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안 Aug 06. 2021

운명을 믿나요?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나의 고양이


2021년 7월 22일은 뽀또가 우리 집에 온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오후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더니 귀를 찌르는 바람소리와 함께 폭우가 내렸다.

뽀또는 창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에 마징가 귀를 하고 창문 밖을 신기하다는 듯 구경했다.

뽀또에게 말을 걸었다.

작년에 넌 저 비를 맞고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안락한 집 안에서 창 건너 비 구경을 하고 있지. 널 구한 건 나라는 걸 기억해.

듣는 둥 마는 둥 시선은 창에 고정,

1년 새 네 배는 커진 둔둔한 모습이 사랑스러워 껴안으려니 꺄앙 싫다는 표현을 하며 도망가버린다.

생후 40일 추정 때부터 허피스 때문에 안약을 하루에 10번씩 넣고, 가루약을 세 번씩 먹여야 했으니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싫을까.

지금도 약이라면 치를 떨지만 그래도 손톱 깎는 건 잘 참아주는,

간식을 위해서라면 하이파이브도 해주는 착하고 똑똑한 고양이로 자랐다.






작년에도 비가 많이 왔다.

이사 오기 전 동네에는 길고양이들이 많았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았을 길냥이가 우리 집 1층 필로티 주차장을 거처로 삼고 있던 터라 주차장에는 항상 물그릇과 밥그릇이 있었다. 퇴근해서 돌아오면 항상 공동 현관문 앞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던 녀석은 아는 척만 하면 다 쉰 목소리로 인사하며 주차장 안 쪽 자기 보금자리로 사람들을 데려갔다. 따라가면 땅바닥에 발라당 누워 배를 보여주던 살가운 성격이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집으로 올라가기 전에는 누가 밥이랑 물은 잘 챙겨줬는지 체크하고 5분 정도 서성이는 게 퇴근 일과가 되었다. '미안해, 먼저 갈게. 밥 잘 먹고 있어.'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면 헤어짐을 알기라도 하는 건지 빌라 안까지 따라 들어오지 않는 예의 있는 고양이였다. 



 그날도 그 이름 모를 고양이가 밥은 잘 먹는지, 없으면 물그릇이라도 챙겨주려고 갔던 날이었다. 밥도 수북했고, 깨끗한 물도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 바퀴 둘러보는데 냥이 집 뒤쪽으로 처음 보는 낯선 고양이가 누워있었다. 생후 40일 정도 되어 보이는 크기였다. 비슷한 사이즈의 아기 냥이를 구조해본 경험이 있어 가늠할 수 있었다. 처음엔 자는 줄 알았다. 몇 초만에 깨달았다.

별이 되었다는 걸.

밥 냄새를 맡았는지 어디선가 나타난 새끼 고양이가 끝내 밥에 닿지 못한 채 쓰러져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건넌 것이다.

설마 아직 숨이 붙어있진 않을까 다가갔는데, 얼굴에 파리가 득실득실한 걸 보며 뒷걸음을 쳤다.



생경한 충격에 엉엉 울며 구청에 신고를 했다. 20분 만에 출동한 구청 관계자 둘은 한 명씩 삽과 파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현장 사진을 찍는 내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눈이 벌건 내가 보기에 안 좋았는지 먼저 들어가라고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챙겨 온 삽으로 고양이를 떠서 파란색 쓰레기봉투에 담을 거란 걸.




목숨의 무게가 저마다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고양이는 아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광경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제일 먼저 목격한 사람으로서 이상한 부채감 같은 게 있었다. 자기 전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애도의 표현이라곤 기도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 외에는 없었다. 못 그리는 그림으로라도, 이렇게라도 기억해야 했다. 네가 잠깐이나마 이 세상에 존재했단 걸 기억하려고, 그 사실을 한 명에게라도 더 알리려고 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아픔 없는 곳에서 배불리 밥을 먹고 즐겁게 뛰놀길, 그리고 다음 생엔 네 발 달린 짐승으론 태어나지 않길. 다시 한번 애도한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로드킬 당한 고양이가 핏자국을 아스팔트 위로 길게 그리며 내장이 쏟아진 채 방치되어있는 사체를

동네 어르신들이 혀를 차며 지나가는 동안 내 손으로 구청에 신고해 인계를 한 게 두 번째.

구내염이 심해진 1층 고양이가 한동안 침을 질질 흘리며 악취를 풍기다 이내 자취를 감추어버렸을 때가 세 번째.

이때도 참 많이 울었다. 미안해서. 한 번이라도 더 관심을 주고 병원에라도 데려가 볼걸. 죄책감 때문에, 이제 아이가 없는 걸 알면서도 이따금씩 주차장 안쪽으로 들어갔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공간에서 다시 삐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전 길가에 방치된 세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출근길에 발견했는데, 두 마리는 어디갔는지 한 마리만 남아 주차장 안쪽까지 들어와 있었던 거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흔적 (아마 전 고양이를 돌봐주셨던 분인 듯 짐작했다) 이 있었지만,

하루 종일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보낸 세 마리의 고양이, 그리고 외면하면 네 마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 열 한시에 24시간 동물센터로 아이를 데리러 가려고 안 쓰는 신발 박스에 수건을 깔았다.

1층 공동현관에서 우연히 고양이를 돌봐주고 계시는 이웃분을 마주쳤다.

그 빌라의 제일 꼭대기에서 2년을 사는 동안 현관에서 오가는 주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운명처럼 마주친 그분에게 이미 병원에 데려갔다 왔고, 결막염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임보를 위해 그 새벽에 온갖 고양이 용품을 시켰다.

데려온 다음 날, 폭우가 내려 임시로 썼던 주차장의 집이 물에 잠겼다.

비 오는 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뽀또를 데리러 온 어미가 슬프게 뽀또를 찾으며 야옹야옹하는 걸 본 동생이 영상을 찍어 보냈다. 또 한참 울었다.

괜한 생이별을 시킨 건 아닐까, 별별 생각을 다 하며.


그렇게 비가 많이 온 그날 밤, 뽀또의 형제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어미가 미처 데려가지 못했던 뽀또는 이제 더 이상 비를 맞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창가에서 내리는 비를 구경만 할 뿐이다.



내가 없는 사이 혹여 잘못되진 않을까 매일 출근하기가 무서웠던 250g 아가 고양이는


1년 동안 무럭무럭 자라 5kg가 되었다.












어쩌면 너와 나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앞선 죽음을 봤기에 외면할 수 없었고, 아픔을 알기에 아픈 널 기꺼이 받아들였고, 병원만 가면 돌변하는 너를 보며 '어릴 적 크게 아프면 별 거 아닌 일에도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수의사의 말을 이해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널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