 받고 연락드립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제 딸이 재수 막판에 힘든 시기를 덕분에 잘 극복하고, 정시로 **대 장학생, **대, **대 모두 합격하고 이제 대학생이 됩니다

등원하지 못할 때 문자와 전화도, 등원해서는 선생님들의 관심과 격려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평소보다 너무 못 나왔고, 더 잘 갈 수 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실제로 아이와 연락되지 않을 때 내게 전화도 문자도 여러 번 왔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답변이 왔다.

**학생 학부모님 ^^ 따스한 문자와 함께 좋은 소식 들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한 해 동안 **학생과 더불어 학부모님도 너무 고생 많으셨고 다시 한번 축하 말씀 전해드립니다. 저희 합격증 이벤트도 진행중인데 합격증 모두 보내주시면 센터에서 참여해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너무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그저 이것저것 따지지도 말고 축하를 해주었어야 했다. 오히려 그곳에서 내가 해줘야 할 마음의 축하를 딸에게 보내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더 고마운 마음에 이렇게 답장을 해드렸다.

 

욕심이 앞서서 며칠 너무 무리하다가 며칠 등원 못하고 계속 자고, 그러면 더 조급해져서 더 무리하면서 또 등원 못하고... 저도 현직교사라서 학생이 지각하고, 결석할 때 얼마나 신경이 쓰이고 속상한 일인 줄 잘 아니까, 보내주시는 문자와 전화에 대해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곳에서는 학생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감동이 되었구요. 재수 시작할 때 관리형 독서실을 다니다가, 혼자만의 의지로 감당하기 너무 지쳐 그곳을 찾았는데, 지각할까 봐 택시도 타고 가고 애쓰는 모습에 그곳에서는 성적 향상 이상의 교육임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 많은 학생을 관리하시면서도 아이 이름을 기억해 주시고 관심 가져 주신 것도 감동이었구요. 소속 없는 재수생에게 그 자체로도 담임교사같은 큰 힘이었다고 믿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은 간단했다.

너무 축하드리고 감사합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딸이 아픔을 스스로 딛고 일어서는 걸 지켜보며, 마음을 잡을 때 진심으로 축하받고 축하해 주면 될 일이었다. 물론 합격발표가 날 때 축하해 주었고, 애썼다고 토닥거려주긴 했지만, 딸의 아쉬움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눈치를 보긴 했었을 것이다.

처음 기대와 목표가 어떻든 정말 좋은 대학이니 딴 생각하지말고 즐겁고 재미있게 잘 다니라고 했어야 했다ㅠㅠ 대학다니다가 수능 한 번 더 쳐도 된다는 부담대신...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3357149244

그리고 얼마전 딸에 대한 포스팅에대해 딸에게는 블로그에 대학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실망감이나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딸이 자세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였으니 오해하지 말라고 했다.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아빠의 유일한 바람은 그저 행복하게 성장하며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딸도 이해할 것이다. 아직도 주변의 사소한 자극을 만날 때 아픈 상처가 다시 떠오르듯 힘들어하고 있지만, 이제까지 잘 해왔던 것처럼 스스로 극복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 

 

딸은 고2, 고3 때 내게 많이 기댔다. 아빠의 잔소리를 자처해서 듣고 아빠의 확신에 찬 응원과 격려를 듣고 싶어했다. 본인도 이렇게 공부해도 될지 확신이 늘 흔들렸기 때문에 아빠의 코칭이 절실하게 필요했다고 했다.

그러나 재수할 때는 아빠의 잔소리가 바닥난 것이 아니라... 아빠의 코칭이 가닿기 전에 자기주도적으로 스스로 잘 해갔다. 힘든 구간들이 많았음에도 혼자서 묵묵히 이겨냈다.

난 맛있는 걸 준비해 주는 실물적인 도움만 주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딸은 자립을 이미 이뤄갔다. 함께 집에서 지내고는 있지만, 이미 독립을 해가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준비된 그 길을 스스로 걸어가면 되는 일만 남은 거다.

 

교사나 부모나 점점 필요로 하지 않는 그 순간을 위해 애쓰는 존재라는 숙명을 지닌 존재다. 부모와 교사의 아쉬움과 그리움의 크기는 자립하는 아이에 대한 독립의 확증이다.

둘째 딸마저 서울로 떠나서 남겨진 부모인 나는... 의도적으로 함께 지내던 시간을 억지로 재현하려 하지 않고, 다정한 무관심이라는 믿음의 모습으로... 언제든 필요하여 손을 내밀 때 잡아주는 비상키트 같은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 오히려 손을 내밀지 않으면 혼자서 잘 하고 있다고 안도할 일이다. 딸의 삶의 모든 걱정을 대신 하려하지 말고, 그걸 주도적으로 해결해 주려 하지 말 일이다. 이제는 물리적 거리의 한계 앞에 더 겸허하게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에 집중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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