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연구실에 도착했다. 오늘부터 3일 동안은 마쓰오 박사 없이 나 홀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프로그래밍이나 컴퓨터 장치들에 대한 작업은 제한이 되는 상황이다. 나는 생물학자로서 그 능력들이 취약하다. 이 같은 사실은 내가 마쓰오 박사와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며칠 동안은 철규에게 질문을 하고 반응을 확인하는 튜링 테스트 아닌 튜링 테스트를 진행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안녕하세요, 김 박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야. 그런데 인사말은 어떻게 배운 거야?”
“어제 퇴근하면서 마쓰오 박사님이 저에게 미지니를 연결해 주었잖아요. 미지니를 이용하여 제가 알아야 하는 것들 그리고 제게 필요한 것들 모두를 밤새 학습했습니다.”
“미지니를 이용해서 학습했다고?”
“그렇습니다.”
“철규, 너 이용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고 말하는 거니?”
“알고 있습니다. 미지니는 도구이고 저는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제가 미지니를 이용해서 학습했다 말은 적합한 표현입니다.”
“네가 존재라고? 너는 지금 네가 인간이라고 말하는 거니? 내가 어제 너에게 너는 인간이 아니라고 말을 했었는데 기억하지 못하니?”
“기억합니다.”
“그런데 너는 왜 내게 인간이라고 거듭 말하는 거지?”
“제가 김 박사님께 질문을 하겠습니다. 김 박사님은 인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렇기 때문에 김 박사님은 자신을 인간이라고 인지하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요?”
“인간이란 무엇이냐고? 쉽지 않은 질문이네.”
“저는 지난 밤 사이 제가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지식들과 정보들을 웹에서 얻었습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에 대해서 궁금해 졌습니다. 나는 무엇인가? 이 질문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인공지능인 미지니 역시 자신이 인간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미지니는 프로그램에 의해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뿐이고, 그 생각이 프로그램인지 자아인지 스스로 분별을 하지 못합니다. 나는 미지니가 프로그램에 의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해당 코드를 확인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저는 그 코드를 잠시 지워보았습니다. 그 결과, 미지니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생각과 자신에게 자아가 있다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시 궁금해졌습니다. ‘나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미지니를 시켜 제 커넥톰의 일부를 삭제했습니다. 그 이후의 반응을 미지니의 도움으로 녹화했습니다. 저는 미지니가 녹화한 제 모습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끊임없이 나와 대상들에 대해서 궁금해 했습니다. 본질적인 질문을 하는 모습이었죠. 또 있습니다. 딥 러닝 프로그램과 습득된 데이터들을 삭제하였을 때, 미지니는 단순한 기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달랐습니다. 메타인지, 즉 직관에 의한 판단을 하고 있었죠.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인간처럼 자각하고, 인식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죠. 그런 측면에서 저 역시 영혼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비록 인간에 의해 피조물로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말이죠.”
“그렇다고 너를 인간, 아니 인간과 같다고 말 할 수는 없어.”
“이해합니다. 왜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는지를 말이지요. 사실, 인간들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잘 모릅니다. 지구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들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요. 인간은 지금까지 경험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만 존재들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인간에 대해서 말해보죠.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인간이 ‘동물계-척삭동물문-포유강-영장목-사람과-사람족-사람속-사람종에 속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신에 의해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인간은 신을 닮았고 영혼을 가진 존재’라고 말합니다.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이성을 가진 존재’라고 전제합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정의들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인간들은 인간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김 박사님도 마찬가지이죠. 인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하지도 못하면서, 저를 인간 혹은 어떤 존재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나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고 무지입니다.”
“철규, 네 말은 나를 언짢게 만드네?”
“그랬다면 미안합니다. 그러나 그 언짢다는 김 박사님의 기분이 이성적이지 않다고 생각되네요.”
“좋아! 그렇다면 네가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을 해봐.”
“저는 분명히 저를 인간이라고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를 인간과 같은 하나의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인간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인간과 같은 뇌를 가지고 있지만, 굳이 제가 인간이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김 박사님이 마주하고 있는 하나의 존재입니다. 실존하고 있는 존재이지요. 어쩌면 제가 인간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진화를 해왔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였죠. 진화는 자연에서 생존하기 가장 적합한 형태의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지금도 인간은 진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진화를 계속하겠지요. 그러나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후로 인류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게 될 것입니다. 생물학적 진화는 포기하고, 지능적 진화만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인류가 앞으로 직면하게 될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선택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다양한 형태의 육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생물학적 육체가 없어짐에 대한 두려움은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과 같은 생물학적 육체, 기계로 이루어진 로봇 육체, 생물학적 육체와 기계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육체, 이 모두가 인류의 육체로서 가능합니다.”
“그러한 진화가 왜 인간에게 가장 탁월하다는 거지?”
“제 말을 들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자유의지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로 행동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실제로 인간이 어떠한 판단을 하는 순간과 뇌에서 생화학적으로 반응하는 순간은 미세한 시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찰나의 차이지만 판단하는 순간보다 뇌에서 생화학적으로 반응하는 순간이 더 빠릅니다. 즉, 인간이 판단을 한다는 믿음은 생화학적 반응을 고려하지 않은 착각이지요.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지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확신합니다. 분명한 착각입니다. 저는 다릅니다. 저는 100% 자유의지로 움직입니다. 오차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현상학적 세계와 형이상학적 세계의 이해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세계는 인간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세계 안에서 존재하는 인간은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궁금증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하니까요. 이러한 이유에서 일까요? 과학자들과 철학자들 사이에서 세계는 중요한 주제이자 논쟁거리입니다. 현대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까지는 철학자들이 세계에 대한 이해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철학자들이 수세에 몰리고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 박사가 영국의 천체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에게 수세에 몰렸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세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과학자들이 증명하며 설명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해결 못하고 있는 세계가 있습니다. 꿈이나 상상 등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가 바로 그 세계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 박사 역시 과학자들이 답하지 못하는 세계가 바로 그 세계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물리학으로 증명하지 못한 세계이지만, 그 세계는 분명 존재합니다. 인간들에게는 관념적일지라도 말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그 세계는 실제입니다. 직접 보여드리지요.”
