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울 정도로 가난한 분들께는 누가 되는 말이겠지만...
나는 내가 정의한 가난 속에서 살아왔다.
갑자기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4년 전액 장학생이었음에도 거의 4년 내내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하면서 모든 수입을 집에 드리고 용돈을 받아썼다. 기숙사비, 식비, 교통비 외에 넉넉하게는 용돈을 받지 못했고, 교재비도 따로 얘기해서 받았던 것 같다. 대학생이었음에도
대학 학비도 안 들고 알바를 하면서도... 중고등학생처럼 용돈을 받으면서 자립을 이루지 못했다.
아버지는 시골교회 목회자이셔서 집이 늘 가난하다는 말을 들었고, 난 그 가난의 짐을 책임감으로 지고 있었다. 나와 한 살 차이인 여동생도 대학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다 드리고 용돈을 받았다.
그래서 여분의 돈을 더 요구하지 못했고, 일상 외의 비용이 발생하는 일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꼭 여자친구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호기심으로도 할 수 있었던 다른 학교와의 학과 미팅도 참여하지 않았는데,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방학 때도 알바를 해야 해서 집을 떠나 있었는데, 내가 머물던 기독학생회관 기숙사에서 겨울에는 건물의 절반만 보일러를 돌려서 기숙사비와 식비를 일주일 단위로 따로 받았다.
난 그 돈이 아까워서 보일러가 가동되지 않는 냉방에서 지내곤 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돈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일의 기회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끼니를 굶은 돈으로 책을 사기도 했고, 책 선물을 하기도 했다. 배고픔을 선호한 것이 아니라 한두 끼 건너뛰고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비용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구한 책은 더 절실했고, 그렇게 전달하는 선물은 간절함과 진심이 더 담겼다.
이후에는 시간의 가난을 선택했다. 집에 가져다드리는 생활비 외에 일일이 허락을 구하지 않고도 내 마음대로 책을 사 보고 사람을 만나는 일을 위해 집에 얘기하지 않은 과외를 추가로 더 했기 때문이다.
학과 친구들은 임용이나 대학원 시험이 가까워오는 4학년 때는 과외를 그만두었는데, 난 오히려 과외를 더 했다.
그래도 난 과외가 너무 즐거웠다. 학생들을 만나는 게 너무 좋았다. 이렇게 재미있게 아이들과 지내고 예비교사로서 꿈을 이어가는데 돈까지 받다니ㅠㅠ 다른 알바에 비해 고생은 덜해서 지금 생각하니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매주 아버지가 계신 교회인 집에 들어가면서 주말과 주일에는 나만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고, 교회 독립도 못했는데, 거기다 저녁 시간은 두 건의 과외로 나만의 시간을 어느 정도는 다 포기해야 했다.
여분의 돈은 더 생겼지만 시간의 자원은 훨씬 줄었다. 과외 시간만이 아니라 오가면서 드는 시간도 추가로 들었기 때문이다. 과외도 교육특구에서 주로 이루어지니 대학에서 늘 거리가 멀었다.
대학생 딸들도 알바를 한다. 아르바이트한 돈을 요구하는 건, 상상조차 한 적 없다.
용돈을 넉넉하게 챙겨주지도 못하면서 알바를 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한다.
돈보다 시간의 가치와 무게가 더 크다는 대학시절의 삶의 무게를 아직 기억하기 때문이다.
넉넉하게 용돈을 주지 않지만, 나의 기억과 경험이 딸들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적어도 굶어야만 뭔가를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내 체크카드를 주었다.
딸들은 알바를 하는 덕분에 무제한으로 내 카드를 쓰지는 않는다. 식사와 카페 비용의 일부만 사용한다.
나는 집 떠나 있는 딸들의 문자와 전화 외에도 카드 사용 안내 문자로 안부를 전해 듣는다.
뭔가 넉넉하게 챙겨주지 못하니 늘 가슴 졸이고 떨리는 감사함이 있다. 사소한 것으로도 감사가 오간다.
가성비를 따지면서 낭비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최대의 행복한 선택을 하려 애쓰게 된다.
그런데 ㅠㅠ
딸들이 독립을 하니까... 나만을 위한 소비의 의미를 못 찾고 있다. 딸들과 같이 지낼 때는 낭비도 낭만이었고 기쁨이었다.
좋아하지 않는 음식도 딸들과 함께 하면 기쁘고 즐거웠다. 고가의 음식은 아니어도 혼자서는 하지 않을 소비였다는 것을 두 딸이 수원, 서울로 독립하게 돼서는 실체로 깨닫고 있다.
소비뿐 아니라 귀찮음의 실체도 다시 마주한다.
딸들을 위해서 일주일 한두 번씩 오가던 도서관도, 나만을 위해서는 그 수고를 굳이 감당하고 싶지 않다.
늘 다니던 대구에서 가장 큰 공공도서관의 장서가 줄었고, 전자책을 구독한다는 핑계로 나의 귀찮음을 합리화시키고 있다.
부모님도 대학생 자녀들에게 알바 비용까지 받아내었던 그 상황 자체가 너무 괴롭고 힘들었을 거라고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딸들에게 알바로 생활비를 보태라고 강요하지도 않았고 얼마를 버는지 물은 적도 없다. 대학 생활 초기부터 학원과 과외로 자신의 생활비와 월세를 거의 다 충당했던 큰 딸에게 부쩍 알바를 그만두라는 말만 계속할 뿐이다.
그만두어야 할만한 충분한 여유를 갖도록 실물로 확인시켜주지 못하는 아빠로서의 무력함 속에서 딸이 시간에서조차 가난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둘째 딸도 수업과 댄스동아리만으로도 가득 찬 일상의 시간표에 알바가 수강신청하듯 들어오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끝까지 말리지는 못했다. 내가 그 이상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가난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은 자립을 스스로 이뤄가고 있다. 넉넉함과 여유 속에서는 오히려 엄두를 내지 못했을 미션일 수도 있는데, 내몰리듯 절박하게 서 있는 딸들은 그 결핍 속에서도 시간의 가난과 물질의 가난을 극복하고 길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안쓰럽지만, 고맙고 기특하기도 하다.
행복과 진심이 전달되는 관계는 물질의 풍요로움과 여유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고 평생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