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토요일 오후 3시 15분 엄마 면회 예약했어. 다들 스케줄 참고해.”
형제들 단톡방에 공지 사항을 띄우고 책상 위 달력에도 메모를 해 두었습니다.
엄마가 재활병원에 입원하고 코로나 때문에 접근금지가 되면서 엄마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달에 한번 비대면 면회뿐입니다.
처음 면회를 가고 유리창 너머 힘없이 앉아있는 엄마를 보았을 때 딱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전화기로 힘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이지만 그래도 반가운 안색이 지나가고 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며 그나마 감사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엄마를 본다는 목적으로 전국에 사는 언니, 오빠들도 울산으로 오니 의도하지 않은 형제들의 끈끈한 애정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절대 이 시간만큼은 놓치지 말자는 마음으로 면회가 끝나는 월요일이면 한달 뒤 면회를 빼먹지 않고 예약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간호사는 다른 환자들 스케줄을 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부정적 답변을 주었지만 언제나 나는 무식한 보호자가 되어 절대 면회 기회만은 물러설 수 없다며 꼭 예약을 해 달라고 떼를 부렸습니다.
덕분에 한 달도 빼지 않고 엄마를 그렇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3월 4일 금요일 오후에 한 통의 문자가 날아들었습니다.
“코로나 환자증가로 인하여 오늘부터 당분간 비대면 면회도 중단됩니다. 환자분과 보호자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문자를 보는 순간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점점 세상이 엄마와 우리 사이를 억지로 떼어놓는 느낌입니다.
월요일 아침 병원 간호사실에 전화를 했습니다.
“선생님, 비대면 면회가 중단된다고 하던데 그럼 이번주 토요일 우리 엄마 면회가 안되는 건가요?”
“네, 지난 주말부터 안되는 것으로 안내를 드리고 있어요. 마음이 불편하시겠지만 이해 부탁드려요.”
“비대면인데 왜 면회가 안되나요?”
“저희 병원내에서 확진자가 자꾸 나오고 있어요. 그러니 환자들의 이동을 최대한 제한하기 위해서 나온 조치에요.”
마음은 불편한데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보호자가 아닌 일반인의 시각으로 그것은 충분히 합리성이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엄마를 못 본다고 생각하니 그런 냉정한 이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괜시리 전화를 끊지 못하고 구질구질한 대화를 몇마디 더 나누었지만 역시나 답은 없습니다.
마음이 아려오고 숨이 막혀왔습니다.
울컥 울컥 덩어리가 가슴을 치고 옵니다. 그렇게 서러워도 참 사람은 대단합니다.
사무실 일처리도 하고 우크라이나 전쟁도 고민하고 단톡방에 올라온 남편의 우스개스러운 행동에 웃기도 합니다.
퇴근을 하고 아이들과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고 계단걷기를 나갔습니다.
16층 계단 12번, 약 1시간의 시간을 수많은 생각들과 한발 한발 나아갔습니다.
그러다 ‘엄마’를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발걸음이 더 옮겨지지 않고 눈물이 납니다.
얼마전 뇌졸중이 의심된다며 MRI를 찍어보라고 한 덕분에 엄마를 만났던 시간이 새삼 감사함으로 다가옵니다.
딱 심란하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것일겁니다.
마트로 가 막걸리 두 병과 야채를 사서 올라왔습니다.
안주로 버섯볶음, 콩나물 무침, 무김치, 그리고 일미...
아무 사연도 모르는 남편과 아이들은 왠 막걸리냐며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시원하고 달콤한 막걸리가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갑니다.
“너무 슬프다. 이번 토요일이 엄마 면회인데 못 만난대. 그래서 막걸리가 먹고 싶더라”
다이어트 해 보겠다고 운동을 열심히 했으니 늦은밤 술과 안주를 그리 먹으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과거 같았으면 절대 넘지 않는 선입니다.
그런데 그게 뭐라고, 지금 내가 슬프고 그 슬픔을 달래야 할 이유가 있으니 나머지는 좀 뒤로 치워도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꿀떡꿀떡 연달아 3컵을 마시고 몽롱해진 몸과 마음으로 자꾸만 끌려가는 기분을 비웃어줍니다.
늦은 취침과 술기운에 새벽에는 속도 쓰리고 몸도 무겁습니다.
운동을 하기는 어렵고 아이들이 먹을 아침을 짓고 설거지도 하고 쓰레기 정리도 합니다.
일상은 지독하게 무섭게 나의 몸에 배어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몇일전 만났을 때 엄마는 분명 또렷하게 맑은 정신이었습니다.
우리 저녁도 걱정하고 아프다는 말도 하고 입맛이 없다는 욕구도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 면회가 취소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얼마나 아플까요? 얼마나 좌절스러울까요?
자꾸만 감정이입이 됩니다. 내가 그 처지라면 슬프다는 표현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지금 보니 슬프다는 것은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적당히 기분이 좋지 않은것입니다.
지금 엄마는 절망을 넘어가는 그 무엇을 만나고 있을겁니다.
엄마의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아버지를 한번 만나게 해주자 싶어 지난달 면회에는 시골 아버지를 모시고 왔었습니다. 이제 생각하니 그것도 천만다행입니다.
60년을 함께 한 두 부부는 어색함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밥은 잘 먹나? 힘이 없어 보이네. 운동은 열심히 하나?”
그리곤 한참을 침묵입니다.
“왜 목소리가 적노? 왜 얼굴을 안 보노? 고개를 들어봐라.”
애타는 아버지의 목소리에도 힘이 없습니다.
너무 힘없는 엄마의 모습을 괜시리 보여줬나 싶었지만 그래도 얼굴이라도 볼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실제 엄마는 집으로 가겠다는 의지로 엄청난 재활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신체의 노화로 인한 비탄력적 회복성과 점점 힘이 빠져가는 시간에 한발 나아가고 한발 뒤로 끌려가는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이 결국 또 서러움과 만납니다.
울음이 터져버렸습니다. 우스꽝스럽게도 출근을 위해 양말을 신고 가방을 챙기며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습니다. 딸이 놀라 바라봅니다.
“엄마, 왜? 왜 그래? 운전 조심해, 그러다 사고 난다고.”
훌쩍이며 계단도 내려오고 차에 타서 시동도 걸고... 참 지랄맞은 모양새입니다.
슬픈 것은 슬프고,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고....
인생이 이런것이구나 하고 다시 느끼는 시간입니다.
지금이 나는 나름 양보하고 어려운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삶은 얼마든지 더 어렵고 더 불행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미루고 참고 아끼고 하던 사연들이 다소 허무함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이 순간만이 현실입니다.
내일은 그저 기대하고 예상할 뿐 그것의 참모습은 우리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할 수 있을 때 하고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합니다.’ 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나는 오늘 사랑한다는 표현도 마음껏 하고, 너무도 당연하다 싶었던 일도 축복인 것 처럼 기뻐하는 하루를 살아보렵니다.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누군가에게 안부 전화도 하고 작은 키프티콘도 보내고 저 파란 하늘의 눈부신 태양에 눈이 아프도록 째려보기도 하렵니다.
이렇게 내가 살아있고 꼭 기억하고 싶은 나의 소중한 이 순간을 위해....