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아주 보통의 행복 – 최인철

by 청블리쌤


<프레임>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의 ‘평범해서 더욱 소중한’ 행복 이야기다. 전작에 비해서 술술 읽히도록 에세이 형식으로 썼지만 읽고 나면 그 깊은 맛이 스며들 듯 우러나온다.


일상에서 특히 행복한 이들을 행복 천재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 행복 천재 유형 중 두 가지만 소개해 본다. 힐링 같은 행복의 맛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전체 내용을 읽어보시길...



그 첫째 이야기

공부할 때 집을 떠나야 하는 이유


<행복 천재들에게는 아지트가 있다>

(전략)

이상하게 집에서는 집중이 안 되지만 카페에서는 공부가 잘되는 묘한 존재가 우리들이다.


습관은 몸이 아니라 공간에 밴다. 습관에 대해 버려야 할 가장 큰 오해는 습관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맥락에 구애받지 않는 행동이라는 착각이다. 습관은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반복하는 행위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반복되는 행위가 아니다. 묘하게 거기만 가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행위가 습관의 본질이다.


따라서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이란 장소를 불문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공간으로 가는 사람이다. 공부하는 습관을 갖게 해달라는 부모님의 소원을 성취해드리기 위해 자기 방에 스스로를 감금한 채 자괴감에 몸부림치는 존재가 아니라, 늘 같은 시간에 동네 카페나 독서실 같은 장소로 무심하게 떠나는 사람들이다.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부모란 공부하는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아이 옆에서 억지로 책을 읽는 존재가 아니라, 공부가 잘되는 장소로 아이를 떠미는 사람들이다.


(중략)


행복 천재들은 마음을 다잡기 위한 결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장소로 간다. 그들의 행복 습관이 공간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도 계속 강조한다. 침대에서는 책을 보려 하지 말고 잠만 자라고. 그래서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 바로 잠이 들 수 있도록 조건반사를 만들라고.

뭔가를 하려고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기는 것까지의 심리적 거리는 생각보다 많이 멀다. 공부를 하는 것보다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미션이다.


예전 나이키 운동화 광고 중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오늘 아침 조깅한 거리 중 가장 먼 거리는 방에서 현관까지의 거리다."


우리 딸들은 절대로 집에서 공부하지 않는 것을 자발적인 원칙으로 만들었다. 사소한 과제를 하려고 해도 늘 카페를 간다. 집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돈이 많이 드는 습관이다. 그런데 그 습관의 혜택은 집에서 평안함과 안정적인 휴식을 보장받는 일이고, 공부와 휴식의 경계가 명확해져서 일단 카페나 독서실에 가기만 하면 애쓰지 않고도 공부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난 집에서도 독서를 하고 작업을 곧잘 하지만 정말 큰 집중력을 요하는 일을 할 때는 가까운 카페를 찾는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주일 오후 출근하듯 집 앞에 단골 카페에 노트북과 책을 챙겨 갔다. 나의 영어자료와 블로그의 글 중 많은 것이 거기서 생성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꼭 가야고 묻고,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야 하냐고 묻는다. 물론 집에서도 온라인으로, 혹은 VOD로도 가능하지만 그 몰입도와 진정성은 당연히 차이가 난다. 공부를 집에서도 못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가고 도서관이나 스터디 카페, 독서실에 가는 것도 그런 이유다.


공부를 해야만 행복한 건 아니지만, 우리는 그때그때 해야 할 의미 있는 일을 미루지 않고 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 에너지를 소비하며 의지력으로 하기보다 작가의 말대로 공간에 배어 있는 행복습관을 활용하면 된다.



두 번째 이야기

선택과 집중의 우선순위 행복


<행복 천재들은 굳이 알 필요 없는 것들은 모른다>

윈스턴 처칠은 자신의 왕성한 활동 비결을 묻는 사람에게 "앉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결코 서 있지 않고, 누울 수 있는 상황에서는 결코 앉아 있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마음도 이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한 무관심은 마음의 힘을 비축하는 행위다. 유일한 대화 주제가 가십과 스캔들뿐인 사람을 멀리하는 것도 마음의 힘을 축적하기 위한 행위다.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알 가치가 없는 내용들을 폭로하는 사람들과는 담을 쌓아야 한다.


마음은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대상이다. 자연만큼이나 지켜내야 할 대상이다. 마음은 결심 한 번으로 바뀌는 대상도 아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마음속 찌꺼기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 접속은 하루 세 번이면 충분하다. 문자나 카톡, 이메일을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큰일이 생기는 사람은 극소수다.


알 권리와 알 가치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무식함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아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제가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알겠어요? 하하!' 이 말을 자주 써야 한다. 소문에 느리고 스캔들에 더딘 삶이 좋은 삶이다.


이제 세상에 대해 위대한 저항을 시작해야 한다. 모두가 실시간성에 집착할 때, 한 박자 늦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해야 한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켜는 행위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 끊임없이 접속하느라 분주한 것 같지만 실은 게으른 것이요, 적극적으로 세상을 탐색하는 것 같지만 실은 단 한 발짝도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 나태다. 바쁨을 위한 바쁨일 뿐이다.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세상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관심이다. 행복 천재들의 또 하나의 비밀 병기다.



당연한 선택과 집중의 원리다. 그냥 천재들도 자신의 분야가 아닌 것에는 바보 같아 보이기도 한다. 모든 분야에서 다 잘하려고 하고 체면을 차리려고 하는 사람들은 뭘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있거나, 극심한 스트레스와 번아웃 상황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어렸을 때 팔방미인은 굶어죽는다는 말에 대해 의아했던 기억이 나지만 지금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일의 격>이라는 책에서 인용했던 ‘전략적 무능’이라는 전략도 떠오른다. 그래서 우리 삶에 우선순위라는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새는 뼛속까지 비워야 날 수 있다. 튼튼한 뼈를 욕심내는 순간 나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priority라는 단어는 1400년대 이후로 사용되었는데 원래 단수형만 있었다. 우선순위는 단 하나인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00년대부터 priorities라는 복수형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더 많은 것에 대한 욕심이 단어에 투영된 것이다.


제한된 순간에 우리는 한계를 인정하며 순간을 살아야 한다. '결심하다, 결정하다'인 decide라는 영어 단어는 잘라낸다는 의미(de=off, cide=cut)를 품고 있다. 선택과 결정은 뭔가를 더 하는 게 아니라 하나를 남기고 다 잘라내는 것이다. 그 잘라낸 것은 미련을 갖거나 더 알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 잘라낸 것이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망설일 이유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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