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오르막은 갈지자로 걸어가 보세요

by 해피영희


가끔 인생은 참 잔인한 오징어게임 같은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나는 게임을 하기 싫지만 반드시 참여해야 하고 무엇보다 참여자들의 체급이 모두 공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올림픽에서는 체급별로 비슷한 수준의 경쟁자와 싸우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어 주지만 인생이라는 게임에서는 헤비급에서 라이트급까지 아무런 보완장치없이 막무가내로 싸우게 됩니다.


사실 태어나는 그순간부터 불공평을 공평처럼 온몸으로 안고 살아가게 되는데 우리 모두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나아갑니다.

개인적으로 사람에게 있어 제일 슬픈일 중 하나는 생각하는 욕심만큼 재능이 뒤따르지 않을때라고 생각합니다.

산골마을 30여 가구가 사는 작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던 때는 몰랐습니다.

매일 까만 고무신에 올챙이 담아 개울가에서 목덜미가 따가운 햇살로 화상을 입으며 한없이 한가롭기만 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읍내로 이사를 하고 학생수가 2천명이 넘는 아주 큰 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그저 공간이 달라진것만으로 성적도 달라지고 놀이도 달라졌습니다.

심지어 신발도 구두와 샌들로 바뀌고 하얀 레이스 블라우스에 멜방치마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동시대이고 그저 사는 공간만 바뀌었을 뿐인데 그런 획기적인 변화가 어린 제게 나타난 것입니다. 왠지 공부를 잘하면 칭찬을 듣고 중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육감적으로 느꼈습니다. 그전까지 하지 않던 공부라는 것을 해서 시험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빨간 색연필의 동그라미 숫자가 어린 여자아이게게 점점 중요해지고, 하얀 통지표에 찍히는 수우미양가의 글자가 자존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도 읍내에서 느끼는 변화만을 끌어안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대학교를 가며 이제는 시단위의 행정구역으로 나오게 됩니다.

역시 사람도 많고 가게도 크고 물건도 다양한 신기한 곳입니다.

쇼핑도 하고 커피숍도 가고 영화도 보고 그전까지 누리지 못하던 문화라는 것을 맛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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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읍단위에서 살던 나와 탄생의 순간부터 시단위에서 자란 친구와의 보이지 않는 문화적, 지적차이에 답답함을 살풋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왠지 작아지는 시간들이지만 그래도 버틸만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떤 외부의 자극으로 발전을 하면 얻는것도 있지만 그만큼 갈등도 만나는 것이라는것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어리고, 아직은 견딜만한 불편에 참 순진무구하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인생이 참 잔인한것이 무언가 이제는 내가 살아보겠다 하는 순간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대학 졸업을 하고 취업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고 부모로써 살아가야 하는데 필요한 기반이 없습니다.


대학을 다닐때는 모든것이 지원되던 것들이 졸업을 함과 동시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으로 변했습니다.

그때 나의 잠들어있던 세포가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도 잘살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애타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그렇게 오랜시간 평범하게 살았는지 놀라울정도였습니다.

평범하게 살았으니 능력은 보통인데 이상은 하늘을 찌르고 그 둘의 차이로 내 마음은 지옥을 만났습니다. 점점 작아지고 급해지고 그러면 상황은 더 꼬이고....

25살에서 40이 되는 약 15년은 인생에 있어 정말 숨막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스스로 재 사회화가 이루어진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뜻대로 안되니 몸은 버티다 안되겠다 싶으면 졸도를 해 버립니다.

공황장애로 과호흡이 오고 119에 실려가기를 예사로이 보낸 시간입니다.

정말 잘 먹고 잘 자는것도 힘들던 시간이었습니다.

어느날 제가 죽겠다 싶었습니다.

매일 울며불며 피곤으로 쩔어 얼굴이 퉁퉁 부어있는 불쌍한 아줌마 한명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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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순간 내가 사고로 죽으면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나는 40평생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징징거리며 울부짖다 죽는 불쌍한 아줌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그리죽는것은 너무 제가 불쌍했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어차피 상황을 피할수 없다면 그것을 최대한 현명하게 넘기고 행복찾기를 하는것입니다.

나쁜 일을 만나면 '어머, 얼마나 좋은일이 일어나려고 이런 액땜을 하는거지‘

사고가 날뻔했을땐 ‘정말, 나는 운이 좋다. 이렇게 큰 사고도 피해가고’

아이들을 키우기가 너무 힘이 들때면 ‘그래도 다행이다. 아이들이 건강해서, 남들과 다른 고민이 아닌 평범한 고민을 하고 살아서’

돈이 마음대로 안될때면 ‘내 인생에 돈보다 싸게 내 놓을건 없어. 다행이다. 내게서 다른것이 아닌 돈을 가져가서’


그렇게 긍정적 생각을 기본으로 깔고 봄이면 봄을 만나고 여름이면 열정적인 뜨거움을 사랑하고 가을엔 센치한 마음에 울먹여보고 겨울엔 또 따듯한 사랑을 나누고,,

그러니 매일이 이벤트이고 행복입니다

이만큼 와서 보면 인생은 나의 생각대로 그 모양도 속도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왜 안되냐고 화내고 울어도 소용없고 오히려 내마음만 더 지옥이 될 뿐입니다.

어차피 만나야 할것은 만나고 기다려야 할 시간은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시간을 좀 더 풍요롭게 보내는것이 현명한 것입니다.


매주 주말이면 뒷산을 갑니다. 산이라는곳은 반드시 오르막이 있습니다.

제가 오르막을 힘들지 않고 오르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발끝만 보고 힘주지 않고 천천히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오르막 길을 직선으로 걸어가지 않고 길을 수평처럼 따라 걸으며 한문의 '갈 지'자 모양으로 지그재그로 걸어가는 거입니다.


신기하게 다리가 느끼는 부담과 오르막의 경사가 편해지고 쉬이 정상에 도착합니다.

마음이 급하여 다리에 힘주고 서두르는 날에는 기필코 숨이차고 힘이들고 다리는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무거워 나아가기가 힘들어집니다.

문제는 건강을 위해 산을 오르는것은 한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언제나 현명하게 갈 방법을 알고 있는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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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도 하루만 살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수백, 수천만번 만나는 인생의 오르막길에 편안하게 한발한발 '갈 지'자로 나아갈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른 새벽 독서를 하고 등산을 다녀온후 달콤한 낮잠도 자고 쑥꾹도 끓이고 맛있는 삼겹살에 짭쪼리한 짱아지도 곁들입니다.

온 가족이 분리수거 후 사온 아이스크림은 유독 달콤하고 시원합니다.

딸, 아들의 대화에서 ‘툭’ 뱉어낸 한마디가 진정 행복을 줍니다.

“아니 ㅇ아, 우리집은 정말 특별하게 엄마, 아빠가 사랑이 넘치고 서로를 위하는 집이잖아.....”


아닌가 했지만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겁니다.

늘 아이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주고 싶었고 사랑받는 따듯함으로 성장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 않으니 또 고민이었구요.

그런데 딸의 얘기를 들어보니 다행히 잘 왔나 봅니다.


결국 이리 올것을, 못난이 아줌마로 늘 울고 있었으면 큰일날뻔 했습니다.

역시 인생은 주어진 오르막을 최대한 힘들지 않게 지그재그로 걸어가는 현명함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걸릴뿐 반드시 갈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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