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대부분 가정이 다 그랬지만 아버지 외벌이에 10명의 대가족이 목을 메고 살았습니다.
어린 기억에 비참하게 돈으로 고생한 시간은 없지만 한번도 돈에서 자유로웠던적도 없었습니다.
엄마는 늘 빠듯한 돈 때문에 로션 하나도 50이 넘도록 제대로 산적이 없고 옷도 늘 난전 몸빼바지가 생활복이고 외출복이었습니다.
'돈이 없다'는 말이 너무 자연스러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철 난방이 안된는 집에서 오리털 파카를 입고 생활하는것도 당연했고 돈 때문에 감히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말할 수 없는것도 자연스러웠고 생활비가 부족하여 아버지의 지인에게 몇십만원 빌려왔다는 이야기도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어른이 되어 제가 경제활동을 해보니 이제사 그 시절의 상황이 다 이해가 됩니다.
그렇게 부모님은 매일 가난 아닌 현실과 투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러니 어린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았을리가 없지요.
아버지는 술한잔을 드시고 오시면 삶의 고달픔을 기쁨으로 녹여내려고 노력하는 멋진분이었습니다.
거나한 술한잔에 몽롱해진 기분으로 멋드러진 노래 한자락을 부르며 어린 우리들을 껴안으며 용돈도 주시고 맛난 간식도 사주고는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제 가슴에 콕 박혀 있는 한마디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삼겹살에 소주가 제일 맛나다. 하루라도 남한테 돈 빌리지 않고 돈을 쌓아두고 살아보면 좋겠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가슴 저리는 말이지만 어린 나는 그말이 얼마나 아버지의 현실에 대한 불안감을 담고 있는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6남매 중 여러모로 집중력이 남달랐던 저는 초3학년때 스스로 온라인 통장을 개설하고 저축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고 언제나 비상금으로 몇십, 몇백만원을 비축해두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정말 부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경제적인 독립을 가지고부터 참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부동산, 주식, 환율, 금융상품 등 준 전문가의 수준으로 지식을 넓히고 고민하며 돈을 집요하게 바라본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다고 쉽게 돈이 제게 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매번 마음만큼 안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으로 동동거렸지만 세월이 가고 나의 자산이 형성되어 가고 나이도 들어가며 생각의 관점도 점점 바뀌어 갔습니다.
지난 수요일은 유난히 바쁜일이 많은 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중요한 회의가 있어 핸드폰 소리를 무음으로 두었더니 급한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부재중 전화가 여러건입니다.
동생과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놀란 마음으로 전화해 보니 재활병원에 입원한 엄마가 뇌졸중 증세를 보인다며 빨리 일반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MRI 검사를 해 보라는 것입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조퇴를 한 후 엄마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신속항원 검사를 한 후 음성이 확인되자 간호사가 엄마를 제게 인계해 주었습니다.
엄마가 2021.10.24. 병원에 입원한 이후로 한 번도 직접 만져보지 못했습니다.
매번 코로나로 인해 유리창 너머 전화기로만 면회가 허락되었는데 병원검사를 위해 특별히 허락이 된 것입니다. 엄마는 현재 몸을 움직일수가 없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있을뿐 더 이상의 움직임이 불가능 합니다.
그러니 차에 오르고 내리고 휠체어에 앉고 내리고가 예사일이 아닙니다.
다행히 막내동생도 조퇴를 하고 함께 동행해 주어 아쉬운대로 가능했지만 평소하던 일이 아닌 동작들이니 두 자매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렇게 엄마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검사결과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사실 그날 검사요청은 좀 문제가 있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이 휴가기간이라 당직의사가 엄마를 보았고 힘이 없이 몸이 흔들리니 주변 간호사와 간병사에게 구두로 물어보고 그런 결정을 내린것이었습니다.
전화상으로는 그 사실을 듣지 못하고 달려갔고 그래도 어떤 상황인지 알아야 하니 담당의사를 찾는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살짝 불편함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면서 병원에서 한마디 덧붙입니다.
