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전형방법
연수원에서 교감 자격연수 받는 장학사 대학 동기를 만났다.
언젠가 내게 수석교사를 권할 때 담임으로 퇴직하는 게 꿈이라면서 관심 없다고 했었는데, 이제는 수석교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는 내 모습이 마치 변절자처럼 느껴졌다.
나이가 더 드니 담임보다 업무부장을 해야 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학생들도 담임으로 날 만나는 것을 싫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변명도 그저 구차했다.
갈수록 사소한 자극이나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어지는 현실에 타협하여 담임이라는 감정노동을 더 이상 감당할 자신이 없어진 것은 아닐까?
학년초 "나에게 편한 반이 아니라 담임으로 날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의 비장함도 지금은 조심스러운 신중함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10여 년 전 초빙교사 면접할 때 학생부장이 가능하겠냐는 교장쌤의 질문에 "담임이 아닌 교사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던 확신도 이젠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듯하다.
나이의 무게로 부장을 해야 한다면 담임과 병행할 수 있는 학년부장도 있고, 어쨌거나 담임의 가능성은 열려 있으니, 담임이 안 될 바에는 수석교사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은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염려는 내 역량 밖의 일이지만 교과 교사로서도 아이들 앞에 서야 하니 역시 명분이 되지 못할 것 같았다.
게다가 수석교사를 지원하겠다는 결정만으로 합격이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은 생각도 못 했다.
얼마 전 존경하는 수석선생님을 만났다. 나의 수석교사 고민에 진심으로 상담해 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분이다.
내가 수석교사를 현실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오히려 걱정의 목소리를 높였다.
내게 AI 디지털교과서 선도교사 연수가 어땠냐고 대뜸 물었다.
온전히 찬성할 수 없는 솔직한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그런 정책적인 부분의 전달연수를 하는 것도 수석교사의 역할일 수 있어서 내게는 힘들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날 몸이 안 좋긴 했지만 7시간 연수를 다 못 채우고 나온 걸 보고, 아내도 마음을 접었다고 했다.
수석교사를 하면 외부강의가 더 많아지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내가 원하는 주제만 선별적으로 강의할 수는 없을 거라고 하셨다.
실제로 얼마 전, 한 중학교 연구부장님의 영어과 평가 관련 연수 강의 섭외에 응하지 못했다. 수석교사라면 응해야 하는 강의 주제였지만, 내가 감당할 주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수석교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강의 초대를 받은 경우도 꽤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수석교사 준비가 의외로 공부해야 할 것이 많고, 불합격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걱정을 해주셨다.
게다가 대구지역은 IB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신규교사 임용 면접에도 관련 질문이 빠지지 않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수석교사 면접에는 말할 필요도 없을 거라고.
그때 선생님께 IB에 대한 다소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때의 대화로 구성한 IB 견해 링크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3536703123
수석선생님은 면접을 할 때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듣고 싶은 대답을 해야 한다"는 조언을 하셨다.
그러나 약간의 오차도 아니고 내 교육관과 대치되는 상황이라면, 합격을 바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지...
게다가 수석교사를 지원하면 다 소문이 나게 되어 있는데, 불합격했을 때의 내적, 외적 멘탈붕괴도 걱정해 주셨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아닐 거라고...
공부할 것이 많고 준비할 것이 많아서, 안식년을 지내는 선생님들이 더 유리할 수도 있고, 이미 준비를 시작한 후배 선생님들에게 밀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대구시 영어과에 한 명을 선발하게 될 텐데 결국 그 자리가 내가 맡아놓듯 안심할 자리는 아님이 너무도 당연한데... 합격이라는 더 큰 산이 있음에도 난 단지 내가 수석교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그냥 될 것처럼 수석교사를 하냐 안 하냐의 고민만 순진하게 했던 것이었다. 실제로 고민 과정 중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공부를 시작하지도 않고 있다. 게으르거나, 자만하거나, 절실함의 부족일 것이다.
수석교사 선발계획 공문을 자세히 살펴보니 선발과정이 이러했다.
1차 전형 : 서류심사 및 교원면담
2차 전형 : 역량평가(수업역량, 동료교사 지원 역량, 학생지도 역량) - 수업설계안 작성, 수업설계 및 수행에 대한 질의응답, 심층면접
서류 중에 단위학교 수석교사 추천서가 포함되어 있다. 학교 내에서 수석교사 자격 여부를 자체 검증해서 추천하는 과정이다. 학교 내에서는 그냥 다 추천해 줄 것 같지만, 교감선생님의 반대로 서류조차 제출하지 못한 사례가 있었을 정도로 아예 원천 차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작성하는 서류에는 수석교사 업무수행계획서가 있으며 아래의 항목을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활동목표, 교과 전문지식 제고 측면, 수업지도 기획력 향상 측면, 학습자료 개발 측면, 동료교사 지원 측면, 학생 지도 측면(생활지도 교과진로지도), 기타활동
추가로 수업 선도 실적서도 첨부해야 하는데 아래의 항목이 포함되어야 한다.
