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감독 이범호 응원 이유

by 청블리쌤

80년대 초등학생이었다면...

고교 야구의 인기와 프로야구 출범, 프로야구 어린이 회원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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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난 야구하는 것도 너무 좋아했다. 그러나 어린이 회원이 되지는 못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건 이해했지만... 늘 아쉬움과 이루지 못한 서러움 같은 건 있었다.

그래도 부모님은 내게 글러브와 야구배트를 사주셨다.

야구 유니폼을 입어 보고 싶었지만, 긴팔과 반팔을 겹쳐 입고 상상을 더해 선수인 듯 야구를 했다. 눈 밑에 검은 테이프도 붙였다.

야구는 혼자서는 연습조차 할 수 없는 종목이다.

야구 경기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인원이 필요했다.

대부분 어린이들의 최초의 야구장은 동네 골목이었다. 파울볼이나 너무 당기거나 밀어치기 금물이었다. 옆집 담장을 넘어가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굳건히 잠겨 있는 집으로 공이 넘어가는 순간 콜드게임이 선언되었고, 우리는 미련 가득 다음 게임을 기약했다.

철없던 어린 시절 야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를 꿈꿨다.

꿈을 이루지 못해.. 주산학원을 수시로 빼먹으며 야구하러 다녔고, 야구학교로 전학 가서 콜업(?)될 상상을 멈추지 않았다.

부모님은 가정 형편도 안되었지만, 내가 공부를 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으셨던 것 같았다. 나도 야구 아니면 안 되겠다는 절박함은 없었고, 떼를 쓰지도 못했다. 야구선수가 되었다면 재앙이었을 것이니 여건이 되지 않았던 건 결과론적으로 축복이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학교 축구부에 선발되었다. 겨울방학 때 동계훈련까지 했는데, 코치 선생님의 사정으로 대회 한 번 참가하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그러나 나름 비공식 선출(선수출신)의 자부심으로 대학교 때까지 학교에서 축구를 했던 건 내 삶의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적정 인원만 되고 공하나만 있으면 늘 경기가 가능한 축구에 비해, 야구는 장비를 갖추어야 하고 포지션별로 적정 수준 이상의 플레이어가 필요했기 때문에 좀처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야구중계 시청은 나의 이룰 수 없는 꿈을 대신 펼치는 무대였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응원하는 선수로 감정이입하면서 혼자 연습하고, 야구를 하러 다니고, 야구중계에 몰입했다.

사연이 있는 스토리는 강하다. 내게 야구중계를 보는 건 그런 사연의 총체였다.

야구 경기는 3시간 이상의 시간을 쏟아야 하는데도 어린 시절에는 야구중계를 보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그러나 늘 가슴에 품었던 야구장에 가고 싶다는 꿈은 현실로 허락되지 않았다.

야구장에 가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발적인 의지가 아닌 오히려 강제적인 상황이었다.

정말 유쾌한 강제성이었다.

대구에는 경북고, 대구상고(현 상원고), 대구고 야구부가 있다.

<각 학교 출신 대표 선수>

경북고 : 류중일, 이승엽, 원태인...

대구상고(상원고) : 장효조, 김시진, 이만수, 양준혁...

대구고 : 강기웅, 이범호, 손승락, 박석민, 구자욱...

나의 영어교사 첫 부임지는 대구고였다. 어렸을 때 기억 속에 자리 잡은 고교야구의 팀 중 하나인 학교에 근무한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고, 학교 야구장과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을 보는 것도 너무 좋았다.

오전에 수업을 들어오는 야구부 학생들에게 난 팬심을 발휘했다. 미리 사인을 받아두기도 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내가 근무하던 시기에 학생으로 만났던 선수가 김진웅, 이범호, 손승락, 박석민 등이었다.

특히 이범호와는 대화도 나누고 캐치볼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이범호는 현재 기아 타이거즈 역사상 최연소 감독이다. 선수시절일 때도 계속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범호는 고1 때부터 타격으로 이미 에이스 이상의 실력을 발휘했다. 강렬한 인상으로 꽃범호라고 불리는데, 자존감 높고 밝고 쾌활했던 친구다. 기아 감독으로 부임 소식에 나도 뛸 듯이 기뻤다.

대구에서 열리는 대봉기 야구대회에.. 학교 학생들과 단체로 시민운동장 응원 간 것이 첫 야구장 체험이었다. 소위 강제 동원이었고, 담임교사인 나도 당연히 가야 했다.

야구장은 화면으로 보던 중계와는 차원이 달랐다. 화면에 그 모든 열기가 담기지 않았다는 걸 야구장을 들어서는 순간 바로 느꼈다. 카메라가 미치지 못하는 더 많은 시각과 장면들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게다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라면 열정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도 처음에는 야자를 빼주는 특혜는 누렸지만, 왜 응원을 강제로 가냐고 불만을 터뜨리다가, 경기의 열기가 더해지자 자발적으로 모두 일어서서 교가를 제창하면서 응원했다. 게임에서 지면 그다음에 안 와도 되는데 또 와야겠다는 비장함까지 담아 응원을 하고, 결국 우승까지 했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하던 그때의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다.

