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와중에 온라인수업으로 시작했던 개학은 결국 학년별로 나누어 학교 등교를 하는데에 이르렀다.
나는 맞벌이였지만, 감사하게도 집에 아이들을 돌봐주실 시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어쩌면 온라인학습으로
1년을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쁜 며느리였다. 정말이지, 코로나가 창궐하는 이 시기에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학교 등교는 결정되었고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본의아니게 5개월 정도를 신분없이(?) 지내던 8살 둘째가 먼저 등교를 하게 되었다. 5학년인 큰아이는 그보다 이주 늦게 학교에 가게 되었다.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학교가 비록 집에서 가깝긴 하나, 차가 오가는 길을 두세번 건너야 하고, 둘째가 아직 1학년인만큼, 당분간
어머니께서 등하원을 도와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고, 고민끝에 이 얘기을 신랑에게 말했다.
하지만 신랑은 별 생각없이 큰애가 둘째 등하원 시켜주면 안되나? 하고 내게 되물어왔다.
'듬직한 오빠잖아, 우리 큰애, 하하하'
별뜻없이 그저 듬직하게 훌쩍 자란 아들이 미더워서 한 말이었을 텐데, 나는 기어이 신랑에게 뾰족한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첫째는 둘째 보호자가 아니야, 왜 아이가 아이를 돌봐줘야 해? 집에 엄연히 어른이 있는데
그날도 나는 모범생 답게 단상위에서 판서하시는 담임선생님을 따라 칠판 한번, 공책 한번 번갈아 가며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었다. 교실에는 오직 판서하시는 선생님의 분필소리만 들렸고, 그 누구도 떠드는 이가 없었다.
그 정적을 깬건 교실 뒷문을 아무 예고도 없이 열고 들어온 내 막내동생의 담임선생님이셨다.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오신 그 선생님은 나의 이름을 불러 복도로 나오라 하셨고, 지금 니 동생이 며칠째 학교에
안나오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큰소리로 화를 내시고는 너만 공부 잘하고 모범생이면 뭐하니, 니가 동생 보호자 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라며 내 손바닥을 10대쯤 때리셨다.
나는 손바닥이 아픈건 참을 수 있었지만, 지금 집에도 없고, 어디있는지 알길도 없는 내 막내동생의 보호자가
이제 겨우 6학년인 내가 되어야만 한다는 지금 내 현실이 참을 수 없이 버거웠다. 9살짜리 막내동생의 보호자가
내가 되어야만 하는게 맞는건가?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막내가 자주 가출을 했을때 언제나 찾으러 다니는 건 나와 바로 밑에 동생이었고, 운좋게 바로 찾을 때가 많았다. 삼사일 못찾을때는 다른동네 파출소에서 새벽에 연락이 와, 할머니와 내가 택시를 타고 찾아 데려 온적도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일주일이 넘어가는데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자주 가는 친구네 집에도 없었고, 파출소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한건 우리집 어른들의 행보였다.
이제 고작 9살짜리 아이가 없어졌는데, 같이 살고 있는 할머니는 애가 밥은 먹고 다니는지 누군가에게 잡혀간건 아닌지 걱정하는 모습이라곤 보이지 않고(그때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년은 도대체 일주일이 넘게 어디서 뭘 하고 싸돌아 다니는거야' 라는 말씀과 함께 '차라리 어디가서 뒤지는게 낫겄다 에구 염병할 년' 이라는
욕만 하셨더랬다.
당시 삼촌이 가끔 우리집에 들르곤 했었는데, 할머니에게서 그 얘기를 전해 들은 삼촌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파출소에서 곧있음 연락 올거라며 한두번도 아니고 별 일 없을 거라고 말했다.
할머니께서 아빠에게 연락을 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아빠는 지금도 그런일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하시는것 같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빠는 마치 그 아이가 당신의 죄책감의 한 무게라도 되는 것처럼 우리가
그 아이 얘기 하는 걸 싫어하신다.
막내가 없어지고 보름이 다 되어 갈 무렵, 광명시청에서 연락이 왔다. 막내를 보호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할머니를 모시고 그곳에 갔을 때, 나는 가슴이 탁 막혀왔다.
막내는 위아래가 갈색인 왠 이상한 옷을 입고 그곳에 앉아 있었고, 신발도 집에서 신고 나간 그것이 아니었다.
전화주셨던 분의 설명으로는 이러했다.
'열흘도 좀 전에 어린아이가 쓰레기통을 뒤진다는 주민신고가 있어서 가봤는데, 행색도 좀 그랬고, 아무래도
가출한 아이인거 같아서 시 소관인 이곳으로 일단 데리고 왔어요, 며칠동안 집이 어디냐고 물어도 한사코
모른다고 대답하고, 집에 가기 싫다고만 해서 여러가지로 알아봤는데, 실종신고도 안되어 있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내일 고아원으로 보내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집에 정말 안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울면서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대요. 그래서 연락 드렸어요. 보호자님께서 집에 데리고 가실 거죠?'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죄인처럼 앉아있는 막내와 할머니를 번갈아 바라보며, 할머니가 얼른 막내 손을 잡고
'집에 가자, 이년아' 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며 그애를 데리고 저문을 열고 나가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돌아오는 할머니의 답변은 그게 아니었다
'고아원 보내려면 보내요, 나는 더이상 못키우니까'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막내에게 다가가 니가 집나가서 할머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며 소리를 지르고,
할머니에게도 얘 데리고 빨리 가자고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할머니는 요지부동이셨다.
그랬다. 나는 울며불며 할머니에게 매달리는게 전부인, 이제 고작 13살짜리 아이일 뿐, 동생의 보호자일수
없었다. 할머니가, 아빠가, 삼촌이, 나와 내동생들을 고아원으로 보내기로 작정하면 언제든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그저 똑같이 힘없는 어린 아이일 뿐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이어 삼촌이 도착했고, 우리에게 설명해주신 직원분과 이런저런 절차를 마친 뒤,
신랑 역시 내가 날을 세웠던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 뜻없이 한말 이었으며, 큰애에게 동생을 맡기는 부분은
자기역시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큰애가 둘째 보호자 노릇을 하는건 큰애에게 짐을 주는 것이므로 안될 말이라고도 했다.
돌이켜생각해보니 당시에 내가 그 선생님의 말씀처럼 동생들의 보호자역할을 해줬어야 맞다. 마음 둘곳 하나없어 가출을 밥먹듯 하던 아이들에게, 비록 내가 그아이들의 거취문제를 결정지을수 있는 보호자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큰언니때문에 집에 돌아오고 싶단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게끔, 외면하지 말고, 입막고 눈감지 않는 마음 따뜻하고 좋은 언니로써 마음의 보호자 노릇이라도 해줬어야 했는데..하는 늦은 후회가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