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교육을 받고 대치동에서 자란 글쓴이의 솔직한 썰풀이
얼마 전 7세 고시를 준비하는 대치동 엄마들이 유튜브에 나왔다.
영어 유치원을 졸업하자마자 학원에 다니기 위해 시험을 보는데 그 난이도가 엄청났다.
객관식 문제를 풀고 20분 안에 에세이를 쓴 뒤에 영어 인터뷰를 통과해야 한단다.
합격한 후에는 고시합격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데, 바로 미국 초3 교과서를 공부할 수 있다는 것.
7세 고시를 보기 위해 4세부터 고시반에 등록하고, 4세반에 가기 위한 시험을 보기 위해 24개월부터 준비하는 학원도 있다고 한다.
대치동의 조기 교육 열풍은 왜 이렇게나 뜨거운 것일까.
7세 아이들에게 천재적이고도 가혹한 교육이 꼭 필요한 것일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지난 10년 동안 긴 성찰과 고민을 했고, 서른이 된 지금에서야 그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상처 끝에 누군가는 영광을 누리나
길을 지나간 모든 이에게 그 상처가 너무 깊다고
나는 4살부터 엄마 손을 잡고 영재교육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 과외를 10개씩 다녔고, 초 5학년부터 수학의 정석을 공부했다.
초등학교는 중계동 은행사거리, 중고등학교는 강남 대치사거리에서 치열하게 입시공부를 했다.
대치동은 최상위권 학원에 프리미엄이 붙는다.
원장반에 가기 위해 레벨테스트를 보고, 더 좋은 학원에 가기 위해 다른 학원에서 준비를 한다.
엄마들은 학원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설명회를 쫒아 다닌다.
학원 사거리에는 아이들을 픽업하기 위한 차들이 줄을 서있다.
잠시 카페에 들러 다음 학원에 가기 전에 간단히 간식을 사먹고, 엄마들은 아이를 기다리면서 학원 정보를 알아본다.
오로지 대학만이 목적인 외길에서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전속력을 향해 달린다.
옆에 달리던 친구가 넘어져 뒤쳐져도 그저 남 일 같다.
나를 앞장서 가는 친구가 생기면 터질 것 같은 심장에 더더욱 박차를 가한다.
저 너머에 있는 결승점이 아른거린다.
엄마와의 2인 3각 경기 끝에,
나는 결과적으로 대치동에서 SKY에 합격했다.
하지만 나는 사교육을 반대한다.
조기교육은 상술이며 집단적 광기라 생각한다.
사교육으로 대학을 갔으면서 이제와서 사교육을 반대한다고?
사다리 걷어차기 혹은 위선 아니냐고?
조금만 참고 들어주시라.
여기에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
1. 조기교육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로 인해 엄마와의 관계가 무너졌고,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방법 중에 '경쟁'이라는 한 가지 방법밖에 배우지 못해, 성인이 되어서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2. 대치동을 벗어난 후, 사교육 없이도 명문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부모가 아이보다 앞서 나가지 않고, 아이의 성장을 충분히 기다려주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나처럼 부모와의 관계가 망가지지도, 어린시절의 상처로 괴로워하지 않아도, 결승전에 도착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에 대해 깨닫게 해주었다.
3. 한국을 벗어난 후에는 또한, 출신 대학과 무관하게 사회적 성취를 거둔 인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에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대학이라는 수단에 매몰되지 않고,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 라는 삶의 본질적인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는 점이다.
이처럼 나는 그간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조기교육 및 과한 사교육은 리스크가 큰 선택이라고 결론짓게 되었다.
사교육에 모든 걸 걸었는데 만약 입시에 실패하면? 그것은 진정 재앙이다.
돈도, 자식과의 애착관계도, 행복한 유년시절도, 그렇게 손에 쥐고 싶었던 가짜 성공마저, 무엇도 남지 않는다.
희망 끄뜨머리라도 잡아보려 재수와 삼수, 반수와 편입을 반복할 뿐이다.
이렇게까지 투자했는데 실패하면 끝이라며 배수진을 치고 아이를 더 몰아붙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보다 입시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조기교육에 과하게 열을 올릴수록 정작 입시에서 미끄러질 가능성은 높아진다.
차도 20만 키로를 넘게 달리면 퍼지는데,
20년 가까이 공부한 아이가 지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벌주의가 강한 한국에서 소위 '명문대'는 여전히 어느정도 유효한 인증서이다.
