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기 가장 좋은 때는 20년 전이었다. 두 번째로 좋은 때는 지금이다.
늘 적절한 타이밍을 포착하는 완벽한 삶은 없다.
심지어 이미 숱한 실패를 겪거나 목격한 교사와 부모의 조언에 아이들은 반응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가슴이 아플 지경이다.
구약 성경에 패턴 같은 싸이클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백성들이 처음에는 감사와 감격으로 반응하다가 이내 은혜에 중독되고, 주어진 것을 당연시하는 순간부터 감사를 잃고, 불평불만이 시작된다.
그 시점에 고난이 닥치면 당연하게 누리던 모든 것들이 멀어지며 겸허하게 은혜를 구하면서 점차 사소한 것에 대한 감사부터 회복되기 시작한다.
C.S. Lewis는 고통을 하나님의 확성기라 했다.
God whispers to us in our pleasures, speaks in our conscience, but shouts in our pains: it is his megaphone to rouse a deaf world.
하나님은 우리의 즐거움 중에는 속삭이시고, 양심 가운데 말씀하시지만, 우리의 고통 중에 소리치신다. 고통은 귀머거리가 된 세상을 깨우는 하나님의 확성기다. - C.S. Lewis, The Problem of Pain
우리는 상실과 아픔과 좌절을 통해서 자기 객관화가 되고 절실함을 회복한다.
이유가 뭐든 성장의 시작은 자신의 출발점을 인식하고 고백하는 거기서부터다.
역설적이게도 결핍과 부족함만큼 더 풍요롭게 채워진다. 단 객관적인 비움의 정도보다 인식과 고백으로 이어지는 의도적인 비움이 전제다.
지금 이 순간 시간을 돌이켜 20년 전에 나무를 심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절실함이나 아픔 없이는 대개 귀찮음을 무릅쓰며 안전지대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후회하고 있는 지금이다. 후회는 시작 버튼이다.
그 버튼을 누르지 않을 때에만 후회는 회복할 수 없는 통한과 좌절로 화석화된다.
그러니 쉽지는 않지만 지금 이 순간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망설일 이유는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