수업컨설팅, 강의, 수업공동체 운영 및 활동 실적
연구 개발 활동 및 기타 실적
나는 수업컨설팅, 강의 등은 차고 넘치는데, 수업공동체 운영 및 활동 실적은 하나도 없고, 연구 개발 활동 및 기타 실적도 전무하니 자격 미달일 것 같았다.
전형 진행 과정에서 교육청에서 동료 교사와의 면담을 통해 자격 여부를 검증한다.
이 과정을 종합해서 1차 전형 합격자를 발표하고, 합격자 중에서 2차 전형을 실시한다.
이 과정을 이미 다 겪고 이른 경력에 합격하신 수석선생님은 수업설계, 수업 피드백 활동 등은 즉석에서 할 수 없으며 주어진 시간 등을 고려할 때 암기할 정도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심층면접을 대비해서 IB는 물론 예상질문 등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니 만만한 과정은 아니라고...
선발과정의 특성상 나보다 뛰어난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내가 정말 철저히 준비하더라도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는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기로 마음먹은 적도 없었으니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을 현실적으로 고민한 적도 없는데... 현실의 높은 벽을 두고 합격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면...
안정권이 아니면 지원조차를 망설이고, 꼭 치러야 하는 시험이라면 훨씬 전부터 완벽을 지향하며 준비해왔던 나의 성향만이 문제가 아니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맞는지 회피하는 구실을 찾아낼 것처럼 고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 내가 수석교사를 하려는 이유가 교육의 본질에 맞닿는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정과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닐지.. 혹 수도권 대학생 딸들을 뒷바라지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받기 위한 금전적인 동기가 포함되어 있는 건 아닌지...
(수석교사는 매달 담임 및 부장수당처럼 연구비가 조금씩 지급되고, 외부강의가 많아지는 것만큼 강사비를 받음)
훨씬 더 젊었던 시절에 내게 수석교사를 권하는 선생님들의 권유에도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그때의 마음이, 현실에 타협하려는 외적인 동기로 꺾이는 거라면 난 내적 갈망과 열의를 다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번에 만났던 장학사 동기는 내가 불합격하면 전형 과정이 잘못된 거라는 농담을 던졌는데, 혹 내 능력을 과대평가해서 지원만 하면 당연한 합격할 것처럼 바라보는 선배님들의 적극적인 권유를 거절하지 못해서는 아닌지...
나이가 훨씬 더 들어서 아이들과의 거리가 자연스럽게 더 멀어질 때는 그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퇴직하신 선배선생님의 말씀대로 지금 내가 고집하는 역할은 후배교사를 위해 비켜주고 내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과, 이번이 수석교사 마지막 기회일 것인데, 그걸 놓쳐서는 안 된다는 후회할 것 같은 마음 때문인지...
대학졸업동기인 선배선생님과 동학년을 했던 학번이 같았던 동료선생님이 이번에 교감에서 승진해서 고등학교 교장 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아내는 내게 마음이 괜찮냐고 물었다.
내가 그걸 목표로 했다면 이룰 수 있었을지 확실하지 않음에도, 나 혼자 발전 없이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듯한 느낌이... 애초에 난 승진에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담임과 교과 교사로 아이들 만나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해두었지만, 아내는 혹 있을지 모르는 나의 상실감을 살펴주는 듯해서 고마웠지만... 하나도 아쉽지 않고 후회도 전혀 없다고 했다.
혹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후회를 주워 담듯 막차 타는 심정으로 수석교사의 기회에 승선을 해야 하는 건지...
사실 수석교사는 일선 학교에서 교사 위의 교사라는 인식과는 별개로 행정적으로는 평교사의 지위와 다르지 않다고 하니, 승선이라는 것도 맞는 말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선도적인 역할과 동료 교사 지원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는 것이어서 혹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닐까 과장된 자기 기대감으로 잠시 기웃거렸던 해프닝이었을 것 같다.
내게 응원과 격려의 마음을 전해주었던 많은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권유가 없었다면 자발적으로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정도로 자기 객관화가 이미 되어 있었지만, 그래서 적어도 껍질을 깨고 나와서 고민할 기회를 얻은 덕분에 좀 더 뚜렷하게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불합격할까 봐 겁나서라기보다, 선발과정에서 드러나는 수석교사의 현실적인 역할과 나 자신의 자격과의 불일치가 더 두려워서일 것이니 이해해 주시길...
내가 평생 가슴에 품고 있는 교육의 방향과는 별개로, 애초에 나의 고집과 소심함과 리더십 부재로 볼 때 내게 가당치도 않은 자리였을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