하지만 이 넓은 세계에 오로지 대학만이 유일한 목표가 되어 왜 SKY를 가야하는지, 왜 하필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답을 구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채, 이것이 나의 꿈인지 엄마의 꿈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대치키즈'로 자라난다면?
그것은 한때 반짝이고 특별했던 아이가
남들보다 몇 문제 더 맞추는 것으로
인생이 바뀔 것이라 세뇌당해
평범하고 불행한 '학생 A'로 퇴색되는 과정에 불과하다.
나 같은 대치키즈 출신의 새내기가 좋은 대학나왔다는 간판 하나로 으스댈 시간에, 누군가는 스스로의 한계를 대학으로만 규정짓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세상을 즐거이 탐구함으로써 본인만의 특별한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사실을 나는 왜 진작에 몰랐을까?
사교육으로 입시에 성공해도 그것은 본질적인 성장이 아니기에 가짜 성공으로 그칠 가능성이 있다.
'대학만 잘가면 장땡', 혹은 '의대만 가면 출세' 등등의 피켓구호를 잠시 내려놓고, '내 아이의 진짜 성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성공하려면) = (의사, 전문직) = (명문대) = (수능 내신 잘봐야함) = (선행학습 필수) = (어릴때부터 공부시켜야함) = (대치동이 명당)
이제부터 천천히 풀어나갈 이야기는 성공 방정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교육 시장에서 당연하게 통용되는 이 공식이 우리 가족에게 어떤 비극의 씨앗이 되었는지, 그렇다면 행복의 씨앗이 되는 다른 성공 공식은 없는지이야기해보고자 한다.
7세고시부터 시작해서 수능과 행정고시까지, 고시 전문가로 살아왔던 나는 지금 사실상 백지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전혀 다른 전공으로 학교를 다시 다니고 있고,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그간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생애경로를 가진 인재들을 만나면서 대치키즈의 성공방정식은 유일하지 않다는 생각이 강화되었다. 그래서 내 경험과 다른 이들의 경험을 종합하여, 조금 색다른 성공공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우리 엄마의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본다.
어릴 때부터 애증의 관계였던 우리 엄마는 암으로 세상을 일찍 떠나셨다.
엄마가 호스피스에 계실 때, 짧지만 진실된 말씀을 해주셨던 것이 가슴에 사무치게 남는다.
엄마는 나를 키우면서 행복한 순간이 참 많았는데 그때는 그게 행복인 줄 몰랐다고 하셨다.
나를 가혹하게 키워서 미안하고, 사랑하고,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엄마와의 마지막인 것이 나는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끝을 향해 달려가고 나면, 고난 끝에 목표를 이루고 나면, 모든게 풀릴 것이라 생각했다.
엄마에게 서운한 것은 풀리고 엄마가 나에게 불만족했던 것이 해소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서로 쌓인 것이 너무 많았고, 주어진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나는 유년기부터 이어진 엄마의 집착에 질려버려 일찍 독립했고, 엄마는 내가 대학에 간 이후 '빈둥지 증후군'에 시달리시며 외로운 시간을 보내셨다.
만약 엄마와 내가 함께 있는 시간동안 사소히 웃고 떠들며 대화했다면,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나 자체로 인정해주시고 내 성장을 응원해주셨다면, 내가 좀 더 빨리 철이 들어서 엄마에게 서운함 없이 감사함을 가졌더라면,
엄마는 지금 살아계실 수 있었을까?
돌아가시기 전에라도 우리 모녀는 행복하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나는 내 딸과 내가, 나와 엄마의 삶의 궤적을 밟지 않기를 바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더랬다. 그 와중에 7세고시에 대한 다큐를 보고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어릴적의 나와 같은 일을 경험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4세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의 거의 모든 기억이 아주 생생하게 남아있다.
기억력이 좋다기 보다는 트라우마로 남아 잊혀지지 않는 편에 가깝다.
그래서 조기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는지, 어른이 된 지금도 그들의 입장에서 증언을 할 수 있다.
또한 치열한 한국 입시에서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둔 경험자로서 내가 받았던 많은 교육 방식 중에 어떤 것이 유효했고, 어떤 것은 무익했는지를 나름대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혹시 내 아이가 7세 고시의 엘리트 코스 위에 있다면, 혹은 트랙 위에 올라타지 못해 불안하다면, 우리 아이가 힘들어 한다면, 내 경험이 조금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어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