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이 텅빈것 같은 느낌이 있나요?
먹고살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무시당하기 쉽습니다. 우선 눈에 보이는 먹고사는 일이 급하기 때문에 다른 일들이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도 일제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나라이기 때문에 생존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그러한 세대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적 안정이라 공감이라는 이야기는 그저 배부른 소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지나가고, 전쟁이후에 태어났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하고 그 자녀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살아가는 이 시대가 왔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감정에 대한 인식이나 관련 정보는 많지 않은것 같습니다. 이렇게 관심이 많지 않은 이유는 그러한 감정의 문제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는 많이 하게 됩니다.
저의 직장생활동안 저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자신의 권리와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좋은 의견이 있을때 혹은 자신의 권리가 지켜지지 않을때 이를 조리있고 상대방이 기분나쁘지 않은 수준에서 이야기 하지 못했다는 것이 저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저의 모습을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면이 많았습니다. 노력은 열심히 하는데, 자기에게 주어질 것이 주어지지 않을때 적극적으로 자신의 몫을 챙기는 법을 알지 못한것입니다. 그냥 주어지는 것만을 바라고 있는 저의 수동적인 모습은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어느정도까지는 버틸수 있었겠지만, 미국의 사회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모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생활의 모습이 한국에서 유학온 사람들이 미국에서 사회생활을 할때도 보여지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경향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정서적 방임 (Emotional Neglect)에 대해서 책과 자료를 읽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물리적으로 아이들에게 폭행을 하고 밥을 주지 않는 학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모두 안타까운 시선을 보이지만, 정서적인 방임에 대해서는 부모가 잘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지 않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부모들이 경제적으로 지원해주고 학교도 보내주고 먹는것도 잘 챙겨주지만 정서적으로는 방임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아이들의 정서적 욕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죠, 본인들도 부모들에게 그러한 보살핌을 받은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한국 뿐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도 심리상담관련 글을 보면 정서적 방임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하는 케이스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정서적 방임의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못느끼기 때문에 제때에 필요한 상담이나 치료를 하지 못해서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사회생활하는데 있어서 고통스러웠는데,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을 탓하다가 나중에는 저의 성격탓을 하다가, 그것이 저의 양육과정에서 부모와 안전한 정서경험을 하지 못하고 전혀 정서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것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감정을 인정해주지 않고 무시하며, 부모들의 정서적인 욕구만을 관철시키게 되면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존감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감정은 영혼의 언어라고 합니다. 즉 감정을 느끼는 주체가 영혼인데, 감정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영혼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건강한 자아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항상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간다거나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나중에 자신의 존재 자체는 사라지게 되고 다른 사람들만을 의식하게 되며, 삶이 공허하다고 느끼고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할때도 자신이 아무리 좋은 의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강하게 이야기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마음속에 분노와 불만이 쌓이게 되고, 어떤 식으로든 이러한 감정적 고통을 해소하려고 하게 됩니다. 자신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도 모른채 다른 방식으로 해소를 하려고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밑빠진 독에 물을 붇는 것처럼, 악순환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이러한 정서적 방임의 문제는 보이지 않는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내지만, 그 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못하면 해소가 되지 않고 자녀세대로 문제가 전이되게 됩니다. 제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러한 정서적 방임의 문제에 대해서 꼭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서적 방임은, 트라우마가 있는 가족들 안에서 특히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수 있습니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삶을 좀먹는 정서적 방임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