그 중심에 투수 김진웅이 있었고, 타자로는 이범호가 있었다.

이범호는 대구 연고지가 아닌 한화에 지명을 받았지만 난 응원을 멈출 수 없었다.

대구고에 근무하는 동안 학교 학생들이 대부분 지명받을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 야구장 체험 후 바로 응원하던 팀을 갈아탔다.

그전에는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아버지 고향과 가까운 롯데 자이언츠를 절대적으로 응원했었다.

이후 투수 윤길현, 손승락과 타자 박석민의 활약으로 전국체전 우승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부산까지 버스를 대절해서 결승전 단체 응원을 갔었다.

대구고에서 동시대에 만났던 이범호가 기아 감독이 되고 나니 제2의 응원팀이 추가로 생겼다.

해태 타이거즈로 시작해서 기아 타이거즈로 이어지는 동안에 단 한 번도 호감을 가진 적이 없던 기아를 응원하게 된 것은, 이범호와의 사소한 인연 때문이다. 정작 이범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인데도.

그렇게 사소한 일로도 팀을 응원하게 되고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는 것에 신기해졌다.

학교 선생님이 좋아서 과목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옛날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닌 듯하다.

사연이 있으면, 인간적인 소통이 있으면 더 몰입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면...

우리는 그런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며 인간적인 사연을 담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는 이성적인 활동인 것은 틀림없으나 멘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때로는 감성이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특히 영어라는 언어는 수업과 학습에 감성의 영향이 크다. 내가 남학생보다 여학생 수업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감정이입도 중요하다.

아마추어 실력도 안되는 동네야구 출신이라도 직접 야구를 해보았다면 야구 중계에 더 몰입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거다. 그 입장이 되어보면 투수든 타자든 그 입장에서 매 순간의 선택을 함께 고민하며 마치 야구를 함께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입장에 몰입한 것만큼 선택이 옳음을 증명받았을 때의 기쁨은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야구를 통해서 우리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교훈을 얻으며 인생을 배운다.

위대한 타자도 10번 중 6-7번은 실패한다. 홈런을 잘 친다고 삼진을 안 당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 때마다 좌절한다면 홈런도 승리의 영광도 없을 것이다.

실패를 늘 두려워하고 소심해하는 나는 야구를 통해 모험을 하고 위험을 무릅쓰는 훈련을 했다. 삼진을 각오하지 않으면 방망이조차 휘두르지 못했을 것이니.

삼진을 한 번만 당해도 재기불능일 것 같았던 나의 소심한 모습을 삼진을 당하고 담담히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위대한 선수들의 모습을 투영하며 실패해도 괜찮다고 다음 기회가 또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각 선수의 사연을 알게 되면 더 큰 응원을 보내게 되기도 한다. 응원은 궁금함의 다른 유형이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을까... 더 많은 실패를 반복하고 과몰입할 때는 분노를 터뜨리기도 하면서, 매번 기대감을 희망으로 품는다. 타율로 봤을 때 이제 안타가 나올 때가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확률을 계산하면서...

우승하는 팀도 많은 패배를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완벽주의의 허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야구를 보면서 인생과 교육을 생각했다.

물론 예전처럼 한가하게 야구 중계에 몰입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엔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고 아깝다. 이제는 야구 중계가 아닌 야구에서 배운 삶을 그냥 살아간다.

올해 야구를 한동안 안 봤다가 이범호가 감독이 되어 승승장구하고, 응원팀인 삼성이 오래간만에 야구를 잘하고 있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고민과 좌절로 점철된 성장의 과정이 생략된 하이라이트로 궁금함을 달래거나, 가끔 듀얼 모니터로 다른 영상을 볼 때 야구 화면을 중계음성 없이 곁눈으로 보기도 한다. 나름 야구 전문가라서 해설없이도 거의 다 이해가 된다.

오래전 음악을 들으며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듯, 어린 시절 야구 영웅들의 모습과 그때의 영상을 한 번씩 접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생생한 기억이 떠오른다.

삶은 유한하고, 젊음은 길지 않으며, 한때의 영웅들도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아예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물론 그 그리움은 선수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어리고 젊은 시절의 나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향한 것이다.

야구를 그냥 스포츠로 선을 그을 수 없는 것은 인생의 희로애락과 인생의 축소된 모형들이 그 안에서 살아 움직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적으로 팀과 다른 선수를 위해 번트 등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미덕인 아름다운 종목이기도 하다.

아주 어린 시절은 아니지만, 은퇴한 레전드 선수들의 예능 아닌 예능프로그램 <최강야구>를 보면서 뭉클한 것은 세월에 맞서서 끝까지 꿈을 이루려는 모든 다른 분야 사람들의 몰입과 감정이입을 끌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야구는 인생이다.

<보너스...이범호의 레전드 유머 짤>

https://video.kakao.com/shorts/view/440293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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