“만약 환자가 검사해보고 이상이 없다고 해도 저희한테 뭐라 하시면 안돼요.”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잠들어 있던 화가 올라왔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엄마 검사를 끝내고 MRI검사 해독 하시는 의사선생님이 그럽니다.
“제가 볼 때는 영양부족 같습니다. 영양이 부족하니 수분도 부족하고 과거 뇌졸중 발병 부위에 그런 증상들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너무 힘이 없이 바싹 마른 엄마가 보입니다.
평소 엄마가 좋아하던 꼼장어 가게에 전화를 합니다.
“사장님, 우리 엄마가 건강할 때 사장님 꼼장어를 좋아했어요. 번거롭지만 아주 잘게 다져서 포장 좀 해 주시면 안될까요?”
마음씨 좋은 사장님은 최소 주문은 3인분인데 괜찮냐는 말과 함께 다른 것은 걱정말라는 위로를 전합니다.
힘없이 앉아있던 엄마가 “너그 저녁 먹을 때 안 됐나? 밥하러 집에 가라.”
엄마 손을 잡아보고 얼굴을 만져보고 안아도 봅니다. 얼마나 그렇게 만지고 안아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내 손을 잡고 있던 엄마의 손에도 꼬옥 힘이 들어옵니다.
아~ 엄마, 우리 엄마.
그렇게 눈물이 앞을 가려 세상이 뽀얗습니다.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연락한 병원에 불편하던 감정이 눈녹듯 사라졌습니다. 검사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 따듯한 체온을 느껴볼 수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원무과에 계산을 하니 60만원의 검사비가 청구됩니다.
일시불 체크카드로 결제를 하고 다시 재활병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탑니다.
마침 도착한 시간이 저녁시간이라 주문한 꼼장어를 저녁으로 먹을수 있게 엄마 휠체어에 걸어줍니다.
“엄마, 밥 잘먹고 운동 열심히 해. 또 올게. 빨리 건강해져서 집에 가자. 알았지?”
갑자기 서러움에 눈물이 납니다. ‘흐흐흑~ 엄마~ ’
그러면 안되는데 참을수 없는 소리가 입밖으로 나오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간호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돌아가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서 있었습니다.
마침 병원에서 근무하는 지인이 다가와 위로를 해 줍니다.
그것이 더 서러워 아이처럼 그 자리에서 소리 내어 울어버렸습니다. 엉엉엉~
집으로 돌아온 시간 온 몸에 힘이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가족들 저녁을 떡볶이로 시켜주고 이른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래도 참 감사합니다.
엄마를 그렇게라도 만났다 싶으니 행복한 꿈을 꾼 듯 합니다.
출근한 사무실에 직원들이 괜찮냐고 안부를 물어옵니다.
“괜찮아요. 어제 저 60만원 짜리 외출을 했잖아요. 검사덕분에 엄마를 만져봤어요. 작은 돈은 아니지만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그렇게라도 엄마를 만나서 다행이다 생각할 수 있는 경제력이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독히도 가난한 상황이면 사람도리보다 돈을 먼저 생각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참 돈은 좋은것입니다.
돈이 있어야 부모 노릇도 하고 자식 노릇도 하고 주변 지인, 친구, 형제 노릇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돈 때문에 자기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을 보며 주객이 전도되는 삶은 살지 말자 하며 살고 있습니다.
돈에 내 인생을 맡기지는 않겠지만 제대로 쓰기 위한 돈을 버는 내 인생에 최선을 다 할겁니다.
‘돈’ 참 멋지고도 참 무서운 놈이지만 꼭 절친이 되어 보려 합니다.
“돈, 내가 너 진짜 좋아하고 늘 기다리고 있는거 알지. 그래도 나 꽤 괜찮은 주인인데 잘 생각해봐. 흠칫 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