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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혀둔 필름, 익어가는 사람

봄날의 기록

by 바다 김춘식

필름 두롤이 회생불가 할 수도 있다는 문자를 충무로 사진 현상집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실패가 늘 섭섭한 이유는 정성을 담은 사진이기도 하지만 놓친 물고기가 원래 큰 놈으로 보이기 때문이겠지요. 아무튼 이번 작품은 폭싹 망했어요.


고가의 필름값에 대응하기 위해 필름을 얻는 방법은 주로 철 지난 필름을 당근에서 싼값에 구입을 하거나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 다하면 오래전 아부지 세대에 묵혀둔 필름을 가져다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후지칼라 슈퍼 36은 친구 J가 소중하게 챙겨준 것인데 무려 26년 전 제품으로 그때 농협 판매가격이 1,900원이었네요. 지금 시세가 2만 원이 넘으니 10배 넘게 오른 샘이네요. 망한 회사 제품 코닥골드는 당근으로부터 떨이 구매한 것으로 20년 전 제품으로 확인이 되고 지금까지 오래도 살아남아 파는 분이나 사는 놈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김치, 젓갈, 홍어 등은 묵을수록 오묘한 좋은 맛을 낸다 합니다만 지나치게 묵어 익으면 초가 되어 쓸모없어지기도 하겠지요. 사람은 그러하지 않겠지요. 묵혀둔 사람을 우리는 진국이라 하고, 또 늙는 것이 아니라 익는 거라 하잖아요.


어찌 사진집에서 망한 두롤을 감사하게도 심폐소생술로 최대한 살려 주겠다는 전통이 왔습니다. 역시 묵혀 한계 임계점이 지나면 초가 되는 게 인지상정이겠지요. 초가 되기 전 쓸모를 찾는 게 우선이겠지만 초가 된 것을 이미 알았다면 그만할 때가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핫셀블러드 6x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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