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를 왜 살아야 하는지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겠지만 사소한 의미라도 찾아내지 못하고 그게 일상이 되면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당연한 귀결이다. 의미를 못 찾으면 당연히 무의미해지는 거다.
그런데 그 단순하고 당연한 것이 더 어렵다.
오래전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고1 학생들조차 새벽 6시 50분까지 등교했고, 밤 9시까지 야자를 했다. 별 보고 학교 와서 별 보고 퇴근하는 건 교사도 마찬가지였다. 선택권도 없었다. 모두가 강제로 별을 봐야 했던 그 시절... 별 보는 것이 이렇게 낭만적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도 대구에서는 고등학교 반강제 야자가 지속되었었다.
하루 종일 학교에 머무는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오늘 학생들을 왜 학교에 온 것일까?
공부하러 왔다는 것이 정답이지만, 수업시간마다 꿈나라로 향하는 학생들에게까지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듯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오전을 지탱하는 힘은 점심급식이 아니었을까?
3교시까지 꿈나라를 오가던 학생들도 4교시에는 웬만하면 잠들지 않는다. 4교시 마치고 결정적인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처럼 그 결정적인 순간이 닥쳐오면 몸의 각도와 다리의 뻗음도 달라진다.
그리고 그 순간이 되면 인간다운 우아함을 포기하며 한 가지 목적을 향해 내달린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급식실이 거의 산꼭대기에 있던 여고에서의 기억이다. 평소에는 가팔라서 제 속도로 걷기도 힘들어하던 학생들이 평지를 뛰는 것처럼 급식소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 순간을 위해 4시간을 버틴 것이니 오히려 격려를 해주고 싶었다.
오후 시간은 저녁 석식을 위해 버틴다.
저녁 먹고는 2시간 이상 야자시간을 버텨야 한다. 야자감독쌤과 스릴 있는 게임이 시작된다. 감독쌤 안 들키고 떠들거나 휴대폰 하는 내공을 익힌 아이들의 활약이 시작되고 들키지 않은 성취감은 다음 날의 목표로 이어진다.
교육특구 여고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습에 몰입하는 학생들에게 집에 갈 시간이라고 알려주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야자 마침 종이 울리기 전 거의 모두가 떠날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야자 마치는 종이 울리기도 전에 많은 학생들은 교실 밖을 나서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답을 찾았다.
오늘 학생들은 왜 학교를 온 것일까?
집에 가려고...
내일도 또 그런 목적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학생들에게 이런 잔소리를 했다.
삶의 진로와 적성을 찾아야만 삶에 의미가 생기고, 그래야만 지금 이 순간 공부해야 할 목적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매 순간 목적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사소한 목적이라도 설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긴 시간이라도 의미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너무 큰 그림은 지금 이 순간의 사소한 성취를 지연시키는 명분일 수도 있다고.
이번 수업시간에 하찮아 보이는 목표라도 설정해서 사소한 성취라도 이룬다면, 당장 성적이 오르는 것을 확인하지 않아도 의미 부여가 될 거라고...
사소한 성취의 습관, 그것이 일상이 되면 많이 애쓰지 않아도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생존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걸 슬프도록 명확하게 보여주는 책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다.
풀려날 기약 없는 수용소에서 끝까지 생존한 사람들의 삶을 지켜낸 것은 삶의 의미 부여였다.
본질적인 삶의 목적이나 의미를 고민하는 분들의 필독서다.
원제 자체가 우리말 제목보다 더 명확하게 의미를 드러낸다.
"Man’s Search for Meaning"
지난 금요일 중3 부장과 기획쌤들의 나이스기반 고입관리프로그램 연수가 있었다.
연수를 마치고 나의 할 일과 역할을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담임쌤들께 효율적인 업무를 돕고 학생들의 고입전형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할 것인가?
나 혼자의 고민으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게다가 3학년 부장이 되니 3학년 부장 전체와 공유할 수 있는 채널도 열려 있어서, 나의 고민의 결실이 확장될 사소한 도움에 대한 설렘이 커졌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실을 토, 일요일 블로그에 올렸다.
연수에 동참하셨던 기획쌤이 이런 비밀 댓글을 남기셨다.
아니!! 부장님~!!! 정말 미치겠다요~ ㅋㅋ
벌써 일반고까지 다 준비하신 거예요?
부장님의 머릿속에는 영어와 일뿐인가...
아무리 봐도 부장님은 천재이신듯 합니다.
...
그래서 답변했다.
일요일까지 기분 좋게 해주시기에요?ㅋㅋ 제 머릿속에는 다른 이들의 행복이 있어요ㅋㅋ
천재가 아니라 문제 해결 고민을 좋아하는 1인이지요. 그런 제가 실행력과 업무력이 뛰어난 기획쌤을 만나서 정말 편안하게 고민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늘 든든하게 옆에 계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답하셨다.
저도 다른 분들 돕고 그분들이 좋아하실 때 행복감 높아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늦게 알았어요.
그런 게 힘든 부분도 있어서 파견 간 것도 있는데
파견 가서 느끼고 올해 이 학교 와서 확인했네요.
뒤늦은 자아발견 ㅋㅋㅋ
근데 문제는
제 능력과 시간이 너무도 한정적이라
남을 돕기는커녕
도움을 받으면서 겨우겨우 산다는 것이죠...
능력 배양을 해야하는디...
난 공감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맞아요 선생님께 그런 느낌을 받고 있어요. 행복바이러스 같은 분이셔서... 선생님이 부러울 때가 많아요. 스타일이 다를 뿐 우리는 같은 곳을 보고 있네요. 자신만의 모습으로 진정성 있게 그 자리에 서 있는 존재감부터 우리의 역할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믿고 싶어요. 친화적인 면에서 많이 서툴고 부족하지만, 제 모습 그대로 존중해 주시는 선생님을 비롯한 담임쌤들께도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 이젠 저의 약점보다 잘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는 지혜를 얻어 가고 있어요.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의 능력과 시간은 한정적이니까요.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의미를 부여받을 때는 남에게 도움을 주는 모멘트다. 나만을 위해 내게 주어진 자원을 쓰는 것의 기쁨과 의미는 딱 내게 머물 그때뿐이지만, 남들을 향하게 될 때 나의 삶은 세상 밖을 향한다. 나의 존재 의미가 공식화되고 객관화되며 그렇게 의미를 부여받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 도움이 되는 양상은 다 다르다. 다른 사람을 흉내 낼 것도 없고, 비교할 것도 없으며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이벤트적으로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저 내가 있는 그곳에서 미치는 하찮은 영향력의 감동이 누적되면...
그렇게 그게 일상이 되고 나면 일상 자체에 의미와 행복을 느낀다.
선물은 받는 이보다 주는 이가 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