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도 실력이라는 결과지상주의에서 벗어나자
많은 사람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던 그 역사적인 순간은 기억하고 있지만, 독일 통일의 뒷이야기는 잘 모른다. 그리고 이 역사적 사건이 한 사람의 우연한 말실수로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모른다.
1980년대 후반 동독 사람들이 여행을 빌미로 오스트리아를 건너 서독으로 넘어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동독 정부에서 출국 규제를 발표한다. 발표 후 동독 사람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게 되자 동독 정부는 곧바로 출국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발표하기 위한 기자 회견을 개최하기로 하였다.
출국 규제 완화 관련 회견문은 동독 공산당 대변인인 귄터 샤보브스키라는 사람이 발표하였고, 기자 회견은 동독 내 및 세계에 방송된 생방송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독일 통일 사회당 서기장인 에곤 크렌츠의 전달된 문서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게다가 만취 상태였다는 소문도 있었다) 결국 그는 출국 규제 완화에 관한 내용을 '베를린 장벽을 포함하여 모든 국경 통과 지점에서 출국이 인정된다'라고 잘못 발표한다. 언제부터 출국 규제가 완화되냐는 이탈리아 기자 질문에 그는 '즉시 지금부터(sofort unverzüglich)'라고 다시 한번 잘못 발표한다. 기자 회견을 본 동베를린 시민들이 곧바로 베를린 장벽에 설치된 검문소로 쇄도하여 베를린 장벽을 무너트리는 역사적인 순간을 연출하였고, 이후 독일이 통일되는데 이르렀다. 이런 세계적인 사건조차 우연적 요소(운)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탁월한 업무 처리 능력, 윗사람들과의 관계, 회의를 주도하는 화려한 언변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는 이런 능력도 없고 심지어 ‘저 사람이 어떻게 임원이 된 거지?’, ‘저 사람은 왜 승승장구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인물이 종종 보인다. 직장에서의 성공이 명확한 논리적 인과 관계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직장에서의 성공은 운칠기삼이라고 다들 이야기하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직장생활이 가끔 카드게임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렇게 느꼈던 이유는 아무리 성공해보려고 노력해도 성공으로 반드시 이어지지는 않는 상황이 내가 돈을 따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따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나에게 항상 좋은 패가 들어오지 않는다. 회사에 갓 입사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나와 케미가 잘 맞고 유능한 멘토를 만나면 회사에 금세 적응하고 많은 것을 배우면서 성장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그런데, 그 반대의 상황을 맞게 되면 성장은커녕 멘토 대신 허드렛일만 하다가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카드게임에서 안 좋은 패만 계속 받으면 게임도 하기 싫고 돈은 돈 대로 계속 나간다)
두 번째, 내가 좋은 패를 들고 있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내가 회사에서 크게 돋보일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서 전사 포상 후보로 올라가더라도 더 좋은 프로젝트에 밀리는 상황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게다가 그 다음번에는 내가 하던 프로젝트보다 못한 것들이 상을 받는 웃지 못할 상황도 생긴다. (카드게임에서 상대방이 스트레이트 플러시였고, 나는 풀하우스여서 졌는데, 다음 판에서는 트리플로 이기는 경우와 비슷하다)
세 번째, 항상 어디선가 방해꾼이 나타난다. 회사는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나의 의도와 무관하게 나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이 ‘얼마나 잘되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쳐다볼 수 있다. 그들은 절대로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일부러 협업을 거절하거나 프로젝트를 망쳐놓을 수도 있다. (주인공이 돈을 잘 따면 어디선가 악당의 수하들이 나타나 약을 타는 영화 장면은 한 번쯤은 보셨을 것이다.)
터닝 크루거 효과(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현상)와 무관하게 사람은 자신을 실제보다도 훨씬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직장에서의 성공을 거뒀을 때, 우연적 요소를 배제하고 온전한 자신의 실력만으로 쟁취해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대표적으로 ‘운도 실력이다’라는 비논리적 표현이 있다. 이 말이 무서운 이유는 어떤 과정을 거치든 성공만 하면 실력이 있는 것이라는 결과 지상주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더가 이런 생각을 가지면 더욱 위험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운빨(?)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성공 공식을 구성원에게 강요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은 뷰카(VUCA) 시대('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이 심한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한 가지 성공 방식으로는 성공을 이어가기 힘들다. 모 그룹의 일처리 방식에서 강조하는 ‘입체적 로케이션 파악’을 통해 대응 방법을 유연하게 바꿔야 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방식만을 강요한다면 일의 성공 가능성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구성원과의 갈등도 심화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성공에 도달하지 못한 구성원들은 자신보다 노력과 역량이 부족하다고 폄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은 일에 따라서 생물(生物)처럼 작용한다. 자신이 일했을 때는 운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가도 구성원이 일할 때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리더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했는데, 왜 넌 못하냐?’라고 질책을 하면 그들은 소극적으로 변할 뿐만 아니라 운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에 대해서 지나치게 휘둘리게 될 수 있다. 실패하더라도 털어버리고 다음번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하는데, 다음번에는 제발 나에게 우주의 기운이 나를 감싸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실망과 후회의 차이점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실망은 말 그대로 기대와 결과에 대한 비교일 뿐이다. 반면 후회는 선택하지 않은 결정을 취했을 때의 결과와 현재를 비교하는 것이다. 만일 결과와 운에 집착하는 구성원이라면 일이 실패했을 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고 치부하고 넘어갈 것이다. 이것은 실망이다. 반면, 과정을 중요시하는 구성원이라면 과정을 복기하면서 잘못된 점을 찾아낼 것이다. 이것은 후회다. 그리고, 이런 후회를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힘을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라고 한다.
리더가 성공이 주는 주변의 칭찬, 관심 그리고 동기부여에 현혹되어 운도 실력이라는 결과 지상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리더가 구성원에게 무조건 성공과 자신의 방식을 그들에게 강요하기보다는 그들이 실패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또한, 실패하더라도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과정을 복기함으로써 회복 탄력성을 기를 기회를 줘야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과정을 통해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그들이 회복 탄력성을 통해 운이 부정적으로 작용했을 때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다면, 직장생활에서의 수많은 우연에 흔들리지 않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