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전날 작년까지 두 번의 수능을 치렀던 둘째 딸이전화 통화에서 수능이 이렇게까지 남의 이야기 같을 줄 몰랐다며 신기해했다. 첫 수능 망쳤을 때는 다음 기회를 생각하며 애써 힘을 냈지만, 둘째 수능 망했을 때는 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삼수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그래서 수능 점수를 현실로 받아들이기까지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어쨌든 대학생이 되어 짐을 다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듯했다.
학년실 쌤 아들이 수능인데 수능 전날 간식의 유혹도 뿌리치고 점심 먹은 것도 울렁거린다면 떨림을 표현하시길래 본인이 수능치는 줄 알겠다니까, 아들 대신 다 떨어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러겠다는 위대한 모성애를 표현하셨다.
불가능한 상상을 이루는 게 오히려 더 쉬워 보이기까지 한 것이 부모의 마음이었다.
그 심정을 작년까지도 느꼈던 난, 그 어떤 위로도 드리지 못하고 말없이 뜨겁게 공감만 했다.
고등학교에 있을 때는 고3 담임을 하지 않아도 거의 매년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수능을 치렀다.
큰 딸은 한 번, 둘째 딸은 두 번 수능을 치렀다.
물론 딸들이라도 내가 대신 뭔가를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마음의 무게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수능장에 데려다주고 뒷모습을 보며 응원하는 간절함이 수능시험 끝날 때까지도 사소한 시간의 흐름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비장해져 있었다.
수능이 끝나면 부담감은 내려놓은 듯하지만 그 결과에 따라 부담감은 다른 종류의 마음의 짐으로 이내 바뀐다. 그래도 차차 방법을 찾아가면 될 것이니 고밀도로 압축해서 한 번에 겪어내는 수능의 부담감과 불안감에 비할 수 없다.
수능은 학생들과 자녀의 긴 인생 여정의 한 관문일 뿐이고, 이 시험 하나만 통과한다고 이후의 모든 마음의 부담이 면제될 수 없음에도 이렇게까지 긴장하며 마음 졸이는 것은...
삶에 미치는 그 영향력이 엄청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독립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수능은 그동안의 숱한 선택과 열심의 의미를 부여받는 테스트이기도 하다.
무대를 앞두고 떨린다는 것은 잘하고 싶다는 의지와 열심히 해왔다는 증거가 포함된 감정이다. 그리고 그 떨림은 시험치를 때의 에너지로 다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니 떨림이 걱정의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러나 수험생 부모님은 그 떨림을 아이에 대한 사랑의 깊이만큼 여전히 가슴에 그대로 품는다.
수능이 다가오는 떨림은 내게는 수능감독으로 살아온 날들의 일상이었다.
고등학교 교사는 대개 수능시험장을 꾸리는 일부터 수능감독까지 풀패키지로 수능을 맞이한다. 감독은 잘해야 본전이다. 최악의 경우, 법적 소송까지도 현실이 될 수 있는 일이어서 수험생만큼은 아니지만 긴장감은 피할 수 없다.
중학교 교사가 되어서 좋았던 점 중에 수능감독을 안 한다는 것이 포함될 정도로 마주하기 힘든 일이다.
중학교 와서 수능 날 수업을 할 수도 있다는 낯선 경험도 처음 했다.
고등학교 교사라도 자녀 수능 때는 감독을 우선적으로 면제해 준다. 난 중학교 4년 중 2년이 딸의 수능과 겹쳤으니 아쉬운 일이다.
심지어 둘째 딸 첫 수능 때는 졸업여행으로 놀이공원에 현장체험을 나가기도 했다.
수능을 향한 온 국민의 떨림...
누군가의 자녀이고, 자신의 자녀도 이미 겪었거나 앞으로 겪을 일이라서...
그 떨림은 늦은 출근과 영어듣기 시간의 묵념과 같은 의도적 애씀이 담긴 침묵으로 표현된다.
큰 딸의 수능 때는 감독도 안 하고 딸을 시험장까지 바래다주고는 집에 있었다. 아내가 외출했다 들어오는 문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혹 딸이 수능 포기하고 돌아오는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상상과 걱정에...
실제로 큰딸은 2교시 수학 마치고 그냥 뛰쳐나오려 했다고 한다. 공들여 푼 문제의 답이 그게 아니라는 학교 친구의 자신 있는 선언에, 딸은 점심도 먹지 않았다.
어떤 경우든 시험에 예의를 다해야 한다는 아빠의 평소 다짐과 어차피 재수를 해도 꼭 거쳐야 할 경험이라는 생각이 딸의 도망치는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평소보다 망한 건 맞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켰기 때문에 수능 최저를 맞춰 성균관대 논술로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으나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경험은, 좌절의 순간에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할 이유를 알려준다.
부모와 교사의 응원의 마음은 일종의 선 긋기다. 내가 할 수 있는 영향과 아닌 영역에 대한.
그게 수능 결과와 관계없이 자녀의 독립을 보장하는 첫걸음이다.
그렇게 아이를 뿌듯하게 떠나보내는 과정이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결과에 관계없이 정말 장하다는 격려와 수능 후 판단 없는, 조건 없는 안아줌으로...
아이가 혼자서도 어떻게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독립하려는 애씀을 존중하는 것이 불안함과 걱정에 대한 처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