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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분노에 대하여

분노의 감정에 대한 소견

저는 오랜시간동안 감정을 억눌러 놓고 살았습니다. 사실 제가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알지 못하고 살았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어느순간, 더이상 제가 저의 감정을 억누르고 인정하지 않고 살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의 몸에 감정을 더이상 쌓아놓을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시간동안 감정을 인식하지 않고, 방치하고 살았던 것이 신기할만큼 저는 저의 감정에 무지했습니다. 


더이상 쌓아놓을 수 없는 감정이 넘치기 시작하면서, 무너진 댐에서 거대한 물폭단이 주변 마을을 덥치는 것처럼, 저의 삶은 통제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두려움, 수치감, 분노 등의 감정들이 저의 삶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고, 그 상황이 너무나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 하면서 혼자지내야만 했습니다. 


과연 내가 경험하는 것이 무엇이고, 왜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때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밖에는 아무런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매주 등산도 가고,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책도 손에 잡히는대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떤 상황이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전체적으로 하는데에도 1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내가 왜 그러한 상황에 빠졌는지에 대해서 실마리가 될만한 단서를 저는 엘리스 밀러의 책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저는 그책 안에 소개되어 있는 책들을 지속적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그동안 심각한 정서적 학대, 놀림, 역기능 가족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식하지 못했던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던 몸에 쌓여있는 분노, 수치, 그리고 두려움등을 하나씩 마주하는 과정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쌓여있는지, 지금도 저의 안에 쌓여있던 분노의 감정을 인식하고, 해소하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만약 자신이 항상 분노에 차 있다거나, 성격이 불같다는 소리를 듣고 계신 분이라면, 이러한 쌓여있고 해소되지 않은 감정처리에 대해서 한번 관심을 가져보시기를 바랍니다. 밤에 자면서도 욕을 하게 되고, 어떤 방법으로 해서든, 저는 저의 몸에 쌓여있는 분노의 감정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물론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기 때문에,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몸에 쌓여진 분노, 수치, 두려움 등의 감정을 해소 해야만,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꼭 분노의 감정일 필요는 없습니다. 두려움의 감정일 수도 있고, 수치의 감정일 수도 있고, 우리 안에 이러한 감정들이 해소되지 않고 쌓여있다면, 이러한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어서, 건강하지 못한 생각들과 행동들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혹자는 다른 사람들의 나쁜 행동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물론 용서는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용서는 자신안에 있는 분노나 수치, 두려움에 대한 인식이 마무리 되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섣부르게 자신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인식 없이 무리하게 용서의 단계로 가게 되면, 자신이 무엇을 용서하는 지도 모르면서 용서한다고 하는 말이 안되는 상황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도 저의 안에 있는 분노를 마주하는 과정을 지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힘들고 어렵습니다. 내 안에 이렇게 많은 분노가 쌓여있었다는것이 너무나도 놀랍습니다. 이러한 분노의 감정을 마주하게 되면서, 저의 삶에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갑니다. 그때 내가 너무나 화가 났었구나, 그걸 내가 인식하지 못했네, 그때 그렇게 무시당하고 맞았는데, 그것이 나에게 엄청난 분노를 만들었구나. 대학원에서 어떤 선배가 머리를 때렸는데 그게 그렇게 화가 났었구나. 등등의 모든 일들이 저에게 빠른 영화 한편을 보는 것처럼 흘러갔습니다. 


이러한 분노를 인식하지 못하고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 생황에서 직장 상사나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저의 안에 인식되지 않았던 분노들이 그 사람들에게 투사되어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분노들을 하나씩 마주하고 인정하고 흘려보내줄때, 관계의 회복은 자연스럽게 올것이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도 힘겹게 저의 안에 있는 분노들을 마주하고 흘려보내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에게 격려의 말을 해주는 것으로 분노를 인정하고 흘려보내 줍니다. "그때 너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정말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텐데, 지금까지 잘 인내하고 살았어. 너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한거야 지금까지 살아주어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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