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수많은 특별함들 중 차마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인연

by 해피영희


“엄마, 이 바지 입을까? 아님 저 바지 입을까?”

“음, 둘다 괜찮은거 같은데”

“그럼 이 정장바지로 입을래.”


대학교 입학을 하고 팀조장 선배가 저녁을 사주기로 했다며 아들은 며칠전부터 설레여했습니다.

지난해 재수를 하고 그렇게도 누려보고 싶던 대학생활인지라 아들은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이놈의 코로나는 비대면 수업을 가져왔고 의기소침하던 참에 선배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아들은 중학교 때부터 엊그제까지 한 번도 옷을 사 달라 한 적도 없고 제대로 된 옷을 사 준적도 없습니다.

학교는 교복을 입고 가고 학원은 편안한 체육복 바지 몇 벌이면 되었습니다. 그것도 브랜드도 필요 없고 계절에 따라 적절한 보온성만 차이가 나면 그만이었습니다. 가끔 제가 옷을 사러가자고 해도 쇼핑몰을 따라가는 자체를 귀찮아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자기 입으로 그럽니다.

“엄마, 나 옷 한 벌만 사주면 안돼?”

“네가 왠일이냐? 대학입학해서 옷 사자고 해도 그렇게 귀찮아 하더니만”

“응, 선배가 고향후배들 저녁을 사준대. 그런데 막상 외출을 하려고 하니까 입고 갈 옷이 하나도 없어.”


어린 시절 명절날 설빔을 사러가는 즐거운 아이마냥 제가 더 행복한 마음으로 쇼핑몰을 갔습니다.

그래봤자 또 백화점도 아니고 아울렛이었지만 젊음이라는 멋짐을 한 겹 입고 있기 때문인지 무슨 옷을 입혀도 제 눈에는 그리도 귀엽고 예뻐 보입니다.


왜 진즉에 사 입히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완전 변신한 왕자님을 보며 제 눈에서는 한없는 하트가 나오고 입은 헤벌쭉 벌어져 벌레 한 마리가 날아가도 모를 판입니다.

제 옷 하나는 만원 한 장도 고민하지만 제법 폼 나게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몇 벌의 옷을 쿨하게 결재했습니다. 바라보던 점원도 빙그레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며 그리도 친절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사온 옷들을 외출준비를 위해 꺼집어내고 그중에서도 조금 더 나은 옷을 선택하는 중이었습니다.

“엄마, 그런데 이건 바지가 좀 긴 것 같아. 그래서 저 바지를 입어야겠어.”

“아들아, 그건 바지 탓이 아니고 네 탓인거 같은데, 네가 키가 좀 더 컸으면 괜찮았을 것 같아. ㅋㅋㅋ”

“칫, 타고난 신체를 가지고 말하면 어떻게 해. 그럼 원론적으로 내가 아닌 내 앞이나 내 뒤의 정자가 들어가서 수정이 되었어야지. 지금 나는 어쩔수 없는거잖아.”


발끈 하는 아들이 무척이나 귀엽습니다.

“어머, 아들아, 무슨 소리야, 엄마는 네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쨌을까? 싶어. 다른 아들은 필요 없어. 네가 너무너무 좋아. 세상에서 최고야.”

“우리 엄마, 또 저렇게 접대용 멘트를 날려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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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화이트데이였습니다. 사람이 참 이상한 것이 그런 것에 별 의미를 두지도 않는다 하면서도 막상 그날이 되면 또 은근한 기대를 하게 됩니다. 뭐 받아봐야 결국 초코렛인데 말이지요.

정말 시켜도 제대로 안 되는 남편과 한 25년 세월을 살다보면 서운함도 어느새 둔해져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제도 별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저녁때가 되니 잠시 사라지더니 까만 봉지 하나를 손에 들고 나타납니다.


“엄마를 위해서 사왔어.”

노랗고 예쁜 초콜렛 세트를 내려놓습니다.

같은 이쁜짓을 해도 아들이 엄마에게 다가오는 감정은 세상 그 무엇보다 또 다른 감동이 있는 법입니다.


뒤늦게 퇴근한 남편이 제 책상위에 놓여진 초콜릿을 냉큼 뜯어서 입으로 가져갑니다.

저런~ 눈치없는.....ㅋ

“아니, 당신은 왜 사주지는 못하고 내꺼 뺏어먹어?”

“치사하게 먹는거 가지고 그러냐?”


이미나 증명이 되었습니다. 아들이니 당연히 엄마를 챙긴다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우리 아들은 너무도 자상하고 예쁜 마음을 가진 천사입니다.

남편이 당연한 것이고 아들은 특별한 것입니다.


아들의 말처럼 그 수십억 마리의 작은 세포들이 경쟁할 당시 아들보다 앞이나 뒤의 생명력을 만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딱 우리 아들이 마침 도달하여 생명체가 되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감동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배와 친구를 만나고 늦은 밤 돌아온 아들이 기분이 헤벌쭉 합니다.

술 한잔을 하고 노래방을 다녀왔답니다.

“오랜만에 놀고 왔더니 너무 신난다. 내가 우리 엄마 몸이 약해서 혹시나 걱정되어서 그동안 얼마나 조심했는지 모르지?”


이놈, 참 하는 말마다.... ㅋ

분명 글을 쓰기 전 주제는 내가 가진 당연한 것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제가 가진 가장 특별한 것을 말하게 됩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제게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감사함이고 특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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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손에 잡히는 볼펜 하나도 다 인연이 있는 것이고 우연히 만나는 책 한권도 엄청난 인연입니다.

그 수많은 특별함들 중 차마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천륜으로 와준 김ㅇㅇ 아들!

어느새 넓어진 가슴을 품어봅니다. 내가 안아보는 것인지 안기는 것인지 모르지만 따듯함으로 행복해지는 이밤입니다. 진심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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