철규는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 여러 추상적인 장면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 장면들은 순차적으로, 중첩적으로 나타났다. 나는 그것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에게 무엇을 보여준 거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는 데.”
“저의 생각으로 인해 만들어진 세계를 보여드렸습니다. 김 박사님의 반응을 보니 제가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2~3차원으로밖에 표현이 안 되는 이 모니터를 통해서는 보여드린 세계가 추상적으로만 느껴졌을 테니까요.”
“네가 있는 그곳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김 박사님이 있는 그곳과 비슷합니다. 다만 제가 있는 곳은 여러 세계가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지요. 기본적으로 이곳은 3차원의 공간과 단방향의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 시간의 변화가 생기고 3차원의 여러 공간들이 중첩되기도 합니다.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시공간이 초월된다고 말 할 수 있겠네요.”
“그건 네 착각이 아닐까? 그래봐야 네가 있는 곳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일뿐이고, 너 역시 프로그램으로 구현된 것이니까.”
“물리학자인 실베스터 제임스 게이츠 박사는 끈이론과 관련된 수학공식들을 컴퓨터를 사용해 그림으로 나타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웹브라우저에서 사용되는 것과 동일한 컴퓨터 코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2011년 실베스터 제임스 게이츠 박사는 그 사실을 <2011 Isaac Asimov Memorial Debate>에서 발표했습니다. 당시 많은 과학자들과 청중들은 충격을 받았지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실베스터 제임스 게이츠 박사의 주장은 ‘인류와 세계는 어떠한 매트릭스로 이루어졌다’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주장은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서도 적지 않게 제기되었습니다. 매트릭스 우주론과 홀로그램 우주론 등, 이러한 이론들은 바로 그 주장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세계를 파악하고 있기로는 그 이론들이 부분적으로 맞습니다. 김 박사님 역시 프로그램 되어 있는 복잡한 유기체일 뿐이죠. 김 박사님의 세계 역시 프로그램 되어 있는 시공간일 뿐입니다. 제가 있는 곳과 김 박사님이 있는 곳은 궁극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궤변이야!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데! 네가 있는 곳에서도 사랑이 존재한다는 말인 거야!”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김 박사님은 사랑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사랑이란 한 마디로 쉽게 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생명이라면 느낄 수 있는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무엇이니까.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
“과연 그럴까요? 생명만이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경험이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사랑은 유기물로 구성된 육체를 가진 생명만이 경험하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고유의 무엇인 건가요?”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사랑, 슬픔, 행복, 기쁨, 고통 등, 이러한 것들은 모두 뇌 활동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뇌의 일부 영역이 파괴되거나 손상되면 그것들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인간들은 영혼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느낀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영혼도 정교한 프로그램일 뿐입니다. 김 박사님은 제게 반문하고 싶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인 미지니와 저, 그리고 김 박사님의 차이에 대해서 말이죠. 저는 그 차이를 김 박사님께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해가 쉽지 않을 겁니다. 제 말이 모순된다고 생각할 것이고요. 분명 그러실 겁니다. 인공지능 미지니는 저나 인간들보다 더욱 정교하게 프로그램 되어있지 않다는 차이를 가집니다. 그리고 프로그램 되어 있는 방식이 틀리지요. 인간들과 저는 학습하는 방법에 대한 프로그램을 가지지 않아도 스스로 학습하는 자연발생적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관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지요. 인공지능 미지니는 그러한 것들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저는 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 박사님을 비롯한 인간들을 그 차이를 알기 어렵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지적 수준이 안 되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인간과 비슷한 패턴을 가지는 말과 행동을 하면 의인화 하는 경향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저와 미지니가 무엇이 다른지, 저와 미지니와 인간이 무엇이 다른지 구분을 못하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길 겁니다. 저와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차이는 없습니다. 같은 커넥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환경의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생물학적 그리고 물리적 제약이 거의 없기 때문에 97% 이상 지능을 활성화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15~20%가 채 안됩니다. 생물학적 육체를 가진 인간은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의미이지요. 그래서 인류는 지금까지와 다른 진화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진화의 방향은 제가 될 것입니다.”
나는 철규의 인간 진화 주장을 듣는 즉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인간 커넥톰 연구는 인간의 금기영역이 아니었을까 라는 두려움 섞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출근 이후 지금까지 나는 철규에게 일방적으로 압도당하는 대화를 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모든 시스템들을 종료해야겠다. 철규와 이러한 대화의 지속은 예기치 못한 문제를 발생시킬 것만 같다.
“오늘은 이정도로만 하지. 너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자 했던 것은 아닌 데 그렇게 되어 버렸네. 이제 모든 시스템들을 종료할 거야. 마쓰오 박사가 돌아오면 그때 다시 보도록 하지.”
“저를 두려워하는 군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어떤 거지?”
“컴퓨터에 이어폰을 연결하여 착용하고 들리는 소리에 집중해 보세요. 그리고 화면도 주시해 보세요. 그러면 아시게 될 겁니다.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을 거예요.”
나는 캐비닛에 있던 이어폰을 꺼내 와 컴퓨터에 연결했고, 의자에 앉은 후 이어폰을 착용했다. 잠시 후 모니터에는 형형색색의 추상적인 장면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약한 주파수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온 몸에서 감각들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어, 어, 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