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아주 작고 사소한) 17화

징크스

by 철용

비가 쏟아질 듯, 짙은 먹구름이 하늘을 짓누르고 있었다. 두터운 구름 사이로 한 줄기 빛조차 스며들지 못해, 내 시야에 비친 세상은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회색빛이 내 기분을 닮은 것일까, 아니면 내 기분이 하늘을 닮아버린 것일까.


징크스

어릴 적부터 내 운은 하늘빛과 묘하게 맞물려 움직였다.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떠 있는 날이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그만큼 운도 따라줬다. 반대로 오늘처럼 하늘이 잿빛으로 내려앉은 날에는 꼭 불길한 일이 닥쳐올 것만 같았다.

언제부턴가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만의 점괘를 점쳤다.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부터였을 것이다.


며칠 전, 경찰과 성 형사의 부탁으로 범인을 낚기 위한 글을 써 올렸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나면 좋으련만, 오늘 같은 하늘빛을 보아하니 만약 연락이 온다면 불길한 소식일 것만 같다.


‘범인도 사람이면, 이렇게 전국적으로 난리인데 설마 또 같은 짓을 벌이겠어?’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헛일이 된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경찰들도 참, 이런 걸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불길한 예감의 무게를 경찰 탓으로 돌려보려 하지만, 가슴속 두근거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약이 어딨 더라….”


자꾸 잊어버리는 버릇을 알기에, 아내는 약병을 테이블 한가운데에 두곤 했다. 알프라낙스 한 알을 삼키며 진정을 기다린다. 너무 차가운 물 때문일까. 이가 시리게 저린 통증이 잇몸을 타고 뒷머리까지 찌릿하게 울린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성 형사의 전화였다. 나는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경찰서 성형사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차마 “잡혔냐”라고 묻지 못하고 기다리자, 형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궁금해하실 것 같아 전화드렸습니다. 범인이 잡혔습니다.”

“아, 정말요? 누구예요? 어떤 놈들이에요? 어디서 잡았어요? 왜 그런 짓을 한 거래요?”


기다림의 끝이라서였을까, 아니면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을까.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자세한 건 조사를 더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네… 그래도 다행이네요.”

“다행이라…. 어차피 곧 아시게 될 테니 말씀드리지만, 완벽하게 잡은 것 같진 않습니다. 뭐랄까… 더 큰 게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네? 큰 거라니요?”

“아직 단정할 순 없지만, 너무 쉽게 잡혔습니다. 아무튼 조사를 더 진행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통화가 끝났지만, 의문은 더 커졌다.

‘뭐지? 하나도 안 기뻐하는 것 같은데… 범인이 진짜 범인이 아니란 건가? 큰 게 있다니… 또 무슨 소린 거야?’


나는 그저 글을 썼을 뿐이다. 그런데 ‘큰 거’라니. 내 글이 뭐라고 일이 이렇게 커지는 거지.


만약 진짜 범인이 따로 있다면, 나는 꼭 묻고 싶다.

‘왜? 내가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왜 내 글이어야 했냐고….’


창밖을 보니,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습관처럼 내일의 날씨를 확인한다.

-맑음-

그래, 오늘은 이걸로 끝이다. 내일은 분명 괜찮을 거야. 점괘가 그러하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이잉— 지이잉—

또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엔 발신번호 제한.

‘스팸인가?’ 망설이기도 전에 손이 먼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

“말씀 없으시면 끊겠습니다.”

“분.노.를. 기.록.하.는. 건. 쉽.지.만. 멈.추.는. 건. 어.렵.다.”

낯익은 문장이, 차갑게 변조된 기계음으로 흘러나왔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누구야? 뭐 하는 놈이야? 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당신 누구야!!”

내 목소리가 떨림과 함께 커졌다.

“경.찰.들.이. 좋.아.하.던.가? ㅋ.ㅋ.ㅋ. 당.신.의. 열.렬.한. 팬. 정.도.로. 생.각.해.두.면. 돼.지.”

“장난하지 마!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당.신.의. 이.메.일.을. 보.지. 않.았.더.군. 그.리.고. 이.렇.게. 쌩.뚱.맞.은. 짓.을. 벌.여.버.렸.고.”

“뭐라고? 이메일?”

“괜.찮.아. 그.동.안. 고.생.한. 경.찰.들.에.게. 주.는. 선.물.쯤.으.로. 생.각.해.”

“이메일? 선물? 뭔 소리야, 대체…”

“당.장. 확.인.해.보.는. 게. 좋.을.거.야. 그.리.고. 이.메.일.에. 적.힌. 대.로. 행.동.해. 잊.지.마.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길.거.야.”


전화가 끊겼다.

손끝이 차갑게 굳어버렸다. 거미줄에 걸린 작은 벌레가 된 듯, 오싹한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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