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싸움을 하냐는 질문에...

by 청블리쌤

오랫동안 내게 연락을 주고받는 제자가 전에부터 정말 궁금한 것이 있었다며 문득 내게 물었다.

선생님은 부부싸움하시냐고...

왠지 나는 자신의 교회 목사님만큼이나 부부싸움하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말다툼이나 의견이 안 맞는 일이 왜 없었겠는가...

더구나 나와 아내는 MBTI 중 T와 F P와 J도 상극이다.

그러나 난 주로 회피형으로 반응해왔던 것 같다.

아예 갈등 요소를 안 만들었다. 정말 중요하거나 불편한 일이 아니면 그냥 양보하고 맞춰주었다.

인간관계에서 무조건 맞춰주고 갈등을 피하는 건,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 하거나 자존감이 매우 낮을 때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회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만 볼 수 없겠지만.

딸들이 어린 시절에 딸들에게는 언성을 높였지만, 아내에겐 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바꿀 수 없을 거라는 걸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결단은, 나만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내도 나의 민감함과 바꿀 수 없는 모습을 그냥 인정하고 받아주었다.

부모님은 서로의 모습을 바꾸려는 듯 자주 싸우셨다. 그러나 어린 눈에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확신만 생겼다. 잦은 싸움은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오래전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완전 공감했다.

치약을 중간부터 짜는 배우자의 습관은 절대 고칠 수 없다고, 부부끼리 사소한 변화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러하다.

그렇다면 서로를 바꾸려는 노력보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선사랑 후성장"

자격에 상관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자신부터 성장하고 변화하려는 애쓰게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다.

최근에 아내와 <이혼 숙려 캠프> 프로그램을 보면서 서로 은근한 자신감으로 서로에게 결혼 잘하지 않았냐고 으스대기도 했다.

함께 출연한 부부들끼리도 자신들은 적어도 다른 커플보다는 낫다고 위안을 얻는 것처럼...

퍼즐 조각처럼 운명과 같은 짝은 없다.

그냥 맞춰가는 거다.

강렬한 폭발과 같은 감정으로 시작된 사랑은 심장 떨림이 잦아들면서 이성적인 판단이 시작되고,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Keep your eyes open before marriage, and half shut afterwards."

결혼 전에는 눈을 활짝 열고 결혼 후에는 오히려 눈을 반쯤 감으라는 명언이다.

사랑 감정 자체에만 집중한다면 서로 헤어질 이유를 찾게 될 것이다.

누구를 만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만난 상대방과 어떻게 잘 지낼 것인가가 관계 유지에 더 중요하다. who가 더 중요한 연애결혼보다 how가 더 중요한 중매결혼이 오히려 이혼율이 낮다는 통계도 그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첫 만남의 떨림은 잦아들었지만, 사랑이 식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미 여러 단계로 레벨 업 된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만으로 용서와 이해와 배려가 가능하다. 나 혼자서는 굳이 하지 않을 귀찮음도 무릅쓰게 된다.

상대방의 변화를 기다리며 짜증으로 반응하기 보다, 나 자신이 상대방에게 충분한 은혜를 끼치지 못하는 부족한 모습을 먼저 돌아본다.

그러나 난 회피형이었다. 사소한 실수도 용납 받지 못했던 성장과정에서... 다른 이들에게 듣는 꾸중 같은 말에 한없이 추락하며, 나 자신의 무가치함이라는 일반화된 결론에 성급하게 이르렀다.

아버지의 평소 화법은 늘 내게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다. 목사님으로 설교하실 때도 난 늘 부족함에 대한 좌절감만 느껴졌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말이나 기대가 상처였다는 걸 깨달아갔다. 그전에는 괜찮은 듯 봉합해두었을 뿐이었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내 가치를 증명하려 애써왔다.

싸움을 안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다툼과 갈등의 과정은 더 성숙하고 건강한 관계로 나아가는 관문이다. 단지 그 과정에서 폭력이나 폭언 등 감정이 앞서면 안 된다는 것일 뿐...

지금까지 연락을 하는 첫 여고에서 첫 고3을 했던 해에 만났던 제자는 나를 무척 만만하게 대했다. 필터링 없이 말을 하는데 틀린 말도 별로 없어서 반박할 수도 없었다.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는 학생이었는데 나의 교육적 영향도 크게 가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제자가 내가 무서웠던 순간을 회상했다. 복도로 불러서 소리를 높이지 않고, 감정도 하나도 담지 않으면서 목소리 깔고 조목조목 지적을 했을 때였다고 한다.

동갑이면서 나를 무척 편하게 대하는 아내도 내게 그런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말이 들리게 하려면 들릴 수 있는 조용한 환경이어야 한다. 내가 언성을 높이면 상대방도 높아진다. 방어벽을 더 높게 세우려 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듣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준비가 되었을 때 차분히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공감과 감정이입은 자신의 뜻을 전달하려고 애쓰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잠시 멈추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과 생각을 느껴보는 것이다.

침묵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담아내고 전할 수 있다.

나는 회피하는 비겁한 방법을 써왔지만, 그래서 의도하지 않게 멈춤의 시간과 기회를 가졌을 지도 모른다.

때론 약점도 강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은 자신의 모습대로 최선을 다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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